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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살찌우는 글들/영화와 문학 문화이야기

울지마 톤즈를보고(고 이태석 신부님의 삶)그 이후

by 밝은 미소 2018. 12. 21.

 

     고 이태석 신부님의 아름다운 그 향기는  그윽한 향기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오래도록 기억되라라.

 


[출처: 중앙일보] '남수단의 슈바이처' 故 이태석 신부 뜻 따라 의사된 ‘울지마 톤즈’ 소년

 

 

 오늘 인터넷 뉴스를 검색하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기사 하나를 읽었다. 고 이태석 신부님의 추천으로

남수단 톤즈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토마스 타반 아콧씨가 12 15일 부산 인제대학교 부산캠퍼스에서

열린 히포크라테스 선서식 및 동창회 입회식에 참석해 이종태 인제대 의과대학장과

대화를 나누는 사진 한 장이었다.

너무나 반가워서 이곳에 다시 이 글을 쓰면서 정확하게 2011 1 146 2분에 내 블로그에

글을 올렸던 생각이 난다.

 

그때 난 고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영화화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곳 내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였었다.

그리고 작년 그가 인제대학교를 졸업하였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오늘 다시 영화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 과 관련된 기사를 보게 되었다

고 이태석 신부님이 추천한 톤즈 마을의 어린이 두명이

한국에 와서 의사 자격증을 딴 자랑스런 남수단의 가난한 작은 마을출신의 의사를 이곳에 소개하고자 한다.

 

 

토마스씨는 우리가 공부해서 신부님의 뒤를 잇기를 간절히 바라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신부님의 노력 덕분에 2009 12월 토마스와 2명의 친구가 한국 유학 길에 올랐었다.

의사가 되기까지 말도 서툰 한국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면서 얼마나 힘든 의학공부를 했겠는가?

아마도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 때를 생각하면서 이신부님을 기억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의사가 되었다면 훨씬 편한 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고 이태석 신부님을 기억하면서

그런 삶을 포기하고 신부님이 되어 머나먼 톤즈에서 사람들을 돕는 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길이

아니란 걸 느꼈다고 하나님이 다 돌보지 못하는 곳을 대신 돌봐달라고 보내주신 천사였구나

생각한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번 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부산백병원에서 인턴으로 수련하고 외과 전문의가 되어

남수단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아직도 수단은 간단한 치료조차 받지 못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많다

면서 이태석 신부님의 뒤를 이어 병들고 아픈 이들을 위해 그들을 돌보고, 희망을 주는 의사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토마스씨는 고 이태석 신부님이 남수단으로 가서 작은 마을에서 사역하셨던 '톤즈'출신이다.

남수단의 작은 마을톤즈 멀지만 익숙한 톤즈는 고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그린 다쿠멘터리

올지마 톤즈의 배경이 된 곳이다.

토마스씨는 2009년 한국에서 공부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이신부님의 권유로 한국에 왔다고 한다

그리고 9년이 흐른 올해 1 15일 인제대 의대를 졸업하고 지난 1221일 꿈에 그리던 의사가 되었다.

아프리카 출신으로 한국 의대를 졸업해 의사가 된 이는 토마스씨가 처음이란다.

 

 

당시 내전 중이던 남수단 톤즈에서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톤즈의 사람들과 함께 했던 이신부님은

휴가 차 한국에 왔다가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자신이 가지 못하는 대신 톤즈의 아이들을 한국에

데려와 공부를 시키고 싶다는 이신부님의 요청에 수단어린이장학회는 후원을 결정하고

토마스와 존 마옌 루벤(31)씨를 한국에 초청했었다.

이들이 한국에 온지 한 달도 채 안됐던 2010114일 이신부님은 끝내 이들을 남겨둔 채 떠났지만

이들은 이신부님의 부름에 담긴 뜻을 잊지 않고 드디어 의사의 길을 걷게 되었다.

토마스씨의 목표는 외과 의사가 되어 수단으로 돌아가서 이신부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함께 톤즈에서 온 존씨 역시 다음달 인제대 의과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실기 시험은 이미 합격했고

필기시험까지 합격하고 나면 아프리카 출신 2호 의사가 된다.

존씨가 각각 외과와 내과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나면 톤즈는 두 명의 전문의를 얻게 된다.
톤즈에는 여전히 이신부가 문을 연 톤즈 돈보스코 병원이 "이태석 신부 기념병원"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 중이라고 한다.

성경 말씀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힘든 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많은 사람들을 품고 사랑하면서 살다 이 땅을 떠나신 이태석 신부님

그는 떠났지만 우리는 그가 이 땅에 심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편지로 향기로 살다간 삶의 열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실을 맺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나를 비롯해 많은 오늘을 살아가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빛과 소금의 역할의 삶을 살아가는 삶이 어떤 삶인지

이 땅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편지로 향기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행동으로 보여주신 삶을 우리 눈으로 확인하면서 내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게 한다.

 

 

 

                                                      **********************

 

 

아래 이 글은 제가 2011년 1월 14일 내 블로그에 포스팅한 글인데 Daum블로그 첫 화면의 '전체'에  올랐던 글입니다.

 

 

 

 

 

 

 

                          여기 자신의 삶을 뜨거운 열정과 사랑으로 불꽃처럼 태우고 간 사람 그리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향기로 남은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태석 신부님.

              그는 9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10남매의 아홉째로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바느질을 하는 홀어머니 손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그런 그에게 

                      어린시절 집근처의 성당은 바로 그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자란 이태석은 인제 의대를 졸업하고 사제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이미 형님과 누님이 신부님과 수녀님으로 계시기에 홀어머니의 반대를 무릎 쓰고

                      그는 신부의 길을 가려 신학을 하게 되고 신학생 때 방문한 수단을 마음에 두고

                      로마교황청에서 사제를 받고 그는 자청하여 수단으로 들어간다.

              

              수단은 정치적인 불안으로 계속되는 내전 때문에 아이들은 소년 병으로 끌려가고 

                      어른들은 기아와 그로 인한 갖가지 질병으로 고통 받는 남 수단 톤즈란곳으로 들어가

                      가장 소외 받는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손수 톤즈강에서 모래를

                      퍼날라 케냐에서 시멘트를 사다 섭씨 50도를 웃도는 적도의 태양아래

                      주민들과 함께 땀을 흘려 벽돌을 찍어 병원을 짓고 그곳에서 하루에 300명이 넘는

                      환자를 돌보고 가난에 찌든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지으면서

             

              예수님이라면 학교를 먼저 세우실까 성당을 먼저 세우실까를 자신에게 묻고

                      예수님도 학교를 먼저 세우셨을거라 하면서 학교를 세워 케냐에서

                      교사를 데려 오고 자신이 직접 수학과 음악을 가르치며 그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내전으로 상처받고 부서진 아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심어 줄 수 있을 거 같다면서 직접 악보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리켜서

                      수단최초로 브라스밴드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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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병원으로 직접 찾아오지 못하는 한센인들을 위해 직접 그들이

                      사는 곳을 찾아 자신들이 무슨 병을 앓고 있는 줄도 모르는 그들을 치료하고

                      옷을 구해 입혀주고 발이 뭉텅해져 걸을 수 없는 그들에게 뭉그러진

                      발을 직접 그려 케냐에 주문한 가죽으로 직접 샌달을 만들어 신겨준 이태석신부.

                      그는 말한다 철저하게 버림받은 한센인들 그러나 불평하지 않고

                      불편함 속에서도 기쁘게 살면서 작은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노라고

                      그 한센병환자들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마치 마른나무처럼 보이는

                      그들을 바라보는 선한 시선과 해맑은 웃음은

                      영화가 시작되어 끝나는 순간까지 나의 마음에 긴~ 울림으로 남았다.

 

       M362435484_sc5.jpg
  

          그는 말한다 워낙 가난하니까 여러가지일들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 받는 그들과 함께 있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그가 쓴책 친구가 되어줘 에서 그는 그런 그들을

                  버리지 않겠다고 고백한다.

                  톤즈사람들은 그를 쫄리 신부라 불렀다

                  그것은 존리라는 세례명을 그렇게 발음한 것이다

                  그런 그가 후원모금을 하기위해 한국에 나왔다가 건강검진을 해보라는

                  친구의 권유로 생애처음 건강검진을 받은 결과 대장암 말기로 이미

                  간과 온몸으로 전이된 상태를 발견하게 되고 그러나 그는 항암을 12번을 받으면서

                  병이 나아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수단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였지만 지난해 114일 선종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물었다 왜 신부가 되고 한국이 아닌 그 먼 아프리카

                  수단에 갔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예수님께선 가장 보 잘 것 없는 한 사람에게 해주는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는 것이라고 하셨다고.

                  그리고 어린 시절 본 벨기에 출신인 다미안신부 (1840~1889)에 하와이 근처

                  몰로카섬에서 한센인들을 돌보고 자신도 한센병에 걸려 49세로 숨을 거둔

                  신부님의 영향을 받았노라고

                  취재진들이 이신부의 투병장면과 장례식장면을 가져다가 수단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그들에게 물었다 이태석 신부님은 자신들에게 어떤 분이 었냐고

                  그들의 한결 같은 대답은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였다고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바로 예수님같은 분이었다고

                  신부님이 떠난 자신들의 삶은 바로 눈물이라고 매일 매일 신부님만 생각하면 눈물이난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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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분의 삶을 보면서 그분이 이 땅에 남긴 삶 몸으로 실천한 사랑도

               고귀하지만 더욱 내 마음 깊숙이 자리한 것은

                       검은 수단인 그들의 눈물이었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이마에 불로 지진 흉터를

               남기면서까지 절대 울면 안 되는 훈련을...

                  그래서 아무리 아파도 죽어가도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는 그들

                  그런 그들이 이태석 신부를 기억하면서 그 검은 눈에서 진주 같은 눈물을 흘렸다.

                  메마른 그들 가슴에 눈물을 가르쳐준 사람

                  예수님처럼 이 땅에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불꽃처럼 살다

                  사랑의 긴~ 울림을 남기고 떠나간 사람.

 

                처음엔 마음을 스치며 지나가는 타인처럼
                      흩어지는 바람인줄 알았는데 앉으나 서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그대 향한 그리움

                  그대의 그림자에 쌓여 이 한세월
                  그대와 함께 하나니 그대의 가슴에 나는
                  꽃처럼 영롱한 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리라
                  그리고 이 생명 다하도록 이 생명 다하도록
                  뜨거운 마음 속 불꽃을 피우리라
                  태워도 태워도 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피우리라.

 

                  그는 생전에 애창하던 열애의 가사처럼 수단인들의 가슴에 꽃처럼

                  영롱한별처럼 찬란한 진주가 되어 그 생명이 다하도록 태워도 태워도

                  재가되지 않을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의꽃을 피우고 톤즈를 향한

                  그리움을 안고 그렇게 떠나간 사람 이태석 신부님.

                  그가 영향을 받았다는 다미안 신부님의 삶처럼 그의 그 고귀한

                  그리스도의 스티그마 (흔적)을 보고 오늘도 누군가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어떻게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

                  그리스도인의 삶인가를

 

                       우리 시대에 이렇게 예수님처럼 살았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축복이다.

                       그런분의 죽음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좁은 나의 생각으로는 다 

                       이해할 없고 하나님이 ? 물음이 붙지만

                       그가 떠난 후 미국과 여러곳에서 영화를 통해 그의 삶에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을 통해 후원금이 모아지고 있는 모습을보면서

                       그것은 아마 땅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이 허락하신 삶의 현장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이 주님의 향기로

                       편지로 살아가는 삶이 어떤 삶인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을 돌아보는 삶을 살아갈 있게 하시기 위해

                       주님은 그렇게 사랑하는 그를 데려가신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을 아버지로 여기면서 따르던 가난한 수단의즈사람들을

                       죽는 순간까지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면서 떠난 이태석 신부님.

 

                       그는 그렇게 떠나갔지만 그분의 삶이 남긴 교훈과 삶의 흔적이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와 우리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이 영화가 시작되면서 끝날때까지 흐느끼면서 보고도 아직도 가슴이 먹먹해온다

                       그분과 같이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나의 삶의 주인이라고

                       고백하고 살아가는 나는 주님이 허락하신 땅에서의 삶의

                       순례의 여정을 마치고 떠나는 내가 남기고 떠난 

                       삶의 자리에 나의 스티그마(흔적) 어떤 흔적이어야 할까를 깊이 묵상해본다.

 

  • Daum블로그

    2011.01.18 09:16

  • 안녕하세요, Daum블로그입니다.
    Daum블로그 첫 화면의 '전체'에 밝은 미소님의 글이 소개되었습니다.
    앞으로도 활발한 활동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 밝은 미소
  • 2011.02.01 11:10
  • 갑작스런 남편의 입원으로 인해
    모르고 지나갔네요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블로그에 올리고 남편의 갑작스런 급성 폐렴으로 인해 폐에 물이 차서

서울대병원에 20일 정도 입원하여 있었기 때문에 나도 이 글이

다음 첫 페이지에 올랐는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2 1일 퇴원을 하고 이 글 댓글을 보고 알았었다.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