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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살찌우는 글들/담아온 글

감자의 추억

by 밝은 미소 2008. 8. 13.

 

 



        엄마
택배요.
상자안은 고향이 가득하다
감자다
우둘뚜둘 삐툴빼뚤
엄마 손등처럼 거칠다
엄마 얼굴처럼  구릿빛이다
 
감자들이 웃고 있다
털석 주저앉아 엄마가 웃고 잇다
관절염과 친구 된 지 오래고 오래
겨우내 동행에서 논밭을 헤맨다
 
감자가 내 품에 오기까지
엄마는 밭고랑을 수없이 오갔을 거다
가쁜 숨을 수없이 몰아쉬었을 거다
 
감자를 쪘다
껍질을 벗긴다
속살을 내보이며 수줍어한다
호호 불어 주던 엄마의 입김이 예전 같지 않다
 
어느 새 엄마는
켜켜이 주름에 자식들만 새기고
당신의 육신은 멀어지고 있었다.
 
 
 
좋은생각 / 방점례

 

 

 

 

 

  가녀린 회상을 반추하며

  

                                                           -글 뜨는달-

                                                  

 누군가 말하기를 미래는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더 아름다운 것은 회상들이 아니랴!

유년기 신작로 길!

눈보라 치는  엄동의 추억들마져

회상으로  반추하면 참 아름답기도 하다.

 

머언  회상들이 우리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채운다.

물질문명으로 숨이 막히는 현실의

고뇌와 질곡과 번민 속에서 그건 커다란 위안이다.

 

어머니는 한사발의 쌀로

다섯이나 여섯 식구들의 밥을 지어야 했다.

저승사자보다 무서운

유월의 허기진 배는 감자로 채워지고 있다.

밥에는 감자가 몇 개씩이나 박혀선

실상 밥은 얼마 되지 않았다

당신의 밥에는 감자를 더 넣으시던 어머니

 

한 알의 감자라도 더 건지려

수확하고 난 빈 밭을  뒤져서

작은 감자를 추려내고 간장에 담가 조리던

아스라한 추억의 낱장들이

장마철의 빈방을 메우고 있다.

 

가마솥에 엉기성기 발을 치고

솔잎을 깔고 감자를 삶는다.

매캐한 연기가 부엌천장을 돌아

숨을 막히게 하지만 쉭쉭거리며 다 삶아 질 때는

구수한 냄새가 마당을 채우고 담을 넘는다.

솥뚜껑이 열리고 터질 듯 김이 솟아오르면

감자가 솥에 닿은 부분이

까맣게 타서 잘 떨어지지 않는다.

감자들은 광주리에 담겨져선

꼬불거리는 논둑길 밭둑길을 따라

들판으로 옮겨져 새참으로 허기를 때우게 하였다.

 

단오절을 넘나드는

유월의 산자락에 어둠이 내리고 

서쪽으로 난 비스듬한 산이 해를 건져 올려 

긴 그림자를 깔고  소쩍새가 밤들을 찍어낸다.

 

초승달이  비스듬히 서서 감자 밭을 밟고 있다.

저 감자 밭 끝자락에서 하얀 꽃 사이로

알짝거리는 감자 꽃 향이

사래긴 고랑을 지나 가슴에 박힌다.

 

부싯거리는 모깃불 속으로 감자들이 구어지고  

옛이야기가 어두운 밤을 채운다.

낼은 소식이 오려나?

 

서울로 간 누이 소식으로

밤은 모깃불처럼 타들어가며 

회상들이 쏟아져 나와 난장을 친다.

 

동쪽 끝으로 난 벌판을 따라

산등성이가 휘어진

마루를  해가 걸터앉으면

감자 밭에

밤새 지친 이야기가 하얗게 이슬이 되어

학교 가는 길에 운동화를 적신다.

운동화를  만지는가 싶더니

한 손에는 하얀 감자가 쥐여져 있다.

 

상자에 담겨진 감자를 보면 

회상의 낱장들이 나와서 서로 앞장서려 한다.

감자를 까라고 하였더니

감자 깎는 칼을 사러간다고 투정이다.

패스트  푸드로 무장한 아이들이 그걸 알 리가 없지만

물동이에 감자와 물을 넣고

손발로 치대어 껍질들을 벗기고

다음에 하도 많이 사용하여

가운데가 움푹 파인 몽당 놋숟갈로 덜 까진

감자의 오목한 부분들을 벗기던 

까만 회상들이 하얀 감자 속살을 드러내게 한다.

 

요즘은 감자도 칼러화 하여

하얀 감자 자주 빛 감자 빨간 감자들도 있다.

그러나 감자 밭에 바코드처럼 깔리던

은하수가 도란거리는 밤들의 구운 감자들의

회상들의 반추는 오늘의 삶을 따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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