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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강원도

강원도 강릉(오죽헌)

by 밝은 미소 2012. 12. 21.

 

 

 

 

 

 

 

 

 

 

 

 

 

 

 

 

 

 

 

 

 

율곡 이이(1536~1584)와 어머니신사임당(1504~1551)이 태어난 유서깊은 집 오죽헌

오죽헌에 들어서니 율곡선생님의 동상이 먼저 눈에 띈다

 

 

 

 

 

 

 

 

 

 

 

 

 

 

 

 

 

 

 

 

 

 

 

 

 

 

 

 

 

 

 

 

 

 

 

 

 

담장아래 심어진 감나무엔 감이 주렁주렁 열려 곱게 익어가고 있다

 

 

 

 

 

 

 

 

 

 

 

 

 

 

 

 

 

 

 

 

 

 

 

 

이곳은 율곡 이이의 영정을 모신 문성사이다

이 문성사의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라고 한다

 

"문성"은 1624년 인조 임금이 율곡이이에게 내린 시호로

덕과 학문이 널리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하여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 는뜻이 담겨있다고.

 

 

 

문성사 앞의 건물이 바로 별당인 오죽헌

오죽헌은 왼쪽 2칸은

 대청마루로 사용했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이다.

우리나라 주택건물 중에서

비교적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유서깊은건물이라고.

오죽헌의 온돌방은 어머니 사임당 신씨가 용꿈을 꾸고 율곡을 잉태했다는 몽룡실이다

 

 

사랑채는 별당인 오죽헌과 함께 옛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유서깊은 건물

 

 

 

툇마루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의 필적이라한다

 

 

 

 

 

 

 

 

집 주변엔 이렇게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데 줄기는

검은색을 띤 대나무가 바로 오죽(烏竹)이다.

율곡 이이의 이종사촌이였던 권처균은 외할머니인 용인 이씨에게서

 이 아름다운 집을 물려 받았는데

이 집이 마음에 들었던 권처균은 자신의 호는 물론이고

 집 이름도 검은 대나무에서 착안하여 오죽헌이러고 지었다고 한다.

 

 

한옥이 저녁노을을 받아 아름다운 모습이다.

 

 

 

 

 

 

 

 

 

 

 

 

 

 

 

 

 

 

 

 

 

 

 

 

 

 

 

 

 

 

 

 

 

 

 

 

 

 

 

사랑채를 지나 오죽헌의 가장 서쪽으로 가면 어제각이 자리잡고 있는데

어제각은 율곡 이이의 저서인 격몽요결과 그가 어린 시절 사용하던 벼루를 보관하여 놓은 집이다.

 

 

 

1788년 정조 임금은 율곡이 어렸을 때 사용하던 벼루와 격몽요결이 오죽헌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벼루를 궁궐로 가져오게 하고 친히 본 다음 벼루 뒷면에는

율곡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글을 새기고

책에는 머릿글을 지어 잘 보관하라며 돌려 보냈다고한다.

당시 임금의 명을 받은 강원도 관찰사 김재찬이 이를 보관할 수 있는 집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어제각(御製閣)이다

 

구 오천원 앞면에 율곡 이이의 초상과 함께 율곡이 쓰던 벼루가

도안 그림으로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그 벼루가 얼마나 귀중한 벼루인지 알 수 있는데

나도 구 오천원권에 벼루가 함께 도안되어 있는줄은 몰랐다

확인을 하고 싶은데 지금은 신권이 나와서 구 오천원권은 볼 수  없으니 앞으로 구권을 보면 확인해봐야 되겠다.

 

 

 

 

 

 

 

 

 

 

 

 

 

 

 

 

 

 

 

 

 

 

 

 

 

 

 

 

 

 

 

 

 

 

 

 

 

 

 

 

 

 

 

 

 

 

 

 

 

 

 

 

 

 

 

 

 

 

 

 

 

 

 

 

 

 

 

 

 

 

 

 

 

 

 

오죽헌 입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