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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살찌우는 글들/믿음 의 글들

2023년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

by 밝은 미소 2023. 4. 9.

 

 

2023년 4/3일 월

(거룩한 7일 간의 도전) 십자가상의 예소님의 마지막 일곱마디와 우리의 삶에 적용.

1.용서."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누가복음23:34

이에 예수께서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 자기들이 하는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감람산 겟세마네에서 마지막 기도를 드리신 예수님은 가롯유다의 배반으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져 붙잡혀가는것을 본 베드로는 놀라서

예수님을 구하고자 칼을 빼들었지만 예수님이 말리시고 멀찍이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계속 따라가고 제자들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함 그리고

그동안 예수님이 일으킨 능력과 기적을 보면 예수님은 충분히 감당하실것이라

생각했지만 제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상황이 전개되어짐.

예수님은 이일즈음에 눅22:53 이제는 너희의 어둠의 때요 어둠의 권세로다라고

예수님이 예언을 해주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구한다고 하였지만 상황이 계속 베드로를 두렵게 만듬

우리의 신앙생활가운데도 이 두려움이 문제임

두려움이엄습하면가졌던 믿음도 떨어지고 오면 내가 신뢰했던것도 자꾸 사라지게 됨 

어려움을 잠시 빠져나가고자 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함

두려움. 마음과 달리 두려움에 베드로는 주님을 3번이나 부인함.

눅22:61.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을 마음으로 사랑함. 베드로의 모습은 바로 내모습임.

이런일이 삶가운데 반복되어짐 내가 얼마나 베드로같은 존재인지.

베드로가 상황가운데 주님을 입으로 부인한거보다 속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했는지 

이 장면을 알기때문에 우리는 울게됨

눅22:61~62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성경학자들은 베드로가 심히 통곡한다는 이구절을 베드로의 회개로 받아들임)

그 베드로가 바로 나임을 깨달아야 내가 정말 파렴치한 죄인인것을 앎.

그런 베드로를 주님은 끝까지 사랑하심 그리고 주는 살아계신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예언하심을 지키셨음

주님의 약속은 주님께서 이루어가신다.

베드로는 지금 제자훈련의 마지막 과정을 거치고 있는것이다.

고난과 환란이 올것임을 주님은 말씀하셨지만 주님이 말씀해주시는 대로 믿지

않고 내가생각하는 대로 믿음. 들어야 할 말씀과 내가 듣고 싶은 말씀은 다른것이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오직 예수님을 붙잡아야 한다)

주님의 기적 권세를 붙들지 말고 주님을 붙들어야 함을 베드로의 사건속에서 알게됨)

어떻게 매맞고 조롱당하는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는가 그렇게 십자가에 계신 주님을

볼때 우리의 신앙은 시험대에 오른다. 때로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때로 우리

마음이 분노로 돌변할때가 있다 이건 건강한 사랑이 아니라 나의 유익을 위한 사랑임.

주님은 우는여자들을 향해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심.

(주님이 침묵하실때 우리는 주님을 조롱하지 않는지)자신을 핍박하는자를 위해기도하심.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까지 피를 흘리시며 가시는 그 모습을 본 그를 사랑했던

여인들이 통곡하면서 우는데 예수님을 죽이라고 한사람만 있는것이 아닌 그를 사랑한

사람들도 있었다. 우는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심.

우리스스로에게 다가올 심판의 날을 대비하면서 우리와 우리자녀들의 신앙을 예비하라는

말씀임.주님께서 나의 삶속에서 역사하실때는 좋아라 하지만 나의 고난에 동참하시느라

침묵하실때 혹은 우리유익을 위해서 때로 아무일도 하지 않으실때 우리는 주님을

조롱할때는 있지 않은지...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매맞고 조롱당하시며 피가 범벅이 되신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7마디 중 한마디를 하심 제 3시에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예수님께서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심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기도로 시작하심.너무 끔찍한 사건

저주받은 사람이나 경험하는 사건 수많은 구약성경을 통해서 메시야가 그런 수난을

받을것이라는 것을 특히 이사야 말씀은 너무나 정나라하게 분명히 주님의 수난사건을

그시대의 선지자 이사야가 기록을 하였음에도 사람들 눈에 실질적으로 그런 모습이

나타났을때는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예수님의 수난사건 자체가 나의 죄를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존재를 위한것이

었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버려진 장소 멸시받는 장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저들을 위해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첫마디가 기도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의미가 크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시작도 기도로 그의 마무리도 기도로 그 기도의 내용이

용서이다. 예수님은 스스로 생명을 버리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다.

 

그 의미는 큰데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가? 

첫번째.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대속의 기도를 온몸으로 드리셨다.

이 기도는 이땅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는것임.자기 백성을 그의 죄에서 구원할자라는

이름의 뜻을 이루시는 순간임.

우리죄를 용서하시는 권세가 있으신 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우리의 죄를

대신 갚으신 것임 이것은 엄청난 감동의 메세지이다.

십자가의 사건을 보면서 깨달아야 하는것은 예수님 살아계실때 단지 말로 사람들을

용서한것이 아닌 나의 죽음으로 너의 죄를 깨끗하 하신다는 의미였음. 온몸으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신다는것을 보여주심.사랑으로 온몸으로 십자가에서

신천하신 사랑이셨음

 

두번째.십자가에 못박은 무지한 자들을 위해 기도하심.(자신에게 고통을 가한

사람들에 대한 기도)

신앙생활을 하는중에도 주님의 영인 성령이 우리 삶에 깊숙이 임하시기 전까지는

우리가 죄를 지을때 조차 우리가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고 있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때는 주님이 주신 긍휼의 마음이 필요하다.

 

세 번째 우리도 그렇게 용서하라는 말씀(십자가에서 용서를 외치심)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나에게 속한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리라)미래를 내다본

용서의 기도이심.(정말 우리에게 필요한것이 용서라는 것을 주님께서 아신것임)

사랑하려면 용서를 해야 한다.요한복음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제자도의 마지막 관문은 원수를 사랑하는것에 까지 나가는것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예수님이셨다.

배신당할때 예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내가 배신당할때 나도 예수님처럼 이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구나 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실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인이 아닌 차이점이 무엇이겠는가? 기독교 공동체와 기독교

공동체가 아닌 그 차이점을 우리가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우리가 믿는 구원의 교리말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게하는 중요한 그 구원이

가르치는 핵심중 하나인 용서이다.

나도 주님처럼 용서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다가온것을 기뻐할 수 있다면 제자도의

마지막을 우리가 이루는 것이다. 

내안에 악이 있다면 내가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것이 아니라 세상의 영을 받은것이다.

고상한 그리스도인이라는것은 없는것이다. 내안에 엄청난 이런 주님의 음성이

들릴때마다 마음가운데 고민되는 그것이 바로 영적전쟁인것이다. 십자가에서 용서를

외치는 주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을까를 생각해보는거 용서하기 힘들고 억울한 마음이

들때마다 주님을 가장 가까이서 배신한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되는것

우리가 고난주간.에 묵상해야 되는것이다.

내가 바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존래라는 이사실을 기억하는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은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주신것이라는것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사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주신 말씀이 아니겠는가 오늘 구원의 은혜를 입은 우리들이

고난주간을 맞이하면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용서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려면

우리는 주님의 용서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배우는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실천해야 한다. 내가 용서 할때 주님이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구원이 자유함과 평안과

능력이 나의 삶 가운데 임하게 되는것입니다.

 

 

2023년 4/4 화요일

(거룩한 7일 간의 도전) 십자가상의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마디와 우리의 삶에 적용.

2.구원.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23:43

두 행악자도 예수와 함께 끌려와서  예수님 좌우편에 있더라 예수님이 두 범죄자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심 이에 이런자들도 용서하여 주소서

.(죄인들의 죄를 대속해 달라고 기도하심 나도 이속에 속함)

눅23:35 백성들은 서서 구경하고 있음 조롱 십자가는 끝까지 고통이다.

악이 우리의 삶을 삼키는 모습이다.예수님을 아는것과 믿는것은 완전히 다르다.

(절망가운데 희망이 있음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다고 고백하는 죄인의 모습)

나를 기억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는 사형수의 믿음의 고백 함께 죽어가는

예수님께 고백하는 모습) 제자들도 하지 못한 고백을 하는 모습이다.

(우리의 상황에서의 고백 두사형수의 선택 지옥과 천국. 죽어가면서 고통속에서

은혜를 구하는 모습.23:43십자가의 역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보이는

(역설적인 구원의 선물 오늘 네가 나와 함께 있으리라.구원은 오늘이다 기다리지 마라.)

 

성경전체 맥락에서 3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도 당신이 천국의 주인이심을 선포하신다.

예수님은 좋을때의 상황에서든 나쁜 상황 가장 극한 상황인 십자가 상황에서도

천국의 주인임을 선포하셨다.

요한계시록22장에 보면  천국에서 생명수가 흘러나오는데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이신 어린양 예수님께로부터 흘러나온다라고 기록함

구원은 예수그리스도께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어린양이신 예수님은 희생제물일

뿐만 아니라 죄를 사하는 권세도 갖고 계시며 그리고 그 권세를 주장하시는천국의 

주인이시기도 하시다 이것을 마지막 십자가상에서도 선포하셨다.

사도요한이 밤모섬에서본 환상이었음.

2.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도 우리를 초대하신다.

내가 이나라의 주인이야 라고 자랑만 하시는 것이 아닌 그나라로 초청하심

극악무도한 죄인을 초청을 하신다

요한복음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한 사형수는 여기에 반응한것이다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상황가운데

죄를 지었는지 그리고 이곳까지 왔는지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마음을 가졌는지 우리는 일일이 다 알 수 없다.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부활과 생명의 주체이신 예수님께서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고

그를 믿는자는 그가 누구든지 부활과 생명을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이 말씀 가은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결단을 물어보시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주변사람들은 속속들이 다 알지 못한다.

오직 주님께서만 아신다.

강도의 삶도 모른다 중요한것은 그가 반응을 한것이다

그 반응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심 눅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십자가 상에서의 말씀은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사랑으로 최고의 구원을 선포하신

것이다. 마지막 주님께서 보여주신 구원이 역사이다.

십자가 사건속에서도 우리를 초청하신다면 주님은 우리의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들어오셔서 우리를 인도해 주실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주님의 이 초청에 진실한 믿음으로 반응할 때 그가 누구든지 주님이 받아 주신다.

예수님 당신의 나라가 임할때 나를 데려가 주소서. 저를 허락하여 주소서

강도가 신학적인 것은 잘 모른다 마지막 사형수의 고백을 받아주신다.

죽음앞에 내가 용서하지 못한것을 고백해야 한다.

누군가 용서하지 못한거 용서해야 한다.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죽어가면서 증오하는가

그것은 열매가 아니다 내가 용서받았다는 것은 마지막 나의 모든것 쏟아놓고 제가

이런거 용서하지 못했는데 지금 다 털어놓습니다 이게 바로 증거고 자세이다.

같이 죽어가는 존재가 나를 기억하소서 주님은 그 사형수의 고백을 받아주신다.

나의 명예가 더럽혀지고 안간됨의 권리가 수치를 당한다고 느낄때마다 십가가

에서 벌거벗기신 채 모든 모욕을 당하신 나의 주님을 바라보라! 이것이 필요하다.

천국은 영생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것이다. 

이 세가지의 예수님의 정체성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소망을

바라보지 않고 격려를 받지 않는다면 어디서 소망을 바라보겠는가

천국은 영생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것이다 이 3가지 예수님의

정체성을 잘 기억해야한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은 진정한 나의 왕이신 동시에 희생양이시면서 구원자이시다.

진정한 창조주 나의 삶의 주인 이 3가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럴듯해도성경을 갖다 대도

이단인것이다.이단의 교주는 살아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지도 죽은적도 없고 부활한적도

없다. 주님이 범죄자로 십자가에 달리셔야 내가 구원을 받는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속의 원리이다.이사야 53:12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이것은 하나님의 목적이었고 이땅에 오신

사명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예언되어진 것이다 우연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별명이 무엇이었나 죄인들의 친구라 하심 의인을 위해서 오신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해 오시고 죄로 인해 마지막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요한복음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러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도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말씀 그리고 요한복음 14장에서

말씀하신 내가 다시와서 너희를 데려가리라 하신 말씀이 우리 삶가운데 믿음으로

반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년 4/5일 수요일

(거룩한 7일 간의 도전) 십자가상의 예소님의 마지막 일곱마디와 우리의 삶에 적용.

3.사랑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한복음19:26

어머니의 품은모든것으로 부터 안식할 수 있는 가장 따스한곳. 모든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제공하신 가장평안한곳이다.

예수님은 이땅에 사람의 모습으로 오심 남자를 알지 못하는 동정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 그 어머니의 마리아의 품에서 유아기를 보내시고

인간의 모습으로 자라나신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다.

그런 예수님께서 이땅에서 모든 사명을 마치시고 마지막 숨을 내쉬고 계심

몇 사람들과 예수님사이에 이루어진 대화가 오늘 본문이다.

예수곁에는 4명의 여인들이 있었다 육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마리아의 자매이

면서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로 알려진 살로메 작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로

추종되는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가 있었다.

남자들도 다 도망을 가는데 끝까지 예수님을 지키는 여성들 여성들의 강함을

봄 그리고 유일하게 남아있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남자한명 제자요한

 

1.인간이 죽기전에 하는말 가장 하고 싶은말이면서 진실된말

육신의 어머니에게 말씀하심.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고통스런 십자가 형벌을 받는 자신의 아들 예수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그

어떤것보다도 견디기 힘들었을것임. 예루살렘 성전에서 선지자 시몬이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한말씀 칼이 네 마음을 찌를듯하리라

마리아는 그 말씀의 의미를 지금 고통스럽게 느끼고 있음.

예수님이 아무말도 못하고 통곡하고 계신 마리아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심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여자는 당시 여자를 부르는 존칭어임

ㄴ누구도 쉽게 지켜볼 수 없는 십자가 형벌의 현장 그것이 내 가족이고

아들일 경우는 더힘들것임 아들의 고통을 직시하게 하시는 예수님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마리아 그러나 이 육신의 어머니마리아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신앙과 용기를 지닌사람이었음  그러나 거기까지임 그렇다고 마리아를 숭배하고

기도를 하는것은 마리아을 욕되게 하는것임.

모든영광은 당신의 육신의 아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이땅에 보내신 아들 예수님께

돌아가야 된다는것을 어느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마리아이기 때문임.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아들의 비밀을 잘 알고 있는 사람임 성령으로 잉태되면서

그 모든어려움을 겪고  그리고 이땅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인것을 구원자로 오신것을 알기에 고통의 순간에도 아들 예수가 걸어야할

길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였을것임.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를 향해 보라 네 어머니라 예수님께서 사랑한 제자 요한이었다.

제자 요한의 어머니와 육신의 어머니는자매였다 그러나 이런 혈연관계를 떠나서 특별히 예수님은

요한을 제자로써 사랑하셨다.

다는 제자들은 없고 요한만 있었던것이 특이함 고통가운데 어머님의 고통을 아는 예수님.

예수님의 공생애에도 이금 이자리에도 아버지 요셉은 없음 일찍 남편을 보냈을것임.

그런 어머니를 마지막 사명을 요한에게 부여하신것이다.

이말을 들은 요한은 평생 이 약속을 지키기로 함 

요한복음19: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님이 이 부탁을 요한은 평생지키고 자기 친어머니처럼 모신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마리아는 90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요한은 예수님의 약속을 지키기위해

마리아를 40여년동안 봉양을 한것이다.

그 후에 예수님이 3일만에 부활하시고 낙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다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약속하시고 성령을 보내심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받은 제자들은 온세계

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 그렇게 제자들이 사역을 할때 요한은 보이지 않음

구렇다면 요한은 무엇을 하였는데 다른사도들에 비해 조용한 했고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았던 제자였음

요한은 예수의 어머니를 모심그것이 요한에가 주신 예수님의 사명이었음.

요한에게 첫번째 사역은 마리아를 섬기는 거였음

사도요한도예루살렘 근교에서 마리아를 40년의 세월을 마리아를 봉양했음

유명한 역사가인 요셉이우스에 의하면 요한은 AD70년에 예루살렘이 멸망하기전인 65년경

지금의 터키의 투루키의 서부 지금의 항구도시인 에베소로 사역지를 옮김

에베소교회이고 에소교회는AD52년경에 사도바울이 개척을 하고 그뒤 디모데가 섬겼지만

이들 모두 다 순교를 당하고 에배소에온 요한은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끝까지 모시고

왔는데 AD431년에에베소공회의 기록은전하기를 요한이 마리아를 위해서 집한채를

지어줬다고기록함 마리아를 봉양한 요한은 마리아가 소천한 후에 AD 85년에서 90년경에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한1~23서를집필하게 됨요한은 성격이 불같았음. 예수님께서 우뢰의

아들이란별명을 지어줌 이런 요한이 마리아를 봉양하면서 성품이 바뀌어감 그런 요한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라는 기독교의 중심구절을 쓰게됨. 그리고 몇년 후

하나님은 요한으로 하여금 그 유명한 요한복음을 쓰게 하셨고 요한복음은 마태,마가,누가복복음

이 보여줄 수없는 예수님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비유들을 보여준다. 

가장 나중에 쓰여졌고 깊은 묵상을 한것을 다 하나님께 영감을 받은 그런것이지만 사도요한의

삶고 성품을 통헤 하나님께서 쓰게 하셨다.

화를 잘내고 권력욕이 많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인 요한이 요한복음에서 말씀,진리,생명,빛,사랑

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예수님께서만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것을 역설하게 됨.

그 유명한 요한복음 3:16절말씀도 사도요한에 의해 탄생되어짐 그리고 AD94년경 당시 기굑교인들에게 엄청난

핍박을 가하던 도미티아스 황제 시절에 에베소에서 붙들려서 고문을 당하고 70km떨이진 밤모섬에 유배를

가게 되고 고령의 나이에 채석장에서 중노동을 하면서 지내고 그때 요한에게 다시 하나님이 영이 임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불꽃같은 계시로 성경의 마지막을 예언하는 요한계시록을 받아쓰게된다.

요한계시록이 없이 우리는 미래를 소망할 수 없다,요한복음 3:16절이 없이는 요한1서가 기록한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다 이런 말씀들이 없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이해하지 못했을것이다.

누가봐도 예수님의 역사속에서 제외된것 같았던 한사람 요한이 결국에는 하나님에 의해서 가장 늦게까지

가장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는 이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요한은 예수님의 어머니를 40년간 봉양하면서 인생을 깊이 묵상하고 다른 제자들보다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고 그런 시간들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앞에 자신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하나님을 깊이 예배하고

하나님과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마리아를 봉양하면서 보낸 40년의 세월은

절대 잃어버린 세월이 아니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황금의 시간들이 었다.

사도요한이 예수님이 주신 마지막 사명 보라 네 어머니라는 계명을 40년동안 지키고 배운것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었다,요한1서 4:7~11절까지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 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이 4구절에사랑이란 말이 13번 하나님이 10번이나 나옴 말만 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 사랑을

증명하실뿐더러 그 사랑을 통하여서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셨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아 하고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됨을

입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주신 이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해 보자

1.우리에게 주신 육신의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라.

우리가 믿지 않는 부모님께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효도하는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들어주신다.

2.혈육을 뛰어넘는 확장된 사랑을 실천하라.

우리나라는혈연 문화가 강하다 남의 가정과 가족도 귀하게 여겨야 한다

특히 우리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그래야 한다. 어머니 마리아는 다른 형제들이 

돌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사랑하는 요한에게 맡기셨다.

혈연사회가 집단적 이기주의로 가면 아이들 그속에서 다른가족들을 볼 수 없게 된다

이기적인 사랑을 배우게되는것이다.

주님이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라라는 가족사랑을 명하셨다면 가족사의 지경을

이웃사랑으로 확장하여야 한다 그래아야 그리스도인이고 그것을 배우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그 사랑을 배우게 하기위해 우리에게 가정을 주셨다)

3.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세워진 공동체를 주님의 사랑으로 가꾸라.

마태복음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ㅔ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땅에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실것을

아셨음 혈연을 뛰어넘는 공동체집단 이기주의를 뛰어넘는 공동체 예수님의 피를 수혈받은 이 영적 

공동체르 세우게 하시려는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전세계에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려고

하시려는 주님의 놀라운 계획 바라 하나님께서 이땅에 허락하신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 교회공동체를

세우게 하시는 것이다, 여기에 주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과 능력이 나타나는곳이 교회 우리가

섬기는 공통체 교회이다.

혹시나 혈연관인형제들에게 받은 상처가 있으면 교회에서 치유받으실 수있다.

세상에서 멸시받은거 교희공동체에서 회복되실 수 있다 왜 예수계서 영적은 새로운 공통체를

우리에게 주셨는가 무엇을 하게 하시려고 분명한 하나님의 목적과 vision이 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야 하는곳이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로서 예수님 안에서 만났다면 새로운 공통체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는 말씀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