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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여행(북유럽)

러시아 (상트페테르 부르크의 이삭성당, 카잔성당, 피의성당)

by 밝은 미소 2009. 5. 13.

 

 이삭 성당

 

 이이삭성당

 

상트 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러시아 정교회의 성당으로 지어질 당시에는

 러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로 지어졌다고한다.

.높이 101.52m, 성당의 둥근 천장이 21.83m 성당은 64~114톤에 이르는

 72개의 거대한 원형의 돌들로 둘러싸고 있다.

 원래 명칭은 이사악키이예프스키 사보르이다 그것은 이사악키이 달마스키라는

러시아 정교회의 성인의 이름에서 따온것이라 한다

이사악키이 달마스키의 축일이 530일 이었는데 바로 날이 표트로 대제의 생일이기 때문이란다

 

역사

표트르 대제 시대에 바실리 예스키 섬에 최초의 성 이삭  성당이 건립되었다.

그뒤 1717년에 원로원 광장(현재 데카브리스트 광장) 으로 이전했지만

 연약한 지반 탓에 낙뇌로 소실되었다.

예카테리나 대제의 칙명에 따라 이탈리아 출신 건축가 안토니오 리날디의 감독아래

재건 사업에 들어갔지만 미완성으로 끝나고 파펠1세가 그녀의 유지를 이어받아 다시 재건에 참여하였다.

오늘날의 이성당은  알렉산드르 1세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프랑스 출신 궁정 건축가

오귀스트 드 몽페랑의  설계에 따른것이다.

몽페랑의 감독아래 1818년부터 1858년 까지 무려 40년에 걸쳐 지어졌다.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소련 정권아래에서 박물관으로 이용되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다른 건물들처럼 소실될 위기에 쳐한다.

 당시 레닌그라드 포위전에는 이삭 성당의 황금 돔은

지나치게 눈에 띄어서 독일군에게 표적으로 이용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소련측은 성당의 돔을 회색으로 덧칠을 하였다.

소련 정권이 붕괴한 후에는 종교건물로서의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고 한다.

 

 이삭성당앞 광장의 니콜라이 황제1의 동상 

 

 이삭성당 뒷면에서 찍은 사진

 

 

 

 성당 뒷쪽의 화강석 위에 있는 피터 대제의 청동 기마상

 

 

 

 

 

 

 

카잔 성당

 

넵스키 대로를 걷다 보면 길 한쪽에 아치형의 성당이 하나 있다.

 이는 스트로하노프 백작의 농노 출신 건축가 바로니킨에 의해

1801년부터10년에 걸쳐 지어진 성카잔 성당이다.

처음이 성당을 세울무렵 바로니키는 고민에 빠졌다고한다.

 

 기독교 정교회의 제단은 서쪽을 향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넵스키 대로를 바로보는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냅스키 대로에서 바라보면 성당의 측면이 보이게 됨)

이에 생각을 해낸 것이 바로 석고대리석으로 1m씩 이어서 만들어진 94개의

코린트 양식 기둥으로 성당의 주위를 둘러싸는 방법이었다.

 

카잔 성당이 완성된 후 러시아는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지금도 성당 안에는 승리의 트로피와 상대군으로부터 탈취한 군기 등이 걸려 있고

이곳에서 러시아 군대의 위대한 장군인

쿠투조프 의 장례식이 거행되기도 하는 등 카잔 성당은 러시아 군의 영광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원 (피의 사원 ) 

 

 

 

 

 

 

 

 

 

그리스도의 부활 사원 (피의 사원 )

 

지붕 꼭대기가  양파모양 고대 러시아 건축양식으로지어진 사원.

종루, 창, 외벽과 문짝 내부 벽등과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까지의 모든 그림이

모자이크 장식이 되어진 사원이라고 한다.

 

피의 사원이라고 불리는 것은 1097년 알렉산드르2세가 이곳에서 피를 흘리면서 죽은곳이기 때문이라고한다.

 알렉산드르 2세는 개혁정치와 함께 영토 확장에 힘을쏟았는데

현재는 미국의 영토가 되어있는 알래스카를 1867년 당시720마나 달러에 미국에 팔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