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축복 특별새벽기도회
2023년 1/2 /월
하나님의 신비한 섬리를 신뢰하라.
2.위기의 순간에 만난 구원의 손길.
창 37:21~36 /최성은목사
인간의 허물과 죄로 인한 불순종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 사이에는 댓가를 치룸.
훈련과 성장이라는 필수 불가결의 요소가 들어있다.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섬리 이 둘사이에 특별히 우리 믿는 자들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끌어 가시고 그 사이의 중간이 있는 것들이 댓가를 치루고
우리의 그릇을 넓혀 주시고 훈련을 겪게 하시고 그 가운데서 성장하게 하심.
창세기는 이렇게 선택받은 사람들의 부족함을 아시면서도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신비한
섬리가 담겨져 있는 책이다.
그래서 한없는 허물과 부족함이 있는 우리의 인생이라도 하나님의 신비한 섬리를 의지하면서
다시 한번 새해를 시작하게 하신다.
요셉의 이야기가 우리가 새출발을 하는데 큰 격려와 소망과 도전이 되는 이야가기 될것임.
요셉의 꿈은 무의식중에 잠을 자면서 꾼 꿈이었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가운데 꿈을 꾼
두가지가 결합되어짐 아버지의 편애로 인해 자아중심적이고 교만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그런 어린시절을 보내면서 청년기에 들어가고 형들의 잘못이나 허물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하는
그런 성품을 갖고성장. 그 뒤에는 아버지가 있었고 형들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하고 자기가 꾼
꿈을 형들에게 자랑이나 하는 자였음.
형제들은 세겜지역에서 양을 침(세갬은 과거에 하몰의 아들 세겜이 야곱의 딸을 겁탈하고
그 일로 야곱의 아들들이 가서 남자들을 살육을 하였던곳)
야곱은 요셉을 형들이 양을 치는 세겜으로 보냄
야곱은 해브론 집에서 80km 떨어진 세겜으로 양을 치러간 곳으로 요셉을 보냄. 그러나 세겜에서
20km 떨어진 도단지역으로 또 옮겨감 점점 집에서 멀어져가는 무엇인가 불길함.
형들을 찾아오는 요셉을 형들은 알아봄 채색옷을 입고 있었기때문.
20절. 형제들이 요셉을 보자 꿈꾸는자가 온다고 하면서 시기와 복수심에 요셉을 죽임이기로 결심.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것을 우리가 보자고 함.
아버지의 편애로 인한 형제들의 분노 형제들을 자극했던 것은 요셉의 꿈이었다.
(그러나 형제 살인은 정당화되지 못함)
21절.르우벤이 요셉을 죽이지 말라고말함.르우벤은 레아의소생 르우벤은 12형제의 장남이었다.
옷을 벗기고 구덩이에 넣어버림.(르우벤은 요셉을 살린 첫번째 인물)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 자신들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팔자고 함.
(레아의 4번째 아들) 라헬의 소생인 요셉을 좋아하지 않았을것임.
28절.요셉을 애굽의 노예로 은 20에 팔아버림.(요셉은 채색옷을 입고 아버지의 사랑받은
몸에서 애굽의 노예로 팔림.(유다는 요셉의 생명을 살린 두번째 인물로 기록되어짐.)
30절. 르우벤의 탄식(르우벤은 요셉을 사랑했기보다는 장남이라는 책임감으로 탄식했을 것임.
르우벤-부정적인 인물-긍정적인 인물로 나타남.창 35:22장에서 아버지의 첩 빌하와 동침.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천륜을 범한 폐륜아)
유다:긍정적 인물-부정적인 인물 (선과 악이 공존하는야곱의 아들들의 모습을 보게됨)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정말 대단하신 분이심
하나님은 어떻게 이런 인물들을 믿음의 가문으로 그리고 앞으로 새워질 이스라엘 히나님의
백성으로 세워질 12지파로 삼으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정말 대단하심.
12지파이야기는 다 우리의 이야기이다.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의 삶은 바로 다 우리의 삶이다.
32절.짐승을 죽여 그 피로 채색옷에 적시어 아버지에게 갖다주며 요셉의 옷인지 확인하라 함
잔인한 모습.
34절.피뭍은 요셉의 채색옷을 보고 오래도록 애통하는 야곱의 모습. 요셉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성경은 보여줌. 요셉의 형제들은 거짓을 덮기위해 또다른 거짓을 말한다.
야곱은 이런 사건들 그 아들들의 사건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았을 것임.이 가문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속이고 속이는 가문의 역사이다.(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였고 외삼촌
라반은 그런 야곱을 속였고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 야곱을 속이는 모습)야곱은 아들들의 속임
가운데 통곡하면서 아마도 야곱에게 속은 에서의 마음과 같았을 것임.
(우리 인생도 이럴때가 많음 서로가 자기 만족과 유익을 위해 속이고 속고 증오하고 미워하고
그러나 그렇게 살때 결과는 모두에게 참담하다는 것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속히 깨달아야 한다.
특히 하나님의 사람들은 때로 사탄의 이런 속임수에 속아서 살 수 있다는 것을 동동체 안에서
가족안에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계하고 깨달아야 한다.
야곱은 자기가 속인 형 에서를 만나러 가면서 얍복강가에서 가족을 먼저 보내고 하나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갖고 밤새도록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하며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기 지어준
별명이 이스라엘이었다. 이스라엘:사람이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기었다 .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기었다라는 별명을 아브라함이 아닌 이삭이 아닌 야곱에게 지어주심)
그러나 이스라엘의 또다른 의미는 하나님이 다스리신다는 역설적인 의미이며 상반된 뜻이면서
신비한 이름이 바로 이스라엘임.
하나님은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인 야곱을 그런 이스라엘로 만들어가심 그러나 그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음 왜냐하면 야곱의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12지파로 만들기 위하심이다.
야곱을 포함해서 그중 어느누구도 훈련이 다 끝나기까지는 죽지 않을것이다.
하나님은 인내하시면서 그들의 인생을 만들어 가실것임 그것이 그들의 조상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이고 동시에 야곱의 12아들을 이스라엘의 민족의 12지파로
만들기 위해 택하신 인물은 바로 요셉이었음.
지금은 르우벤이 유다가 요셉을 구원하는거 같지만 실은 요셉이 그 가문전체를 구원할것임
하나님은 야곱의 마지막 부족함을 들어내시고 12지파를 세우시기 위해서 가장 연약한
요셉을 택하심 이것이 하나님의 섬리이다.
요셉은 자신의 부족함때문에 형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고 아버지의 편애와 꿈때문에
형들에게 살인에 가까운 증오를 받는다 그러나 앞으로 펼쳐질 요셉의 이야기는 성경의
반전중에 이런 반전이 없음 하나님은 요셉의 위기의 순간마다 그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구원의 손길을 내미신다.
요셉의 운명은 이제 자아중심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그의 운명이 달려있다.
그 역사에 폐륜을 저지른 르우벤같은 인물도 사용되고 앞으로 폐륜을 저지를 유다도
사용이되고 요셉이 꿈꾼대로 요셉이 형들을 살리게 되는데 이것이 야곱 가문을 위한
하나님의 신비한 섬리이다. 올한해 우리가 계획한 것들이 있을텐데 하나님께 맡겨
드려야 하고 상의하고 재가를 받아야 한다.
그분께 허가를 받고 하나님도 내 인생에 책임이 있으시도록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나감에 있어서 닦치는 모든 어려움 가운데 때마다 시마다 베푸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대하고 경험하는것이 중요하다.
요셉이 빠진 구덩이는 그의 생명을 구원한 구덩이였다는 것을 기억하라.
오늘 여러분이 빠져 있는 구덩이는 무엇인가? 그곳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장소이다.그 구덩이가 없었다면 요셉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오늘 하루 시편 40편 말씀을 묵상해 보라.
시40:1~3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기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2023년 1/ 3/ 화
하나님의 신비한 섬리를 신뢰하라
3.최악의 가문에도 은혜를: 유다와 다말이야기
창세기 38:1~30/ 최성은 담임목사
요셉이 위기에 처해있을때 요셉을 구해준 인물 유다.요셉을 죽이지 않고 그냥 노예로 팔아넘김
형제들을 설득하여 요셉을 죽이지 않고 노예로 팔아버림 복수도 하고 요셉의 생명도구함.
(유다의 삶은 실리를 추구하는 인물이었음)
1절.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걸 말함 그 이후란 요셉의 사건 후 한 10년이 흐른 시간뒤 아버지를
떠나 먼 지역 헤브론으로 떠남 홀로 헤브론을 떠났다는건 무슨일이 있을때 아버지와 형제들과
상의하고 기도할 수 있는 공동체가 없다는것을 말함.
2절. 보고:아름다움에 취함. 유다는 이방 지역에 머물면서 가나안 여인을 취하여 결혼하고
자녀를 낳음
가나안 여인을 취하지 말라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명령을 어기고 이방여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로 맞아들임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여인들과 자녀를 낳으면 이방신이 들끓는
가나안에서 자녀들을 건강하게 양육한다는건 불가능 헤브론을 떠나 모든것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유다의 징조가 좋지않음.
이방여인에게 아들 셋을 낳고 장자 엘이 결혼하여 아기가 없이 죽고 유다의 자식들을 대하는
태도 하나님께 상의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결정 둘째아들도 아버지를 신뢰하지 않아
둘째 아들 오난을 형수 다말에게 주어 대를 잇게 하였으나 의도적으로 임신하지 못하게
하여 하나님께서 이것을 악하게 보심.
둘째아들 오난도 죽자 유다는 셋째아들 셀가가 죽을까봐 다말에게 주지 않고 다말에게
친정에가서 수절하고 셀가가 장성할때 까지 기다리라고 말함 그 당시 이런 수혼제의
결혼제도가 있었던 것은 사회적으로 약자인 과부를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께서 주신
시스템이었다. 고아,과부,나그네를 돌보라는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주신
윤리체계였음 결국 유다는 다말을 지켜주지 않음 얼마후 유다의 아내도 죽고 자유의지를
가지고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이 거하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헤브론을 떠나 이방지역으로
간 유다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경험함.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의 친구와 양털을 깎기위해 딤나로 감 그리고 길에 얼굴을 가린
매춘부와 동침을 하고 양한마리를 주려 하지만 여인은 유다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원함.
나중에 유다는 친구에게 염소를 주고 자신이 준 물건을 찾아오라 하지만 친구는 그곳에
거리의 여인이 없다는 말을 한다.
그런후 시간이 지나 자신의 며느리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유다는 당장 다말을
꺼내서 불태우라고 함.(유다의 성정을 알 수있음) 다말에게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고 불태워
죽이라고 하는 유다. 유다의 이중적인 그리고 자유의지론자의 끝판왕의 모습을 보임)
자유의지를 갖고 자기 만족을 위해 사용할때 그 죄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 주변사람에게 파괴적인가를 보여줌.
다말이 유다의 삶을 예측한것은 평소의 유다의 삶이 그렇다는것을 알 수있음.
(유다가 잠자리를 같이 한 여인은 바로 며느리 다말이었음 자신에게 보여준 증거인
도장과 끈 지팡이) 헤브론을 떠난 유다는 하나님을 떠난 자유로은 인생을 살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함이었다. 유다와 요셉의 삶을 대비하여 보여주는 성경말씀.
26절.유다는 증거물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유다는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인정함. 유다는 이사건을 계기로 변화를 맞이함 창44장에서
베냐민을 대신하여죽을 각오를 한 이집트에 남을 결단을 하는 용기 있는 장면을 보여주게 됨.
인생이 하나님앞에 불들리면 변화되어 진다는 것을 보여줌.
27절.다말이 유다에게서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음. 창세기에서 보여주는 장자의
쟁탈전은 누가 영적인 장자가 되는가의 문제는 전적인 하나님의 섬리가운데 있다는
것을 보여줌 하나님의 전적인 섬리와 주권임.
하나님의 섬리가운데 우리 죄도 과오도 당시의 중요한 문화인 장자권의 쟁탈전 업적도
들어가 있음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구원받은 인생도 설명될 수 없음 다말이 낳은
베레스는 다윗의 조상이 됨.
다윗은 유다가문의 후손이고 예수님은 유다 가문으로 이땅에 오심.
마태복음1:2절에 예수님의 족보에는 유다도,다말도 기생라합도 우리야의 아내도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감 예수님은 이런 죄인인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고 그 족보에 나도 올라감. 인생의 가장 놀라운 것은 나같은
자가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님의 형제로 하나님의 족보에 올라가 있다는자체이다.
그래서 하나님이심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는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창세기 38장의 부끄러운 모습을 숨기지 않고 폭로함 인생의 한계
절망을 폭로함 하나님은 인간에게 참회의 기회를 주시고 구원해주시는 분이심.
창세기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함을역설하는것 성경은 부끄러운
예수님의 족보를 숨기지 않음 그래서 성경책이다.
그래서 어려서 부터 성경을 통해 기독교 관점으로 세상사를 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길러준다. 슬픔,고난,아픔을 어떻게 이겨나가는가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겨나가는 방법을 가르쳐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내 인생은 설명될 수 없음 나의 인생은 하나님이 주어가
되어 하나님 앞에 나갈때 하나님은 나를 들어 사용하시고 하나님의 족보에 올려주심.
하나님은 나를 사용하시기 위해 나를 선택하심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하나님은 요셉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심 내가 처한
환경을 탓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초점을 맟주고 하나님 바라보면서 살아가게 하소서!
2023년/1/4 /수
하나님의 신비한 섬리를 신뢰하라.
4.고난 가운데도 형통하다는 의미.
창세기39:1~10절/최성은 담임목사.
많은 죄들이 있지만 우리가 별거 아니라고 죄긴 죄이지만 무시하고 다 있는건데 라고
생긱하는 죄가운데서 실제적으로 우리를 파괴하고 비참하게 만드는 죄 2가지가 있다.
(교만,질투) 기독교 역사 1500년 동안 죽음에 이르는 죄라는 7가지를 뽑았는데 그
첫째가 교만 둘째가 시기질투이다.
만약 나에게 이 두가지가 다른것 보다 강하다면 정말 하나님앞게 간절히 부르짖어야 함.
왜냐하면 이 두가지가 강하면 평생 행복하지 못하고 시기 질투는 계속 비교하고 교만은
열등감과 우월감을 동시에 겪게 되어있음 교만은 하나님을 배역하는 천사들이 갖었던것
질투는 최초인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같이 되고자 하는 마음 이것도 교만이었지만
특히 시기와 질투에서 나온 것이고 교만은 둘다 자멸하게 함.
그것이 요셉과 형제들이 이야기임 교만한 요셉은 집안의 왕자에서 노예로 팔려가고
시기와 질투로 요셉을 팔아버린 형제들은 평생을 양심의 고통을 받으면서 살아가게 됨.
하나님은 이 세부류의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쓰시고 그것을 보여 주는것이
하나님의 섬리의 주제를 가진 창세기이다.
요셉이 아버지의 편애를 받던 왕자인 모습이 아닌 애굽에 노예로 팔려감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이방땅에서 자유가 속박되는 노예의 삶을 산다.
애굽왕 바로의 고위급 관료집에서 요셉은 훈련을 받게 되었을 것임.노예로 팔려간
요셉의 삶
2절.그는 하나님이 함께하사 형통하다라고 말함. 요셉~형통함. 노예로 살아가는
삶이 막 시작되는 때에 형통이라는 말이 쓰이는데
고난가운데 서도 형통하다는 의미는 어떤 의미인가?
1.요셉의 형통은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다.
형통한자: 마츨라아흐(히브리어) 번창하게 하다. 성공적으로 이끌다.
요셉은 형들의 불같은 시기와 질투에 노예로 팔려 가서 노예의 삶을 살게됨 완전
극과 극인 삶을 살아가는 요셉.
장소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어디에서나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것.
(요셉의 형통함은 장소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어디에서나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것.) 반대로 유다는 성공과 형통을 위해 떠난 아브라함의 조카 롯처럼
자신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헤브론으로 떠난것이고 하나님을 떠남.
요셉은 헤브론에만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땅 애굽에서도 노예신분을 갖고 있는
요셉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주심. 요셉이 형통하다는 것은 환경이 아님
(환경은 바뀌지 않았음 노예로 전략한 요셉과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는 것임)
이것이 요샙이 형통한자가 되어간다는 의미임.
새해에는 어떤 해법을 갖고 살아갈것인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환경이 변하지 않고
나에게 거대한 파도가 넘실 댈지라도 지금 내가 천지를 주관하시고 계신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이다 노예로 전락한 요셉의 모습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을때가 있다.
2절.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형통하였더라. 주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요셉이 비참한 상황가운데서 함께하시다 하나님은 언제나 요셉을 떠난것이 아님
언제나 함께하고 계셨다.(세상에서 성공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자 않는 인생은
성공이 아니다. 생각의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
자유의지 안에 있었던 모든 인생의 정의를 하나님 안에서 바꾸어야 한다.) 이것이 신앙이다.
우리의 가치관과 이세상과 환경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이 영적으로 brainwash 되어야 한다.
신앙생활 하기 이전의 그 가치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 성품의 변화가 없고 삶이
변화가 없고 능력이 나타나지 않음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2. 요셉의 형통함은 나 중심에서 주변으로 확장되는 형통함이다.
형통하다.-마츨리아흐(히브리어) 나만 형통한것이 아니라 주변도 번창하게 하고 ,주변의
사람들을 성공적으로 이끈다.의미가 있음.
그리스도인의 형통은 자기중심적인 형통이 아니라 남들이 볼때도 숨길 수 없는 형통이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하고 있어 라는 자기 고백이 아닌 주변인들이 보고 인정할 수 있는 형통
3절.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고 말함 자신도 경험하고 주변인들도 인정할 수 있었다 바로 노예의
주인이 인정하다.보디발은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름.
그러나 하나님이 요샙과 함께하시는 것을 앎 형통(Success-성공/prosperity-번영)
성경의 형통은 세상적인 의미의 성공과 번영과는 다르다.
성경은 요셉이 가장 비극적이고 가장 참담한 상황의 요셉의 지금 삶을 성경은 요셉의
삶이 형통이라는 단어을 붙여줌.
이것이 어떻게 세상이 말하는 형통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모든 정의를 성경적인 정의로 바꾸어야한다.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 따라 올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닐지라도 나를 영혼가운데 구원하신 이세상 어떤 것으로도 나의 죄를 씻을
수 없는 구덩이 에서 건져내신 하나님 그 은혜를 배신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갈때 하나님께서 내가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줄때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요셉의 형통은 바로 그렇게 시작되었다.
4절.모든 소유를 다 맡기는 보디발의 집의 모든 소유를 요셉에게 맡김
보디발이 요셉을 볼때 요셉은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충성스럽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정하게 됨.
보디발 집의 복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보디발이 요셉을 알아본때 부터라고 말함. 요셉을
위해서 라고 말씀함 요셉으로 인해 보디발의 집에 복이 내렸다라고 함 나하나 때문에 집에 복이
내리고 직장에 복이 내림 요셉은 편향된 사랑으로 자기만 아는 자애적인 자기중심적인 사람에서
다른사람을 축복하는 사람으로 변화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나와 함께 한다는것임 풍만한 하나님의 영이
넘치며 요셉처럼 자기중심에서 타인에게 넘쳐가는 것.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그리스도인의 열매이다.
3.요셉의 형통함은 죄를 멀리하고 죄를 이기는 형통함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형통이 세상과 다른것은 테스트이다.
진정한 형통이 되려면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형통의 축복은 유혹을 만나게 되어있다.
많은 형통의 축복은 유혹을 만나게 되어있다.
6절. 많은것을 소유했을때는 책임이 따른다.
요셉은 형통을 담을 그릇으로 준비되어 있는가?
7절.주인이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큰 유혹이 그에게 닦침.
요셉을 보고 마음을 빼앗긴 보디발의 아내.
8절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함.(장자 르우벤과 유다의 성적인 유혹을 되풀이
하지 않는 요셉의 모습)
9절.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 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앞에 죄가 됨을 깨달은 요셉은 코람데오(하나님앞에서 살았다는
것을 볼 수 있음) 요셉은 아무도 없는 이방땅에서 오직 하나님만 붙들고 살았다는 것을 볼 수있음.
구덩이 사건 이후의 삶부터는 오직 하나님만 붙들고 살았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요셉의 모습
구덩이에서 건져주시고 생명을 구해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요셉은 비로서 만나게되었다.
요셉은 노예로 팔리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형통하심을 깨달으며 자신의 인생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듬 하나님은 우리가 천국에 이르기전에 인생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용서할 수 있는 기회, 사과할 수 있는 기회, 화목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자유도 주시고 미워할 수 있는 자유도 주신다.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는 것이 그리스도인이고 그것이 형통함이라는 것을 깨닫는것이 그리스도인들이다.
하나님은 요셉의 그릇을 만들어가고 계심 유혹이 점점 커지고 있는 모습 유혹은 맞서 싸우는것이
아닌 피하는것이다.
무엇이 진정한 인생의 축복이라고 믿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어떤 기준과 가치관이 우선순위에 들어있는가?
무엇이 인생의 형통인가? 하나님없이 쌓은 재물,career 이런것들이 하나님이 축복이라고
이야기 하실 수 있는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과도 같은 인생이다.그것을 자랑한다면 세상과 다른점이
무엇이 있는가?
왜 하나님께서 유다의 삶을 보여주시고 왜 노예로 전락한 요셉의 삶이 형통하다고 이야기
하시는지 성경66권 가운데 창세기 첫번째 장에서 우리에게 분명히 이 신년에 보여주시는
목적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구덩이에 있을지라도 이집트에 있을지라도 노예로 있을지라도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그리고 그 형통이 자신의 형통을 넘어서서 사람들에게 전염되며 사람들을 축복하며
어떤 죄와 유혹에도 이길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것을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그 힘을 주장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외쳐야
된다는것을 그리도 또다시 구덩이에 빠질지라도 나와 함께 하시는 그하나님의 형통함
때문에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것을 회개함에 능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는것을 고백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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