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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경기도화성(가슴아픈 역사의 현장을 가다)

by 밝은 미소 2011. 5. 14.

제암리 교회는 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1970년 일본 기독교인과 사회단체들이 사죄의 의미로 보내온

성금을 바탕으로 새 교회가 들어섰고 1982

 대대적인 유해 발굴 작업을 거쳐 순국 묘지가 조성됐다.

 

 

  

 

지금은 비극의 현장임을 느끼기 힘들 정도로 말끔하게 잘 정리돼 있다.  

제암리 교회의 담임목사님께서 그날의 그 아픈 역사를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알리고 계시다 교회 아래

3·1운동 순국기념관이 있어 전시관과 시청각 교육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야외에는 희생당한 23인의 순국 묘지를 조성해 놓았다.

 

 

 

제암리 교회에서 역사를 되새기다

 

 

 

 

 

 

 

 

 

 

1959년 서건 현장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로 된 (3.1운동 순국기념탑)이 세워졌다

 

 

 

 

  

 

 

 

 

 

 

 

 

 

  

 

 

 

 

 

 당시 사건을 모형으로 만들어놓은 기념관과 묘지를

둘러보다 보면 오래 전 희생에 고개가 숙여진다.

기념관 개장 시간 오전 9~오후 6, 월요일 휴무.

 

 

 

 

 

 

 

 

 

 

 

 

 

 

 

 

 

 

1982년 정부에 의해 대대적인 유해발굴 작업이

실시되어 교회 옆에 마련된 묘소에

안장되었으며다음해 7월 기념관과 새 기념탑이 세워졌다.

 

 

 

 

 

 

 

 

 

 

 

 

 

 

 

 

 

 

 

 

 

 

 

 

 

 

 

 

 

 

 

 

 

 

 

 

일본의 만행에 복음을 들고 싸웠던 우리 민족의

정기를 느낄 수 있는 기독교 성지

 

 

 

기념관 바로옆의 제암리동네 전경

 

 

 

 

 

 

 

 

 

 

 

 

 

 

 

 

 

 

 

 

 

 

 

 

 

 

  

19194 15, 3·1운동이 한달 반 남짓 전국적으로 계속되고 있을 때

경기도 화성의 작은 마을 제암리에서 사건이 터졌다.

인근 발안 장터에서 3·1운동이 격렬하게 일어난 지 

일주일가량 지난 시점 아리따 도시오 일본 육군 중위가 이끄는

군경들이 주민 23명을 교회에 몰아넣어 감금하고 출입문을 봉쇄 한

무차별 총격을 가하고 교회와 민가 33채에 불을 질러 몰살시켰다.

 

가까스로 살아난 젊은이들에 의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캐나다인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Schofield)제암리로

달려가 그 끔찍한 광경을 사진에 담아

 미국에 보내 일본의 만행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스코필드 선교사가전 세계에 알리지 않았다면 묻혀버렸을

학살 사건이었다 이곳은 1982년에 사적 제299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