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당고택
태화당고택은 19세기 말엽에 건축된 고택이다. 이 집은 동래정씨의 집성촌인 연당리에 입향했던 정영방의 후손인 정익세의 고택이다. 살림채인 정침(正寢)과 대문채, 마당 좌측에 있는 고방채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양반가옥이다.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477호, 2005.01.10 지정
건축특징
태화당고택은 기와를 얹은 토석담으로 둘러싸인 집이다.
그 안으로 대문채와 고방채, 살림채인 정침이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는 양반가옥의 일반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건물은 거기에다 약간의 변화를 추구하였는데,
바로 정침의 전면
좌측칸의 사랑마루와 우측칸의 새방 1칸을
좌,우로 1칸씩 돌출시켜 양날개집의 형상을 한 점이 돋보인다.
건축구성
태화당고택은 살림채인 정침(正寢)과 마당 좌측에 있는
고방채 외에 대문채를 별도로 두고 있다.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일자형 건물로
가운데 칸에 대문을 두고 대문의 좌우로 온돌방을 두어
행랑사람들이 지낼 수 있도록 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의 좌측에 3칸 규모의 고방채를
정면에 정면 6칸, 측면 5칸 반 규모의 ㅁ자형의 정침을 두었다.
정침은 기단을 쌓고 출입문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2칸 규모의 방을 두고 좌측에는 사랑을 두었다.
사랑은 온돌방 2칸과 마루방 1칸으로 구성하였고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을 두었으며 퇴칸의 전면에는 평난간을 세운 헌함을 설치하였다.
동래정씨로 연당마을에 처음 입향한 정영방(鄭榮邦)은 본래 지금의 예천군(醴泉郡) 용궁면(龍宮面) 포내리(浦內里)에서 세거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4살 때 종숙부 정조(鄭澡)의 양자로 입적하여 지금의 안동시 송천동으로 이거하게 되었다.
후에 1592년(선조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예천 용궁으로 피난을 가서 친형인 정영후(鄭榮後)와 행동을 같이하였다. 처음에는 청부현(淸鳧縣: 지금의 청송군) 진성(眞城)으로 피난했다가 1596년경에 다시 용궁으로 돌아온다. 이후 1636년(인조14)에 영양(榮陽)의 임천(臨川)으로 거처를 옮기니 동래정씨가 연당에 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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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당고택 주변의 다른 아름다운 고택들의 고풍스런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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