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리
내가 사용한다고 하였더니
아버지께서 이렇게 색까지 넣어서 예쁘게 만들어 주셨다.
나의 고향은 충청남도 공주 정안 앞 뒷산들이 가로막혀
하늘만 보이는 그런 아늑한 산골이었다.
그러나 국도가 바로 동네 옆을 지나가서
산골치고는 그래도 교통은 편한 편이었던 곳이었다.
그러나 학교를 다니려면 우리 동네에 분교가 생기기 전엔
면 소재지 까지 6km를 걸어 다녀야 하는 먼 곳이었다.
내 아래 바로 동생들은 동네에 생긴 가까운 분교를 다녀서 편했지만
언니와 나는 6km나 되는 먼곳으로 학교를 다녔었다
그곳까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고등학교 부 터는 집을 떠나 천안이나 공주시내로 가야 했다.
집에서도 다닐 수 는 있었지만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해
차가 많은 시절도 아니었고
눈이라도 많이 내리는 날엔 차가 연착이 되어 학교에 가질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나니
아예 천안이나 공주로 나가서 학교를 다니곤 하였다.
망태
못에 걸어놓는곳엔 거는데 편하도록
새끼를 아주 가늘게 꼬신 배려까지.ㅋㅋ~
부모님은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시면서 우리 6남매를 가르치신
평생을 농부로 빼가 굳으신 분이셨다.
우리가 어린 시절을 보낸 그 시절엔 농기구가 별로 없던 시절이고
운반을 할 수 있는 도구란 그저 길이 넓은 밭이나 논이면
소가 끄는 마차가 전부였고 아니면
리어카에 짐을 싣고 사람이 밀어서 다니고
그것도 길이 좁은 곳은 아버지께서
손수 지게를 만들어서 어깨에 매고는 지게에 짐을 싣고 나르셨었다.
그리고 모든 농사에 쓰이는 기구며 집에서 필요한 것들은
거의 만들어서 사용하셨었다.
그 때 아버지께서 만들어 쓰셨던 대표적인 것이 추수를 하고 벼를 담았던
가마니와 그 곡식들을 말릴 때 사용하던 멍석과 밭에 다니면서
물건을 담아 사용할 수 있는 짚으로 만든
망태기와 미꾸리 등... 었고
여름에 산에서 싸리나무를 베어가지고 만드신 광주리이었다.
미꾸리
공기 정화하는데 좋다는 숯을 담아놓았다
결혼을 하고 고향집을 떠나 서울에 살면서 세월이 가고 나니
가끔 아버지가 만드셔서
사용하던 것들이 때론 그리울 때가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집안에서 쓸 수 있는 작은 소품들을 만들어 달라 하였더니
아버지께선 그런 것을 뭐 하러 만들어 달라 하느냐
좋은 것들도 많은데 라고 말씀하시는걸
아버지 보고 싶으면 보면서 아버지 생각도 하려고요
라고 하였더니 아버지가 집안에 놓고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소품들을 몇 년 전에 몇 개 만들어 주셨다.
꽃을 말려 거실 한 켠에 놓을 수 있는 망태기와 미꾸리를 만들어 주셔서
작은 미꾸리는 공기 정화하는데 좋다는 숯을 담아 놓고
큰 며느리에게 외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건데
너도 갖고 싶으면 하나 고르라 하였더니
큰 며느리도 작은 걸로 하나 가지고 가서 마른 소재를 담아놓고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어딜가도 잘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가 만들어 사용하시던 물건들을
집안에 놓고 주로 꽃이 많이 나와서
가격이 쌀 때 꽃을 사서 그늘에서 말렸다가
그 마른 꽃들을 담아놓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작은 소품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별볼 일 없는 것이라도
나에게는 아버지의 손길이
묻어있는 소중한 것이라서 아끼는 물건이 되었다.
이번 봄날에도 꽃을 한아름 사다 말려 담아놓고 아버지의 냄새를 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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