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월헌
6각형의 정자로 남한강변에 가파른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주변 경치가 뛰어나 남한강의 물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현재 위치는 신륵사에서 입적한 고려 말의
고승 혜근(惠勤, 1320~1376)의 다비 장소였는데,
그의 문도들이 정자를 세우고 혜근 생전의 당호인 강월헌이라고 이름 붙였다.
본래의 누각은 혜근의 다비를 기념하여 세운 3층석탑과
거의 붙어 있었으나 1972년 홍수로 옛 건물이 떠내려가자
1974년 3층석탑보다 조금 더 아래쪽에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다시 지었다고 한다.
신륵사 3층석탑
화강암을 깎아 만든 3층탑으로
고려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탑이다.
현재 이 곳 여주신륵사 강변 암반에 위치해 있다.
남한강풍경
이 정자는 신륵사를 감아 흐르는 여강의 암반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백사장과
강물 그리고 멀리 보이는 여주평야가 아름답다.
신륵사에 있는 고려시대 전탑. 보물 제226호 높이 940cm
한강변에 있는 암벽 위에 건립된 것으로
지대석 위에 화강석으로 된 7층의 기단이 있고 그 위에 높은 6층의 탑신부가 있다.
기단 위에 탑신부의 받침을 마련한 것은 신라시대의
전탑 양식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탑신부는 6층 부분만 높이와 너비가 급격히 줄어들었을 뿐 각 층의
체감률이 낮아 전체적으로 고준(高俊)해 보인다.
각 층의 옥개(屋蓋)는 옥신(屋身)에 비해서 극히 간략화되어 있다.
상륜부(相輪部)는 전(塼)으로 된 노반(露盤) 위에 화강석으로 된
복발(覆鉢)·앙화(仰花)·보륜(寶輪)·보개(寶蓋) 등이 얹혀 있다.
탑 북쪽에 있는 이 탑의 수리비에 "崇禎紀元之再丙午仲秋日立"
(숭정기원지재병오중추일립)이라고
씌어 있어서 1726년(영조 2)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전탑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년) 나옹 혜근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한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사찰이었다고 하며 1472년(조선 성종 3년)에는 보은사라고 불렸다.
그러나 신륵사로 부르게 된 것는 고려 고종 때 이 곳 건너 마을에서
거칠고 사나운 용마가 나타났는데 이곳의 큰 스님이
신력으로 사나운 말에게
굴레를 씌웠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한 고려 때는 벽절(寺)이라 불려지기도 했는데
이는 경내의 동대 위에 있는 다층전탑을 벽돌로 쌓은 데서 연유된 것이라고 한다.
600년된 보수호인 은행나무
신륵사 대장각기비(神勒寺大藏閣記碑)
대장각기비는 높이 133cm, 폭은 88cm로서 비신 둘레에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돌기둥을 세워놓고 있다.
현재 이 비는 신륵사의 동쪽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선사의 제자들과 함께 발원하여 대장경을 인쇄하고
이를 보관하기 위한 2층의 대장각을 지었다.
비신은 좌단이 깨어져 몹시 손상되어 글자를 알 수 없고
따라서 이 비를 세운 연대를 밝힌 부분에도 손상이 있어
이를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우왕 9년(1383)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문은 자경 2cm의 해서(楷書)로
예문관제학 이숭인(李崇仁)이 짓고 진현관제학 권주(權鑄)가 썼다.
뒷면에는 대장경 인쇄와 대장각 건립에 참여한 승려와 신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출처 여주타임즈.
신륵사 김병이 공덕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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