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의 초대장
가을이 나에게
초대장을 보내왔습니다
꼭 오시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만
그대와 함께 가고 싶습니다
만약,
그대가 못 갈 사정이 생기시더라도
죄송하지만
그대의 시간을 훔칠 계획입니다
나뭇잎마다 시화전을 한다는군요
예쁜 잎새에 시를 한편 쓰고
색깔을 넣어서
대지 앞으로 제출한다고 합니다.
심사는
그대가 해도 좋겠습니다
밤하늘 오선지에 그려진 악보를 보고
귀뚜라미는 연주회를 한다는군요
이것도 그대가
심사해도 좋겠습니다
해질 무렵에는
구름이 수채화를 그린답니다
역시 심사는 그대의 몫입니다
꽃들은 패션쇼를 한다는데
그대가 특별 출연하다면
갈채를 받을 겁니다
햇빛은
과일 조각전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도 볼만하겠습니다
그대와 팔짱을 끼고
축제에 간다고 생각하니
가을 하늘만큼이나
마음이 설레고 기쁘답니다.
제발, 일이 바쁘다고
구차한 변명은 하지 마세요
내가 싫거나, 가을이 싫거나
둘 중 하나겠지요
가을 축제에 꼭 같이 가겠다고
손도장찍어요.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길가에 차례없이
어우러진 풀잎들 위에
새벽녘에 몰래 내린 이슬따라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선풍기를 돌려도 겨우
잠들 수 있었던 짧은 여름밤의
못다한 이야기가 저리도 많은데
아침이면 창문을 닫아야 하는 선선한
바람따라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눈을 감아도 눈을 떠도
숨이 막히던 더위와
세상의 끝날 이라도 될 것 같던
그리도 쉼 없이 퍼붓던 소나기에
다시는
가을 같은 것은 없을 줄 알았는데
밤인줄도 모르고 처량하게 울어대는
가로수의 매미소리 따라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상큼하게 높아진 하늘 따라
가을이 묻어 왔습니다.
이왕 묻어온 가을이라면
촛불 밝히고 밤새 읽을 한권의 책과
눈빛으로 마주하는 마음 읽어낼
열무김치에
된장찌게 넣어 비벼 먹어도 행복한
그리운 사람이 함께 할 가을이며
좋겠습니다.
-좋은글 중에서-
출처 : ♣ 이동활의 음악정원 ♣
글쓴이 : 에반제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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