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鳥類/鳥類

엄마 여기요

by 밝은 미소 2009. 6. 3.

                                              

 

 

 

                                                   경북 울릉군 남면에서             

 

 

   

 

                                                      ㅡ동아일보에서 발취ㅡ

 

참으로 오랜만에 만나는 정겨운 장면이다.

나 어린 시절 자라고 꿈을 키워주던 내고향 충청도 공주 정안의

초가지붕 처마 밑의 정겨운 풍경이었다.

우리 어린시절에는 제비가 참 많았다.

음력 33일은 삼짇날이라고 하고 이 때부터 날씨도 온화하고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겨울잠에서 뱀이 깨어난다는 날로 본격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었다.

제비가 날아오면 제일 먼저 찾아드는 곳이 우리집 마루 처마끝이었다.

 

다른 곳에 집을 지으면 좋으련만 꼭 마루 처마 밑에 제비 집을 짓기 시작하면

논에 흙을 날라다 흙에 볏짚을 섞어서 사람이 짓는 것 보다 더 견고하게 집을 짓는 것이다.

그리곤 부드러운 볏짚 등으로 보금자리를 만들고 그 위에 자신의 털을 뽑아 푹신하게 만든 후

알을 낳아 품다 알에서 제비새끼가 까면 그때부턴 부지런히 먹이를 잡아다 주곤 한다.

어미제비가 먹이를 물고 오면 먼저 먹으려고 새끼제비들은 짹짹거리면서 그 노오란

주둥이를 벌리면 어미는 질서정연하게 차례로 새끼들에게 먹이를 먹이곤 한다.

그리곤 기다렸다가 새끼가 똥을 누면 입으로 물고는 날아가서 다시 먹이를 물고 오곤 하였다.

 

제비가 마루 끝 처마 밑에 집을 지으면 아버지는 두꺼운 각을 잘라서 집 아래다

받침대를 해주곤 하였지만 그래도 언제나 마루 바닥에는 제비 똥이 하얗게 떨어져서

하루에도 몇번씩 마루를 닦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그 제비 집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고 제비가 새끼를 다 키워서 날아가도록 놔두었었다.

그리곤 제비들이 빨래 줄에 앉아서 지지배배 지지배배 참으로 시끄럽게 울어대곤 했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저 제비도 많고 징그러운 뱀도 많았었는지...

산과 들에 가고 싶어도 잎이 푸르른 계절이 오면 뱀이 무서워서

산에 오르지 못하였었는데 지금은 시골에도 제비도 보기 힘들고 뱀도 없어졌다고 한다.

아마 농약 때문이 아닐까

 

우리 어릴 적엔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시면서 봄이면 꼭 논두렁과 논 가장자리에서 자라는

풀을 낫으로 베어서 논에 넣고 한참을 지나서 논을 갈아놓고 그곳에 벼를 심곤 하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풍경을 농촌에서도 볼 수 가 없어졌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봄이 오기 시작하고 뱀이 나오기 전이면 냇가에서 돌만 들어도

가재가 기어 나와 주전자를 들고 가재를 잡아넣고 바위에 까맣게 붙어있던 다슬기

(우리 고향에서는 고동이라 불렀다) 를 잡고 뒷동산에 붉게 진달래가 피면

친구들과 진달래 따먹고 아카시아향기 그윽한 때면 아카시아 꽃을따서 먹었고

가을이면 산에서 다래와 머루를 따서 먹고 이맘때 쯤이면 들판에 지천으로 익어있던

산딸기와 버찌 오디를 따먹고 검게 물든 입술을 서로 바라보면서 친구들과

까르르 웃고 지내던 그 시절이 이젠 돌아올 수 없는 아득한 옛일이 되어버렸다.

 

어제는 탄천에 나갔다가 탄천둑에 검게 익어서 뚝뚝 떨어지는 버찌를 한 사발

따서 가지고 와서 깨끗이 씻어서 옛추억을 생각하면서 먹어봤다.

우리가 어린 시절 맛나게 따먹었던 버찌가 익어서 새까맣게 떨어져 가도

지금 아이들은 그것을 손에 대지 않는다.

아니 아마 그 열매가 먹는 것 인지조차도 모를 것이다.

우리 아들들도 언젠가 한번 엄마가 어릴적 맛나게 먹고 자란거라 하면서

따서 주었더니 한번 입에 넣어보곤 기절하듯이 뱉어버린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탄천에 나가면 나처럼 어린 시절 익은 버찌를 먹어봤던 어른들이 한번씩 익은 버찌를 따서 먹어보곤 한다.

우리 어린 시절 친구들과 산과 들로 다니면서 따서 먹던 산딸기며 버찌와 오디

울타리에 빨갛게 익어있던 앵두를 지금은 농촌에도

아이들이 없어서 따먹는 이 없어 새의 밥이 되어가고 있단다.

 

여름날이면 화로에 모깃불 지펴놓고 마당에 멍석 깔고 누워서 하늘의 별을 헤 이고 

금방이라도 머리위로 쏟아질 것만 같던 그 시절 여름 밤에 개똥벌레가 불을 밝히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던 참으로 나 어린 시절 그 옛날이 그리워 진다.

 

어려웠던 농경사회를 거쳐 70~80년대 산업화를 거치고  2009년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모든것이 편리해지고 풍부해졌지만 농경사회에서
대가족이 서로 나누면서 살던 끈끈한 정과 가족의 따스함은 사라져가고
핵가족시대 엄청난 이혼률과 물질만능주의의 가치관의 혼란 속에 젊은이들의

 무질서한 삶을 보면서 산업화로 인해 편리함과 풍요로움은 얻었지만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 속에서 물질적인 풍요가 반드시

삶의 행복과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니며 진정한 인간의 행복은 소유가 아닌

이웃을 사랑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정보화 시대에 살고있는 현재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이기적으로  변하는

삶을 보면서 우리가 회복해야 되는 것은 무엇인가!

 

언젠가 오래전에 읽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관촌수필의 저자 이문구 선생님이
일락서산(日落西山)과 관산추정(關山芻丁)에서

산업화의 물결로 변하여 가는 농촌의 모습과

도시에서 밀려들어온 소비문화와
퇴폐의 모습으로 전락해버린 고향을 보고 아파했던 그 마음은 그 소설이 쓰여졌던

72년과 76년에서 

3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 알아보기 힘들게 변하여 버린
오늘날의 농촌모습을 보면서 내가 성장하면서 꿈을 키우던 아련한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아름다운 고향의 변하여진 그래서 그 옛날 그 아름답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는 고향을 바라보면서 아파하는 나의 마음과 같았을거란 생각을 한다.

 

 

그때 이문구 선생님께서 관촌수필을 쓰신것은  나 가 아닌 우리 의 관계가 되어져야 하며

산업화로 파괴 되어진 자연 되찾아 그 자연속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되어져야

함을 이야기 하시려고 작품을 쓰신것이 아닐런지...

 

아마 저자가 우리에게 남겨주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인간의 끈끈한 사랑 그리고

산업화의 물결속에 

변해가는 과정속에서도 우리가 지켜 가면서
살아야 하는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옛말에 논에 물들어 오는것과 아이들 입에 밥 들어가는것을 보는것이 가장 기쁘다는 말이있다.

아이들 입에 밥들어 가는것이 제일 기쁜일이 었던

그렇게 먹을것을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시절이 우리에게 있었다. 

어미 제비가 먹이를 잡아다 주는 사진 한 장이 어린 시절 그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해준다.

 

 


어제 탄천에서 따와 먹어본 버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