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과 월지
경주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고려 태조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의 『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으며, 이 후
신라가 멸망하고 고려와 조선에 이르러 이곳이 폐허가 되자, 시인 묵객들이
연못을 보며 '화려했던 궁궐은 간데없고 기러기와 오리만 날아든다.'는
쓸쓸한 시 구절을 읊조리며, 이 곳을 기러기 '안'자와 오리'압'자를 써서 '안압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후 1980년대 '월지'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되며, 이 곳이 본래
'달이 비치는 연못'이라는 뜻의 '월지'라고 불렸다는 사실이
확인 되어 '안압지'라는 이름은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지나가는 등 많은 훼손을 입었던 임해전 터의 못 주변에는
1975년 준설을 겸한 발굴조사에서 회랑지를 비롯해서
크고 작은 건물터 26곳이 확인되었다.
그 중 1980년에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곳을 포함하여, 신라 건물터로 보이는
3곳과 월지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중 보상화(寶相華) 무늬가 새겨진 벽돌에는
'조로 2년(調露 二年, 680)'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 임해전이
문무왕때 만들어진 것임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대접이나 접시도 많이 나왔는데, 이것은 신라무덤에서 출토되는
것과는 달리 실제 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임해전은 별궁에 속해 있던 건물이지만 그 비중이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이며,
월지는 신라 원지(苑池)를 대표하는 유적으로서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올 수 없게 만들었다.
이는 좁은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느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신라인들의 예지가 돋보인다.
(동궁과 월지의 모든 자료는 문화재청에서 발췌)
비가 그친 후 바람이 심하게 불어 삼각대도 사용하지 못하고
몸이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불어
야경을 담아본 경험도 없어 사진이 흔들리니
카메라 조리개도 활짝 열어 사진을 찍고
물이 흔들려 반영도 없어 재미없는 사진이 되어버렸다
임해전
애효.~ 무섭게 부는 바람에 모자 날아갈라
지난 4/23~25일 2박3일 친구들과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2달 전에 예약을 해놓은 것이라
비가 온다는 예보에도 여행을 떠났는데 23일 새벽부터 비가 내리더니
하루 종일 비가 내려 경주에 도착해 숙소인 대명리조트
5층에서 내려다보이는 호수를 바라보며 빗소리를 들으며
수다를 떨면서 하루를 보내고 밤새도록 비가 내린 후 24일 날은
활짝 개인 하늘을 기대했지만 밤새도록 내리는 비는 24일에도 야속하게 하루 종일 내린다.
23일 저녁에 야경투어를 예약해놨다가 비가 많이 와서 취소하고
24일 저녁에 야경투어를 했지만 하루 종일 비가 내린 후
저녁까지 비가 오더니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비가 그쳤지만 바람이 얼마나 심하게 부는지 날아갈 듯 부는 바람 때문에
아름다운 반영은 물이 흔들려 보지 못하고 그나마 비가 그쳐 야경을 본 것으로 만족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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