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여행(중미,과테말라)

중미 과테말라 (Tikal) 마야문명 유적지에서(1)

by 밝은 미소 2024. 5. 23.

 

 

티칼(Tikal)은 과테말라 페텐주의 열대우림 지대에 있는 마야문명의 유적이다.

마야어로는 약스 무탈이라고 불렸을 것이라 추정한다.

마야 문명의 도시들 중 가장 거대한 규모의

도시이며, 과테말라 북부 페텐 분지에 위치하고 있다.

과테말라 티칼 국립공원 내부에 소재하며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티칼은 고전기 마야에서 가장 강력한 도시들 중 하나였으며, 활발한

정복 사업을 통하여 주변 도시들을 지배하던 거대한 왕국이었다,

. 도시의 건립 연대는 기원전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마야 고전기인 200년에서 900년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전성기에는 마야 문명 전체를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통합한

강국이었으며 메소아메리카 지방 전체를 통치하거나 영향력을 미쳤다.

이 시기 티칼의 인구는 무려 9만 명을 넘기도 하였다.

다만 멕시코 계곡에 있는 테오티우아칸의 국력에는 미치지 못하여

기원후 4세기 경 테오티우아칸과 전쟁을 벌여 패한 적이 있다.

 

고전기 후기 경에 지어진 새로운 신전들이 발굴되지 않고, 왕궁들이

이 시기에 불탄 흔적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전기

후기부터 점차 도시가 버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10세기 말에는 점진적인 인구 감소와 함께 연이은 전염병,

흉작으로 인하여 거의 완전히 버려진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티칼은 한때 마야 지방 전체를 통치했던 거대한

왕국이었던  만큼, 이곳에서는 그 어떠한 마야

유적지보다도 많은유적들이 존재한다. 고고학자들은 이곳에서

왕의 무덤, 거대한 신전 피라미드, 농경지의 흔적들을 다수 발굴한 바 있다.

 

-출처: 위키백과-

 

 

 



 

 

 

1호 신전

1호 신전은 종종 '재규어의 신전'이라고도 불린다. 자소우

카이이 1세에게 바쳐진 무덤 겸 사원으로, 734년에

왕의 시신이 이곳에 안장되었으며

신전은 740-50년 경에 완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신전은 대략 47m의 높이를 자랑하며, 꼭대기에 있는

거대한 지붕 장식에는 원래 왕좌에 앉아있는

거대한 왕의 석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하나 시간이 흐르며 파괴되어 현재는 이 석상을 알아보기 힘들다.

1962년에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어브레이 트릭 교수에

의해 발굴되었으며, 이때 이곳에 묻힌 왕의 무덤도 함께 발견되었다.

 

고전기 후기에 봉인된 이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들에는 수많은

사람 뼈와 동물 뼈들,주색으로 칠해진 신들과 인간들을

묘사하고 있는 아름다운 벽화들, 옥과 조개 껍데기로

만들어진 부장품들, 음식과 음료수와 같은 공물들로

가득찬 도자기 항아리들이 있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신전에는 3개의 방이 있다.

모두 일렬로 쭉 늘어서 있는 구조로 배치되어 있으며

문가에는 목재로 만든 상인방들이 문 위의 하중을 지탱하고 있다.

가장 바깥쪽의 목재 상인방은 아무 장식이 되어 있지 않으나,

안쪽 2개의 상인방은 정교한 장식이 새겨져 있다.

그 외에도 천장 지지대용 목재들도 이 신전 안에 보존되어

있는데,이들 중 몇몇은 유럽의 박물관으로 방출되었으며 몇몇은 사라졌다.

 

 

 

 

 

 

 

 

2호 신전

2호 신전2호 신전은 '가면의 신전'이라 불리기도 한다.

대략 700년 경에 건설되었으며 높이는 38m이다.

티칼의 여타 신전들과 마찬가지로 2호 신전

꼭대기의 사원에도 3개의 방들이 있으며, 1호

신전과 비슷하게 문가에 목재로 만든 상인방들이 있다.

 

다만 이 상인방에는 오직 2번째 상인방에만 조각이 되어 있다.

자소우 찬 카이이 1세의 아내에게 봉헌된 것으로

추정되나 무덤은 발굴되지 않았다.

왕비의 초상화가 꼭대기에 자리한 사원 상인방에

조각되어 있으며 현재 이 상인방에 붙어있던 목재

장식들 일부는 뉴욕의 미국자연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뒤쪽 계단으로 올라가서 위에

난간에서 전체를 돌아보고

다시 내려와서 옆쪽에서 바라본 모습

 

 



 

 

 

 

 

 

 

1호 신전과 2호 신전 옆으로 무너진

것들이 보이는데 올라가서 

살펴볼 수 있게 사람들이 올라가서 

이것저것을 직접 살펴볼 수가 있었다

 

.

3호 신전

3호 신전은 '재규어 신관의 신전'이라고 불린다.티칼에 지어진

거대한 피라미드들 중 가장  마지막에 지어진 것으로,

높이는 약 55m이고 정교하 장식된 목재 상인방이

있었으나 현재는 파손되어 알아볼 수 없다.

고고학자들의 추정으로는 티칼의 왕이었던

'검은 태양'이 810년 경에 자신의 제례 행사를

기념하며 의식용 춤을 추고 있던 모습을 그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신전 내부에는 2개의 방이 있다.

4호 신전

4호 신전은 티칼 전체에서 가장 높은 신전이다.

바닥 부분에서 지붕 장식물 꼭대기까지의 높이가

무려 70m에 달하며, 이킨 찬 카이이 왕의

통치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신전 내부로 들어가는 입구 위에 붙어있는 2개의 목재

상인방에는 날짜를 새겨넣은 기록들이 남아있다.

 

4호 신전은 8세기 경 마야 문명 전역에서 가장 높은

신전이었으며 현재까지도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세운 건축물들

중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다만 멕시코의

테오티우아칸에 있는 태양의 신전과, 엘 미라도르에 있던

신전들이 파손되기 전에는 이 4호 신전보다 더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

5호 신전

5호 신전은 중앙 아크로폴리스 남쪽에 있으며, 현재까지

존재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신원 미상의 군주를

기리기 위해 세운 사원이다. 높이는 약 57m이며,

티칼에서 4호 신전 다음으로 높은 건물이다.

대략 700년 경 고전기 후기에 지어졌으며, 탄소연대법과

신전에서 발견된 도자기 조각들의 연대를 통해 역추적해본

결과 7세기 후반 '누운 우졸 차악' 왕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6호 신전

6호 신전은 '비문의 신전'이라고도 불린다. 766년에 세워졌으며

12m에 달하는 높은 지붕 장식물로 유명하다.

지붕 장식물에는 마야  상형문자들이 앞뒤로 빽빽하게 새겨져 있으며

서쪽으로 광장을 마주 보고 있다. 신전의 정면부는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

 

-출처: 위키백과-

 

 

 

 

 

 

 

 

 

 

 

 

 

 

 

 

 

 

 

 

 

뒤쪽의 계단을 이용해서 무서움도 

참고 꼭대기에 올라가서 난간에서

아래쪽으로 사진을 담은 모습 들이다.

 

난간에 기대어 살펴보는 관광객도 사진에 담아보고

 

 

 

1호 신전과 2호 신전 사이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넓은 잔디 광장이 있어서 

이곳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사진을 담고 하는 풍경들을 볼 수 있었다.

 

 

 

 

 

 

 

 

 

 

 

 

 

 

 

 

 

                                                        

      1호 신전 뒤쪽으로 가파른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계단이 나오는데 계단을 올라가서

 

 

 

이렇게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면 넓은 광장이

나오는데 이곳은  왕궁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우리가 자유여행이라서

가이드가 없어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없어서 그냥 사진만 담아왔다.

 

 

 

 

 

 

 

 

 

 

 

 

 

 

 

 

 

 

 

 

 

 

 

 

 

 

위 언덕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담은 모습들

 

 

 

 

 

 

 

 

 

 

 

 

 

 

 

 

 

 

 

 

 

안을 살펴보고 밖으로 나와서 보니 

이런 계단이 보이는데 아마

이곳을 이용하여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반대쪽으로 들어간 걸까?

 

 

 

 

 

 

 

신전을 살펴보고 나오려고 보니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어서

가까이 가보니 엄청나게 큰

밴자민 나무 위에 이렇게 원숭이

몇 마리가 벤자민 열매를

따먹고 있으면서 꼬리를

나무에 칭칭 감고 묘기도 부리고.

 

신전이 울창한 밀림 속에 있어

신전으로 들어가는 길만 좁게

나있고 다 울창한

숲이라서 여러 가지 동물들이

돌아다니고 원숭이가 묘기를 부리고

많은 새들도 만난 그런 정글 속이었다.

 

 

 

 

 

 

 

벤자민 열매를 따고 있는 원숭이들

 

 

 

 

 

 

 

 

 

 

 

 

올라갈 때는 입구에서 신전까지 꽤 먼

거리인데 마침 공사차량이 

올라가면서 우리를 트럭 짐 싣는 곳에

5명을 신전 바로 아래까지 태워다

주어서 힘들지 않게 올라갔는데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오면서 만난 유물들.

 

 



 

 

 

 

 

 

 

 

 

 

 

 

 

 

 

 

 

 

 

 

 

 

 

 

 

 

 

 

 

 

 

 

 

 

 

 

셋째 딸은 저 많은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오고 있다

 

 

 

입구의 마야인들이 신성시 한 

세비아(Ceiba) 나무는 재는

 과테말야의 국가 나무로 지정되었단다

 

 

나무가 너무나 키가 커서 나무 전체를

담을 수가 없어서 아쉽다.

야자나무처럼 매끈한 나무가

하늘로 솟아있는 모습이 정말 컸다.

 

몸통엔 가지가 없고 위쪽으로

있는 가지에는 나무에 기생하는

식물들이 엄청 붙어서 살고 있는 모습이다.

 

 

 

 

 

띠깔( (Tikel) 마야문명 유적지

 

띠깔은 BC800년경에 처음 정착하여 도시를 이루었다.

현재 남아있는 마야의 유적지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10세기에 갑자기 몰락을 하였다.

그러다가 1696년 스페인 선교사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밀림의 숲 속에 20~30m가 넘는 신전들이 우뚝우뚝 솟아있었다.

 

현재 6개의 신전과 공놀이장, 광장, 제단, 주거지, 저수저등

3000개에 이르는 건물과 200여 점의 비석이 남아있다.

10만 점에 이르는 유물과 100만 점에 

달하는 토기가 발굴되었다고 한다.

띠깔의 피라밋은 다른 마야의 피라밋 보다 높고,가파르다.

그리고 피라미드 정상에 있는 신전 내부는 공간이 좁은 것이 특징이다.

 

신전 위에는 건물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구멍을

낸 루프콤(roofcomb)가 얹혀 있다.

이것은 마야문명의 특징이다.

피라밋 정상에 있는 신전에는 귀족이나 사제만이

출입했고, 평민들은 피리밋 아래에서 의식에 참여했다.

온두라스의 꼬판, 맥시코의 빨랑게,과테말라의 띠깔이 3대 마야유적지라고 한다.

 

띠깔은 1950년대 처음 발굴조사가 이뤄지기 시작했고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유적들은 굉장히 넓은 밀림에 흩어져 있어 중심부의

약 16㎢에 이르는 지역만 돌아보려 해도 최소 2~3시간은

걸린다고 하는데 우리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곳들이

있어서 한 곳에서만 보고 걷는 것이 힘들어서 다 돌아보지 못하였다.

정부에서 계속 발굴조사를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과테말라 북쪽 페텐(Peten) 주에 위치한 최대 마야 유적지 띠깔은

동생이 살고 있는 수도인 과테말라 시티에서 약 540km 떨어져 있는

도시로 도로 사정에 따라 차로 약 9시간 이상,비행기로

50분가량 이동을 하여야 하는데 너무 멀어서 비행기를 타고

가야 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다른 곳을 여행하기 위해 제부가

직접 운전을 하고 갔는데 우리가 3달 동안 그곳 동생집에

있는 동안 여행을 하느라 제부가 운전을 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하였다.

그래도 제부의 수고로 과테말라에서 유명하다는 곳만 골라서

여행을 하고 또 주변국들을 돌아보면서 처형들 땜에 고생한 제부에게 너무 감사하다. 

 

 

 

 



 

 

 

 

 

 

2023년 2월 8일 중미 과테말라 (Tikal) 마야문명 유적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