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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상북도

도산서원

by 밝은 미소 2020. 10. 1.

도산서원                                                                                    사적 제170호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이 서원은 조선 선조(宣祖) 7년(1574)에 건립된 것으로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위패를 모시고 후손과 제자들이 향사하며 후학을 양성해 온 곳이다.

영지산(靈芝山)을 뒤로하고 동취병(東翠屛), 서취병(西翠屛)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골짜기 

안에 안동호를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다. 선조가 아름을 내렸고, 편액은 동왕 8년(1575)에

석봉(石峯) 한호(韓濩)가 썼다.

이 서원은 영남유림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대원군 서원철폐 당시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전국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1969년과 1970년에 정부의 고적보존 정책에 따라 성역화의

대상으로 지정되어 건물을 보수하고,유물 전시관인 옥진각(玉振閣)을 신축하여 퇴계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도산서원 소유의 고서(古書)1300여종 5000여 책과 퇴계문집을 비롯한 목판 총37종 2790판은

보존과 학술연구를 위해 한국국학진흥원에 위탁하여 보관하고 있다.

 

 

 

 

 

 

 

 

 

 

 

안동호 쪽으로 누운 듯 가지를

뻗고 있는 이 왕버들은

400년이 넘는 엄청 큰 왕버들이다.

 

정문으로 안으로 들어가 본다

 

 

왼쪽에 있는 건물은 농운정사와 하고직사이다.

농운정사는 제자들의 기숙가 건물이고

하고직사는 도산서당과 기숙사,서재.부속시절을 관리하고

식사 분비를 위해 지어진 건물로 노비들이 거처했다고 한다

 

 

멀리 중앙에 있는 문이 진도문이다

 

 

 

 

 

하고직사로 가는 왼쪽편 모습

 

 

정문으로 들어온 곳을 돌아본 풍경

멀리 안동호가 훤히 보이는 풍경이다.

 

 

전교당의 정문인 진도문(進道門)

도산서당에서 서원 중앙에 나 있는 계단길을

오르면 활짝 열린 진도문이 나온다.

서당과 서원을 잇는 공간으로 양 영역을

구분 짓는 역할을 하며, 문을 들어서면

서원의 핵심인 전교당이 모습을 비춘다.

 

진도문 양쪽으로는 광명실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다.

진도문 좌우로 서광명실, 동광명실이 위치하고 있다.

 

 

 

전교당에서 바라본 진도문의 뒷모습

 

 

진도문 우측의 서광명실(西光明室)

서광명실은 동광명실의 역할을 분담하고자 1930년에 지은 누각식 건물이다.

이곳에는 유학자의 여러 문집과 근래에 낸 책을 비롯하여 왜국(倭國) 유학자

손시교쿠수이(村士玉水)가 쓴 퇴계서초(退溪書抄)가 있어 퇴계의 학문이 왜열도

유학에 큰 영향을 던졌음을 알 수 있다. 이곳에 보관된 서적들은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있다.

 

진도문 좌측의 동광명실(東光明室)

동광명실은 원래 광명실이라 불렸다. 그러다가 진도문 우측에 또다른 광명실을

만들면서 이를 구분하고자 편의상 동/서광명실이라 부른다.
이 건물은 서원에 소장된 서적을 보관하고 열람하는 공간으로 지금의 도서관으로 보면 된다.

광명실과 마찬가지로 누각식 건물이며, 현판은 퇴계의 친필이다. 건물을 누각식으로

지은 것은 습한 기운으로부터 서적을 보호하기 위함으로 이는 고구려(高句麗)가 만든

국제적인 건축 양식 '부경'과 비슷하다.
지금의 동광명실은 1819년에 지어진 것으로 조선 역대 제왕의 내사서적(內賜書籍)과

퇴계가 보던 수택본(手澤本)을 보관했다. 이곳의 서적은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에 가 있다.

 

 

 

 

 

진도문에서 내려다 본 서원 중앙의

계단과 멀리 정문이 내려다 보인다.

 

 

 

 

도산서원전교당(陶山書院典敎堂) 보물 제210호

서원이란 훌륭한 사람들에게 제사지내고 유학을 공부하던 조선시대 사립교육기관을 말한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처음 세웠다. 그 중 전교당은 유생들의 자기수양과 자제

들의 교육을 하는 강당으로서, 전교당의 앞 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이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임금님 앞에서 쓴 글씨라고 전한다.

 

 

전교당 도산서원의 강당으로 늘 지켜야 할

가르침 또는 가르침을 담당한다는 뜻이다.

 

 

동재(東齋) 박약재(博約齋)

전교당 좌우로는 서재(홍의재), 동재(박약재)가 있는데

이곳은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던 건물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동편 건물을 '박약재(博約齋)' 라 하고

서편 건물을 '홍의재(弘毅齋)' 라 한다.

 

 

 

 

 

 

 

 

기와 담장에서 자라고 있는 풀들

 

 

상덕사(尙德祠)-보물 제 211호 (퇴계의 위패를 모신 사당)

 

도산서산 제일 뒤쪽에 있는 상덕사는 이황 선생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조선 선조 7년(1574)에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69년에 수리한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상덕사를 드나드는 정문은 앞면 3칸 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문은 상덕사를 지을 때 같이 지은 것으로 앞면 기둥은 계단 높낮이때문에

다른 기둥보다 길이가 길다. 

정문 양옆으로 사당 주위를 둘렀던 토담은 1969년 보수 공사 때 돌담장으로 모두 바꾸었다.

 

 

 

 

 

 

 

 

 

 

 

전사청(典祀廳)으로 들어가는 문

 

 

 

 

 

전사청(典祀廳)

상덕사 서쪽 담장 너머에 자리한 전사청은 상덕사 제사 때 쓰일 제수(祭需)

음식을 만들고 보관하는 공간으로 2동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 건물(상덕사와 가까운)을 주청(酒廳)으로 하고 서쪽 건물은 제사용품을

보관하는 제기고(祭器庫)로 삼았다. 사진에 보이는 방(문이 열려있는 공간)은

제수를 준비하는 유사(儒士)가 목욕재계하고 하룻밤 지내는 곳이며,마루에서

제상을 보관했다.

 

 

 

 

 

전사청(典祀廳)에서 나오면서 찍은 문

문 위쪽을 보니 기와에서 와송이 자라고 있었다.

 

 

기와 지붕위에서 와송이 자라고 있는 모습들

 

 

 

상고직사로 들어가는 문 상고직사는

서원의 관리와 식사준비를 위해

지어진 건물로 노비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상고직사 안의 모습들이다.

 

 

늘~ 보면 유년시절 고향의 초가지붕과 부엌을

생각나게 하는 부엌의 두뚜막과 솥이다.

어린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정감이 가는 부엌의 모습.

 

 

멀리 안동호가 보이고 양쪽에는

고직사의 창고들이 보인다.

 

이 문을 나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유물전시관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세월을 안고 빛바랜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창고의 모습들

 

 

고직사를 나오면서 퇴계의 유품과 서원의

보물이 있는 옥진각(玉振閣) 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바라보니 안동호가 내려다 보인다.

 

안동호가 보이는 곳 문을 나와서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본 고직사의 모습.

 

고직사에서 나오면서 내려다본 풍경

 

 

퇴계의 유품과 서원의 보물이 담긴 옥진각(玉振閣)

역락서재 옆에 자리한 옥진각은 퇴계의 유품과

서원의 보물이 담긴 유물전시관으로 1970년에 지어졌다.

 

이곳이 퇴계의 유품과 서원의 보물이 있는 옥진각((玉振閣)

유물전시관인데 문이 닫혀 있어서 안을 들어가 보지 못했다.

 

유물전시관 건물이 있는 곳에서 고직사로 올라가는 계단

 

 

고직사로 들어가는 문

 

 

 

 

 

유물전시장에서 역락서재로 들어가는 문

 

 

담장 기와에 나 있는 이끼와 풀들

 

 

유물전시관 앞 풍경들

 

 

역락서재(亦樂書齋)로 들어가는 문.

 

 

 

 

 

 

 

 

역락서재(亦樂書齋)뒤 담장에서 자라는

풀들 애기똥풀이 노랗게 꽃을 피웠다.

 

 

기와 담장에 애기똥풀과 담쟁이 덩굴

 

 

역락서재(亦樂書齋)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

 

 

역락서재(亦樂書齋) 외부

서원 앞쪽에 배치된 역락서재(역락재)는 도산서당과 비슷한 시기인

1560년대에 지어진 건물이다.
서원 제일 아래쪽에 위치하며, 담장에 둘러져 거의 독립된 공간으로

자리한다.역락서재는 서당 학생들의 기숙사로 퇴계의 제자인

정사성(鄭士誠)이 입학할 때, 그의 아버지가 지어서 기증했다.

온돌방의 서쪽 반 칸을 비워 아궁이를 설치했으며, 현판은 퇴계의 친필이다.

 

담장에 노랗게 익어가고 있는 탱자

 

 

다시 밖으로 나와서 안동호가 내려다

보이는 천연대로 올라가 보았다.

 

안동호를 바라보는 오른쪽이

운영대이고 왼쪽이 천연대라고 한다.

 

 

 

 

안동호 안에 섬처럼 보이는 것이 사사단이다.

 

 

섬처럼 떠있는 사사단을 당겨서 찍은모습

 

 

안동호.

 

 

안동호쪽에서 바라본 호수근처에 서 있는 400년이 넘은 왕버들.

 

 

뻗어있는 그 무게를 못이겨 받침목이 괴여있는 모습.

 

 

호수를 바라보면서 서 있는 왕버들.

 

 

이제는 떠나야 하는 시간 다시 정문을 올려다본다.

 

 

서원옆에 단풍도 벌써 붉게 물들어 가고 있는 모습.

 

 

시사단은 1792년(정조 16년) 정조(正祖) 임금이 퇴계의 학덕을 기리고자 각신<閣臣, 규장각(奎
章閣) 관리> 이만수(李晩秀)를 보내 도산서원 앞에서 과거시험의 하나인 별시(別試)를 치르게
했는데, 이를 기념하고자 비석을 세운 것이다. 비문(碑文)은 당시 재상(宰相)으로 있던 채제공
(蔡濟恭)이 썼다.
원래는 강가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안전을 장담못하게 되면서 1976년 높이 10m, 반경

10m의 동그란 언덕을 쌓고 그 위로 옮겼다. 지금은 안동호의 수량이 적어 들판의 인공

언덕으로 있지만 만수(滿水) 때는 주변이 물로 채워져 하나의 조금만 섬을 이루며, 서원에서 강에

놓인 키 작은 다리를 건너면 시사단으로 접근할 수 있다.

 

도산서원을 나오면서 담은 풍경들

 

 

 

 

 

 

 

 

 

 

 

 

 

 

도산서원 주차장 옆에 세워져 있는 도산서원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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