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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서울(창덕궁)

by 밝은 미소 2010. 11. 16.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하나로 태종 5년(1405)에 세워졌다.

당시 종묘·사직과 더불어 정궁인 경복궁이 있었으므로, 이 궁은 하나의 별궁으로 만들었다.

임금들이 경복궁에서 주로 정치를 하고 백성을 돌보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크게 이용되지 않은 듯 하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창경궁과 함께 불에 타 버린 뒤 제일 먼저 다시 지어졌고

그 뒤로 조선왕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정궁 역할을 하게 되었다.

화재를 입는 경우도 많았지만 제때에 다시 지어지면서

대체로 원래의 궁궐 규모를 잃지 않고 유지되었다.

임금과 신하들이 정사를 돌보던 외전과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인 내전, 그리고

 휴식공간인 후원으로 나누어진다.

 내전의 뒤쪽으로 펼쳐지는 후원은 울창한 숲과 연못,

크고 작은 정자들이 마련되어 자연경관을 살린 점이 뛰어나다.

또한 우리나라 옛 선현들이 정원을 조성한 방법 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으로나 건축사적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160여 종의 나무들이 울창하게 숲을 이루며 300년이 넘는 오래된 나무들도 있다.

1917년에는 대조전을 비롯한 침전에 불이 나서 희정당 등 19동의 건물이 다 탔는데,

1920년에 일본은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어다가 대조전을 다시 짓고,

강령전을 헐어서 희정당을 다시 짓는 등 경복궁을 헐어 창덕궁의 건물들을 다시 지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물 중 궁궐 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정문인 돈화문으로 광해군 때 지은 것이다.

정궁인 경복궁이 질서정연한 대칭구도를 보이는데 비해 창덕궁은 지형조건에 맞추어

자유로운 구성을 보여주는 특징이 있다.

창덕궁과 후원은 자연의 순리를 존중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기본으로 하는

한국문화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는 장소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창덕궁은 자연환경과 탁월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면서

궁궐 건축과 전통 정원의 원형을 잘

간직한 궁궐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창덕궁은 동쪽에 자리 잡은 궁궐이라 하여 창경궁과 함께 동궐로도 불렸다.

경복궁을 보조하는 궁궐로 지어졌지만,임진왜란 이후에는

경복궁보다 먼저 복구되어 명실상부한 조선 제일의 궁궐이 되었다.

 

경복궁과 마찬가지로 궁궐다운 규모와 체제를 갖추었으며, 조선 왕조의

오백 년 역사를 놓고 보면 경복궁보다 창덕궁에서 왕들이 머문 기간이 더 길다.

 

너른 평지 위에 직선의 축을 따라 전각들이 들어선 경복궁에서 위엄과

권위, 질서와 절제의 아름다움이 돋보였던 것과 달리,

창덕궁은 전각들이 산과 언덕 등 지형을 따라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되고, 구모도 배치된 공간과 쓰임에 걸맞게 지어졌다.

 

조선시대 왕들이 창덕궁에 머무르기를 좋아했던 이유도 이와 같은 매력,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건축 공간의 편안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특히 산과 언덕에 둘러싸인 창덕궁의 후원은 조선시대 궁궐의 후원 가운데에서도

가장 넓고 경치가 아름답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 솜씨가 절묘하다.

자연미를 중요시한 조선시대의 미감이 잘 드러나 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규장각 왕실 전용 도서관 을 설치하여

인재를 모으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

혁신 정치를 펴서 조선시대 문화를 가장 화려하게 꽃피웠다.

정조에게 규장각은 세종의 집현전에 버금가는 큰 힘이 되었다.

후원의 부용지에 지리한 주합루 1층이 규장각이다.

 

부용지에 서면 왕과 신하들이 아름다운 후원을 거닐면서

함께 詩르 짓고 나랏일을 

의논하는 활기차고 이상적인 모습이 절로 눈앞에 펼쳐진다.

 

창덕궁의 아름다움은 1820년 후반에 그려진 (동궐도) 국보제 249호 에도 잘 드러나 있다.

동궐도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들러싼 주변 지세와 전각, 담장, 각종

기물들을 상세하게 또한  사실적으로 그려낸 궁궐 기록화이다.

 궁궐의 현재와 옛 모습을 비교하여 살펴보면 역사의 흐름 속에 변화해온 궁궐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창덕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궁궐로 왕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조선 왕조의

마지막 순간을 안타깝게 지켜본 궁궐이기도하다.

한일병합을 결정한 조선 왕조의 마지막 어전 회의가 흥복헌에서 열렸고,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과 중전인 순정효황후, 대한제국의

 마자막 황태자였던 영왕과 부인 이방자 여사가 창덕궁에서 생활하다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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