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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가족이야기

엄마의 歲月

by 밝은 미소 2023. 1. 9.

엄마의 歲月

                   엄마가 가장 좋아하시던 백일홍

 

 

이렇게 추운 겨울날이 되면 난 친정엄마와 함께 했던 유년시절의 

엄마의 곱고 고왔던 감성의 추억을 회상하곤 한다.

나 어린 시절 울 엄마는 여름날 예쁜 빛 고운 백일홍과 가을날

살살 바람에 나부끼는 고운 빛깔의 살살이꽃 (코스모스) 꽃을

잎을 따고 예쁘게 물든 단풍잎을 주워 예쁘게 말려놨다가 가을이

저물어 무서리가 하얗게 내릴 때쯤이면 집안의 모든 문들을

떼어내 마당에 내놓고 먼지털이개로 먼지를 털고 문을 비스듬히

세워놓고 지난해 발라서 색이 바랜 누런 창호지에 물을 살짝

뿌려놨다가 창호지를 모두 떼어내고 새하얀 창호지를 문살에

바른 후 비자루로 쓱쓱 빗어 내리고 마른 수건으로 꼭꼭 누른 후

문고리가 있는 손잡이 부분에 곱게 말려둔 여러 가지 꽃들을 모양이

예쁘게 올려놓고 그 위에 창호지를 덧바르고 그늘에 말리면 고운

꽃과 단풍들이 이듬해 가을 다시 문살에 창호지를 바를 때까지 방안의 

등잔 불빛을 받아 은은하게 비추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게 하셨었다.

 

 

                                         코스모스

 

 

 

 

지금도 고향집 사랑채엔 창호지로 바른 문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사랑채는 사용을 하지 않아서

꽃잎들을 붙여놓지 않으시지만 나의 유년시절만 

하여도 초가지붕에 방방마다 창호지를 발라서

겨울이면 찬바람을 막아주며 악기처럼 바람에 

우우우~~ 떨며 소리를 내던 문풍지 소리가

울리던 창호지 문이었다.

나무 문살에 창호지를 바르고 옆에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붙여놓았던 문풍지.

그 문풍지는 엄동-설한(嚴冬-雪寒 )

윙윙 불어대던 찬바람을 막아주던 추억의 소리이다.

 

 

 

그 창호지 문엔 엄마가 다듬잇돌에 하얀

옥양목을 빳빳하게 풀을 먹여 방망이로

두드리던 맑고 그윽한 추억의 소리가

스며있고 추운 겨울 밤 사랑방에 군불을

때고 이글대던 불을 담아 화로에 담은 

화롯불이 긴~긴 겨울밤에 군것질을 할 수

있게 밤이면 고구마가 익어가고 김칫광에

얼음이 대글 거리던 동치미를 퍼다가

고구마와 군밤을 먹던 추억이 담겨있고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즈음 

화롯불에 보글보글 끓던 된장찌개 내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추억 속의 진한 그리움들이다.

 

   지금도 거실 한편을 지키고 있는 시어머님이 사용하시던 다듬잇돌          

 

       내 유년시절 김장을 보관했던 김치광

 

깊은 산골 마을에 어스름 어둠이 내리고 등잔불이

켜지기 시작하면 한지의 창호지 문에 비치는

불빛을 받아 엄마가 곱게 붙여놓았던 갖가지

꽃잎들과 단풍잎들이 은은한 등잔불빛을 받아서

그 빛이 참으로 아늑하고 포근했었다. 

그래서 난 지금도 창호지 문을 보면 내 유년시절 젊고

고왔던 울엄마 모습을 그 창호지 문속에서 찾곤 한다.

 

젊은 시절 참으로 고왔던 울엄마모습 엄마연세

80세 때 우리와 일본 여행 중 후지산에서 찍은 사진.

 

 

그뿐인가!

손잡이가 달린 곳에 예쁜 갖가지 꽃잎들이 비추고

그 아래 작은 유리를 네모로 자른 후 작은 창을

내어 추운 겨울날 문을 열어 보지 않고도 창문

밖을 살필 수 있게 작은 유리를 붙여놓았던 문.

지금 생각하면 참 지혜롭고 운치가 있었던 작은

창문이었다.

지금은 고향집엘 가도 보기 힘들어지고

있어도 사용을 하지 않는 그 아름다운

창호지 문과 우우우~ 악기처럼 소리를 내던 문풍지.

 

엄마가 심어서 여름날 흐드러지게 피었던 봉숭아꽃 10년전 사진이다.
엄마 꽃밭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소담한 다알리아꽃

 

그렇게 늦가을 문종이를 발라 갖가지 예쁜 꽃잎들을 붙이고

그 위에 문종이를 덧발라 꽃을 볼 수 없던 겨울 아름다운

꽃들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들어 놓던 엄마는 꽃을 너무

좋아하셔서 엄마의 꽃밭과 집 주변엔 항상 꽃들이

피고 지고 꽃 속에 묻혀 평생을 살아오셨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엔 양옆으로 여름날이면 봉숭아가

흐드러지게 피고 늦은 가을까지 엄마가 가장

좋아하시던 백일홍이 지천으로 피어있었던 나의 고향집.

 

 

 

아주 오래전 여름날 친정에 갔다가 집 주변에 흐드러지게

핀 꽃이 커서 주먹만 하다고 우리가 주먹봉숭아라 부르며

유년시절 여름밤 마당에 멍석을 깔고 딸들의 손가락에

봉숭아 물을 들여 주시던 아버지가 생각나게 하는

봉숭아꽃과 엄마가 꽃 중에 가장 좋아하시던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핀 꽃을 고향집에서 찍어왔던 10년 전 사진들이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셨던 백일홍

 

그렇게 곱게 평생을 아버지와 함께 고향집을 지키시면서

수채화처럼 살아오셨던 엄마가 이젠 94세 5년 전 93세

셨던 아버지께서 집에서 4km 떨어진 면소재지 농협으로

예금을 찾으러 가시다 차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신 후

충격을 받아 엄마는 우리를 알아보지도 못하시고 병원과

집을 오가면서 1년을 앓으신 후 회복은 되셨지만 치매가

오셔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으신다면서 점점 말을

잃어가시고 멍하니 하루 종일 누워서 벽에 걸린 환하게

웃고 계신 아버지 사진을 바라보시면서 혼자서 무엇인가

아버지랑 중얼중얼 하루종일 대화하시는 것이 일상이 되셨다.

 

 

3년전 가을 어느 날 고향에서 엄마랑 산책하면서

 

엄마가 점점 쇠약해지시고 걷지를 못하시니 엄마를 돌보시는

요양보호사 아주머니와 가끔 마당 한 바퀴를 도시는 것이

아버지 떠나신 후 엄마의 지금까지의 일상이었다.

귀가 어두워져 우리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시니 전화도

할 수가 없고 누워만 계시는 엄마를 만나고 오는 날은

그저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날로 자꾸만 작아지시는 엄마 어쩌면 이젠 서서히 엄마와

이별을 준비해야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금방 돌아가실 것 같던 엄마가 금방

꺼져가는 촛불 같은 모습으로  5년을 견디시며 지금까지

생명을 이어오고 계시다. 

젊은 시절 참으로 고우시고 정갈하셨던 울 엄마 그런 엄마가

점점 기억을 잃어버리고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

모습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젊은 시절 곱고 곱던 울 엄마

모습이 더욱 간절히 그리워지곤 한다.

 

 

작년에 찍은 엄마 모습 이제는 말도 점점 잃어가시고 하루 종일  

묻는 말에 동문서답하시고 그런 엄마 보면서 가슴이 무너져 

눈물 흘리는 딸을 보면서 나는 괜찮아 너희들만 건강하면

된다는 말만 되뇌시는 엄마 그런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그냥 가슴이 와르르 무너진다.

그러다 정신이 드시면 너의 아버지한테 빨리 가고 싶은데

왜 이리 명이 길다냐라고 하시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시며

누워서 벽에 환하게 웃고 계시는 아버지 사진을 보시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되었다고 당신이 연세가

100살이라 했다가 70살이라 하셨다 점점 기억이 멀어져 가는 엄마.

그러다 기억에 도움이 된다는 그림에 색칠을 하고 맞추기를 하시다

그것도 귀찮아지면 그냥 그 자리에서 다시 누워 아버지만 바라보셨던 엄마.

 

작년 겨울에 엄마랑 함께 담았던 사진

 

점점 작아지시고 기억이 희미해지시는 엄마와

나는 과연 얼마나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런지...

요즘은 엄마 생각이 더 가슴 절절히 가슴에

스미고 눈물을 흘리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집에 가면 엄마랑 함께 했던 시간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이렇게 엄마와 사진을 찍곤 했는데...

 

 

지난여름까지만 해도 요양보호사 아주머니와

함께 마당 한 바퀴 정도는 걸을 수 있었던 엄마.

그리고 가끔은 그림에 색칠도 하셨었는데

이젠 그것조차도 하실 수가 없이 자꾸만

무너져 내리시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내 가슴도 자꾸만 자꾸만 와르르~무너져 내린다.

 

 

2년전 여름에 찍었던 울엄마 사진

 

2년전 가을에 엄마랑 함께 찍었던 사진 그러나 이젠 이런 사진도 담을 수 가 없다

 

지난 수요일 엄마를 뵈러 공주 정안 고향집에 갔는데

엄마가 처음엔 날 못 알아보시더니 한참이 지난 후에

내가 누구냐고 물으니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둘째라고 하시면서 재훈할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으니 사위라고 하시면서 씩~ 웃으신다.

엄마! 기억이 가물가물 이젠 수저질도 못하시고 

수저로 떠 넣어 드려야 죽도 넘기시는 엄마.

아기 같은 모습에 그래도 나와 사위를 기억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엄마 볼에 입맞춤을 하면서 엄마 사랑해~

고마워를 엄마가 알아듣든 못듣던 엄마귀에 속삭이며

엄마를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딸이 우는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난 괜찮아 너희만 건강하면 된다고

중얼거리시는 엄마를 보면서  많이 야위어 누워있는

엄마를 안아보면서 엄마와 함께하는 이런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허락될는지 가슴이 또 무너져 내리곤한다.

 

엄마가 요즘 건강이 안 좋아지고 기억을 못 하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수저질도 못하시고 음식도 연한 죽정도만 드시고

깔끔한 성격이라서 기어서라도 화장실을 가시더니

이젠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못하시고 누워만 계시고

난 괜찮아 괜찮아만 뇌이고 계신엄마 그런 엄마와 이젠 

서서히 이별을 준비해야 되는 날들이 오는가보다.

유난히 꽃을 좋아하셔서 당신의 꽃밭과 집 주변을

온통 꽃으로 물들여놓고 창호지 문에다 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도록 마른 고운 꽃과 단풍을 담아서

겨울 동안 은은한 등잔 불빛에 고운 엄마 감성까지

추억하게 하셨던 울 엄마 그 엄마랑 이젠 서서히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오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을 땐 언제고 달려가서 엄마를

볼 수 있도록 지금껏 우리 곁에 계셔주시고 평생을 

아버지와 함께 수채화처럼 살아오시고 내 유년시절의

추억이 오롯이 남아있는 고향집에서 누워계신 것만도 엄마에게

그리고 엄마를 모시고 있는 동생에게도 참으로 고맙고 감사한 날들이다.

 

 

난 과연 앞으로 엄마랑 얼마나 이런 날을 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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