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이곳은 병자호란의 주무대로서 민족사에 가장 큰 치욕을 당한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1636년 청나라 태종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심양을 출발함으로 병자호란이 시작되었고
이때 강화도로 피난을 가던 인조는
길이 막히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오게 되어었던 것이다.
그렇게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청군에게 포위된 채
40여 일을 버텨야 했던 곳.
이듬해 1월 강화도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비축한 식량도 바닥이 나고 날은 추워
병사들이 얼어 죽어가자 1월30일 인조는 세자 등
호행(扈行) 500명을 거느리고 성문을 나와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례(降禮)를
(엎드려 9번 절하고 항복한 것을 이름) 한 뒤 한강을 건너 환도하였다.
조선조 인조 때 축조된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에서의 치욕으로 만 상징됐던 산성이
질곡의 역사로부터 벗어나 우리 선조의 자주정신과
극난극복의 결정체로 재해석 되면서 그 가치를 다시 쓰게 하고 있다.
남한산성은 인조 2년 1624년부터 축성되어 인조4년 1626년에 완공됐으며
산성 내에서는 행궁을 비롯한 숭열전 청량당 지수당
연무관 등이 들어서 수백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절사 옆과 뒤로 큰 귀롱나무 전체가 꽃이다
은은한 아카시아 향기를 닮은 달콤한
향기가 유혹하여 한참을 귀롱나무 아래서 달콤한 향기에 취했었다
집 뒷산에 피는 철쭉이 다 지고 키가 닿지 않는 꼭대기에만
있어서 지난 5월1일 집에서 가까운 남한산성으로 갔다.
야생화의 보고라 하는 남한산성도 올 봄에는
가보지 못해서 갔더니 작년에는 철쭉이 다 지고
줄딸기가 한창인 모습이었는데 올해는 철쭉은 한창인데
줄딸기는 다 지고 있어 예쁜 모습이 아니었고 집 뒤에서
늦어서 눈맞춤을 못했던 족두리풀도 지고 있는
모습이긴 하였지만 아직 꽃이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올해 만나지 못했던
솜나물 군락을 만났는데 한창인 모습을 만나 다행이었다.
귀롱나무의 달콤한 향기에 취해보고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많은 식당에 가는것이 부담스러워
가지고 간 도시락을 꽃이 한창인 철쭉나무
아래에서 먹고 아직 남아있는 야생화들을 담으면서
북문과 동문 쪽 입구에서 성을 따라 조금 걷다가 성에서 내려와
차가 많아서 꼼짝 을 못하는 성을 빠져 나올 수 가 없어 가까운
성남 쪽을 두고 경기도 광주 쪽으로 돌아 돌아 집으로 오는 길
그래도 흐드러지게 핀 꽃들은 아니었지만 지고 있는 꽃들과 눈맞춤을
하면서 오랜만에 남한산성에서 봄날의 아름다움을 한아름 안고 돌아온 즐거운 날 이었다.
2020년 5월 1일 남한산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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