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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꽃들의 이야기/꽃사진

접시꽃

by 밝은 미소 2011. 6. 25.

 

  

 접시꽃 당신 /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옆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틈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은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 번 짓지 않으며 살려 했읍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오는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읍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 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읍니다.

 

 

 

 

 

 

 

 

 

 

 

 

 

 

 

 

 

 

 

 

 

 

 

 

 

 

 

 

 

 

 

 

 

 

 

 

 

 

 

 

 

 

 

 

 

 

 

 

집앞 화단에 곱게핀 접시꽃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축축 늘어져 목을 축이는 모습을오늘 낮에 찍은사진

 

 

 

 

 

 

 

 

 

 

 

 

필요한 책을 찾느라고 책꽂이를 뒤지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누렇게 변한 詩集 한 권이 눈에 띈다

접시꽃 당신이란 아주 오래된 도종환 시인님의 시집이다

초판이 1986 12 10일이고

겉장을 열어보니 막내 여동생이 1987127일 선물한 시집이다.

24년이 지나 누렇게 변한 시집

접시꽃 당신이란 이 시집은 임신중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면서 쓴 詩l이다

접시꽃을 보면서 접시꽃처럼 아름다웠던 아내를 그리고

오월에 흐드러지게 핀 찔레꽃 속에서 아내를 그리고

꽃씨를 거두며 비가 오는 길 우산을 쓰고 감 꽃이 피어있는것을보고

절절이 아내를 그리면서 쓴 詩이다. 

 

이 시집엔 사랑하는 아내를 옥수수밭옆에 묻고 돌아서며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해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라는 싯귀가 있다

이 책을 지금 남미에서 엄마를 보러 먼길을 와서 

우리집에 머물고 있는  막내여동생에게 선물 받고

 시집을 넘기면서 눈물이 쏟아져 차마 책장을 넘기지 못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이 시집을 읽고 난 후 난 그 뒤부터 해마다 초여름 날

붉게 피어나는 접시꽃만 보면 이 싯귀가 생각이 난다.

이 시를 읽던 그 시기는 내가 7 4살이던 어린 두 아들을 놓고 3년동안

生과 死를 넘나들며 힘든 시간을 보낸 후였기에 더욱 이 詩가

내 가슴을 적시었을 것 같은 그래서 그 후로

여름이와 붉게 피어나는 접시꽃만 보면 이 詩를 떠올리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詩를 읽고 난 후 외출을 하려 밖을 나가다 보니

집 앞 화단에 붉은 접시꽃과 흰 접시꽃이 곱게 피어있다

옮기던 발걸음을 멈추고 난 그 붉은 접시꽃을 다시 한번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