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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살찌우는 글들/믿음 의 글들

믿음의 세계를 다시 펼쳐라

by 밝은 미소 2021. 1. 4.

믿음의 세계를 다시 펼쳐라! (1) 안전지대를 떠나기

2020년 1월3일 /안전지대를 떠나기/ 본문 창12:1-20 /설교:최성은 담임목사님

 

여러분은 코로나로 인한 이 상황의 지난 한해를 겪으시면서 신앙이 어떠하셨는가?

코로나는 고난이지만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하기에 참 좋은 기회인것 같다.

여러분의 신앙이 이런 고난가운데 성장하셨는가 아니면 퇴보하셨는가 아님 게을러졌는가?

하나님께서 어느 한 사람을 택해서 그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세워나가시는지

아브라함을 통하여 보여주고 계십니다.

mannerism에 빠져 있는것 안전지대에 빠져 있는것 하나님께서 이런 안전지대를 떠나라고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펼쳐 보이시는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라고 우리에게 도전을 주시고

말씀해 주시고 격려해주십니다.

지난해 특별새벽기도회에서 창세기 11장까지 보았는데 그 창세기 11장은 오늘 본문말씀과

연결 되어지는 말씀입니다.

노아의 후손이되는 셈과 함과 야벳 세아들가운데 특히 셈의 후손인 데라의 이야기부터 시작을 합니다.

창 11:27 데라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데라는 아브라함의 아버지이고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임.

이 데라의 가족들은 지금의 이라크 남부 우르땅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데라가 이 가족들을 데리고 가나안땅을 가려고 긴 여행을 떠난다 그러다 데라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지금의 터키 동부지역이라 할 수 있는 이 하란이란 곳에 정착을 하게 된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본인이 가려고 하던 그 목적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

창11: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32절.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

이 당시는 수메르시대 또 아카드제국시대라 할 수 있는데 우르지방에서는 달을 숭배하고 하란도

달을 숭배하던 곳이었다.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숭배하였었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코로나 전염병의 상황이 모든것을 멈추게 한다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그래서

뉴노멀이란 말이 생겨났다.하나님께서는 우리 신앙가운데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고 계시다.

우리의 고난이고 불편한 것이고 모든것 일상이 멈춰지고 있지만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강력하고 본질을 깨닫게 하시고 믿음이 세계를 펼쳐 보이고 계시는 중이시다.

안전지대는 지금은 좋을것 같지만 서서히 우리를 죽이는 무서운 환경이다.

인간이 죄를 짓는 환경을 생각해 보면 크게 3가지이다.

첫째는 배가 고파서 죄를 짓고 둘째는 더 먹기 위해서 죄를 짓고 셋째는 배가불러서 죄를 짓는다.

인간은 배가 부르고 안전한 환경가운데에서 그래도 많은것을 더 누리기 위해서 범죄하는 존재이다.

이 죄는 사회법망에 걸리지 않는 죄들이 많다.

게으름의 죄, 탐욕의 죄, 교만의 죄. 내가 안전지대에 있다라고 생각할때 짓는 죄들이다.

배가 고파서 짓는 죄는 어느정도 이해도 하고 용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전지대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짓는 탐욕,게으름,교만, 이런 죄들은 단시간에 우리가

느끼지 않도록 우리를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간다.

육신적인것이든 영적인것이든 마음적인것이든지 마치 개구리를 주전자에 넣고 물을 서서히

가열을 하면 개구리가 절대로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편안함을 갖게 되므로 시간이 지나가면 개구리는 서서히 죽어간다.

안전지대는 우리를 영적으로 그렇게 파멸하게 만든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안전지대에서 교만하여 지고 게을러 져서 탐욕스런 마음으로 하나님께

결국 범죄를 했다.

우리를 이처럼 사로잡고 있는 안전지대에서 우리가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가 2021년 새해를 어떻게 영적으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까요?

 

1.말씀에 단순하게 순종하라(12:1)

창 12: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은 그 전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데라 부모님때부터 우상숭배를 하였기 때문에

우상숭배와 세속적인 가치관과 고대문명이 가득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정착을 하였던 하란지역도 우상숭배가 만연한 곳이었다.

고고학자들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초반에 걸쳐 몇차례 중요한 발굴을 고대 근동지역에서

하였는데 아브라함이 살았던 지역은 어떤 지역인가 아브라함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살았는가

그런데 아브라함의 고향이라고 일컸는 이 우르지역의 발굴을 대대적으로 복원을 하면서 아브라함은

유목민이 아니라 당시 세계문명의 중심지에서 법을 배우고 질서를 배우고 다양한 문명의 혜택을 받고

부유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당시 세계는 창세기 11장의 바벨탑과 유사한 고대건축인 지구라트 신전들이 세워질 정도로 정말

발달된 그런 도시의 문화들을 특별히 아브라함의 고향에서 갖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우르와 하란에 만연한 그러한 문명들을 버리고 떠나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게 너무 어려운것이다.

문명이 있고 집이 있고 자신이 정착했던 곳 그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가족을 떠나는 이 문제.

가족 공동체, 고향, 친척,친구들,아버지집을 떠나라는 음성이었다.

사람에 있어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이 친숙했던 것에서 떠나는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우리를 불러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가 결정하고 한신하고 눈물도

흘리고 하지만 현재를 생각하다 과거를 돌아보면 전적인 하나님 은혜였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백들이 무엇인가?

왜 나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는가이다.

이렇게 구원해 주시고 사람만드시고 거기에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사명주시면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 왜 나같은 사람을 이렇게 사랑하십니까이다.

이것은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백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이다.

내가 지금 하나님을 믿고 있는것도 하나님의 택하심이다.

켈빈주의 신학적인 것 모든것을 내려놓자 신학도 성경에서 나온것이니까

우리는 그래서 성경을 먼저 봐야 된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인생가운데서 부르신다.

하나님께서 이 종말의 때를 늦추시는 이유는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모든사람이

구원받길 원하시는 아버지의 본심이시다.

신학은 거기서 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누가 구원받았느니 안받았느니 논쟁하지 말고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영혼을 사랑하시고 구원하라고 하시는것 우리는 그 본질에 초점을 맞추면 되는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내가 순종을 하고 있는가! 이다.

하나님은 다 사랑하시고 구원으로 부르시고 구원이후에도 하나님은 날마다 중요한 순간마다

우리를 불러주신다. 주님의 음성을 우리들에게 들려주시길 아주 기뻐하신다.

우리가 거부하고 외면하고 게으르고 하나님의 음성을 못들은체 하고 도망가서 그렇지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음성을 들려주시길 너무 기뻐하신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 한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어떻게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인생가운데 개입하셔서

그를 이끌어 가시고 또 친밀한 교제를 하시는가를 보여주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그러면 우리 입장에서는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하나님의 사랑의 세레나다에 정말 우리가 진심으로

순종하는가 하는것이다.

 

그것을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에서 보여주시는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75세였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

떠나가라 우르와 하란에 속한 우상을 버리고 떠나라고 명령하심.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머뭇거리지 않고 떠남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순종하는가?

자신의 안전지대에서 안락함을 모두 버리고 떠나는 아브라함.

그러나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고 감 

히11:6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어디로 갈지 갈바를 알지 못함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확신을 갖고 믿음으로

떠난 아브라함이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것이다.

로마서 4: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바 되었느니라.

성경은 의로 여겼다라고 선포하고 있음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한것임

이것을 간과하면 신앙생활을 못한다 안락한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이렇게 중요한것임.

반대로 mannerism에 빠지는것이 큰 죄라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임.

과히 신앙생활의 생명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성경이 날마다 새로운 것으로 우리에게 부어주신다라고 이야기하심.

그래서 내용은 같지만 새노래로 하나님께 찬양하라고 이야기하심.

 

새해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할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 가운데 주시는 말씀이 있을것이다.

내가 안들을려고 하고 외면하고 육의 생각으로 가득차서 그렇지 하나님은 말씀을 해주신다.

우리는 결정을 해야 한다 안전지대에 머물것인가!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그 말씀에 순종할것인가! 이것은 우리의 각자 개개인의 몫이다.

 

2.약속을 받아 누려라.(2-3절)

우리가 말씀에 순종해서 안전지대를 떠날때 사탄이 우리에게 주는 시험이 있는데 그 전략중에

가장큰것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으로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을 주고 안전지대를 떠날때 한가지 확실히 해야 될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때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는가이다.

내 용기 호기로 떠나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날 부르실때 주신 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있는가이다.

창12: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약속의 말씀을 붙들었는가(12:2-3)

아브라함에 주어진 3가지 축복

1.큰나라와 민족으로 삼아주시고 2.복을 주고 그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3.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리라.

아브라함과 관계하는 사람들 속에서 아브라함이 복의 중심과 통로가 될것을 약속하심.

이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약속의 성취가 늦다고 포기하지 말라.

주님이 주시는 축복을 한사람을 택해서 나라와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꿈 

이것도 대단한데 특별히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인데 마치 하나님처럼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게 하시겠다는 이 말씀은 가장 큰 축복이다.

나의 가문을 믿음의 가문으로 만들어 주시고 나의 이름을 창대케 해주시고

무엇보다 복의 근원이 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 하나님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아브라함에 부어주시겠다는 이 약속은 가슴뛰는 약속이다 왜 아브라함이 갈바를 알지

못했음에도 떠났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이 것은 모두가 받고 싶은 신년의 축복임 이것은 영적인 원리이다.

인간은 더 높고 귀한 것을 바라보아야 자신이 움켜진 것을 내려 놓는다.

안전지대를 내려 놓으려면 하늘로부터 주시는 신령한 약속들을 사모해야 한다.

그것을 보지 않기 때문에 안전지대에 계속 머물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고난가운데 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누릴 수 있게 되는것이다.

아무리 힘든 역경가운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약속 축복의 말씀을 붙들게

된다면 우리는 고난속에서도 창조적인 감사를 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의 세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속이 성취되는것이 더딜지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아브라함의 스토리를 통해서 계속 볼것이다 75세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책임지시겠다고 이야기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아브라함이 얼마나 평편없는 남자인지 얼마나 평편없는 바닥을 들어내는 인간인지

그의 실수와 허물을 통해 정나라하게 바라보게 될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와 언약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만들어 가시는 과정을 우리가 보게 될것이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의 신앙이 단단해 지고 성장해 가고 아브라함도 위대한 일을 어느정도 하게

되는것을 우리가 보게 될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이다.

우리의 삶 일생가운데 routine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저 축복의 약속을 주신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이 주시는 약속을 누릴줄 아는 법을 배우는것이 중요한 것이다.

 

 

3.하나님을 예배하라. 예배하라. 예배하라.(7-9절)

오늘 한가지 오해를 풀겠습니다 제가 설교하면서 기복신앙은 나쁜것이다

기복신앙에 대해 질타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복을 구하는 신앙은 절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그것에 대해 성경이

이야기 하는것이 아니다 복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우리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신데 축복을 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다

문제는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에만 관심을 갖는 신앙이다.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주시는 福에만 관심을 갖는 신앙이 문제이다.

콩고물에만 관심이 있는거 우리 속담에도 나타나 있다.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의 이 기적 사건에 나타난 일들에 대해서 우리가

이 말씀을 늘 기억해야 한다 너희가 나를 찾은 까닭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래서 내가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랑 사귀자 나랑 만나자 나랑함께 사역하자

나랑 함께 사랑하자 라고.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이 축복의 근원이신것을 깨닫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존중하고 그분과 교제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축복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오는 것이다.

우리는 예전에 못먹고 못살았다 그래서 찬송가 28장을 많이 부르셨다.

내가 많이 들은것중 하나인 찬송가이다.

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 한량없는 자비하심 측량 할 길 없도다

천사들의  찬송가를 내게 가르치소서 구속하신 그 사랑을 항상 찬송 합니다

 

우리가 많이 부르고 들은 찬양 이 찬양의 가사가 무엇인가 복의 근원 이신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나타나시니까 우리가 찬송할 수 밖에 없다라는 이야기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시다 그래서 그분을 높이고 경배하고 그분과 교제하고 사귀는 것이 절대적인 것이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세계를 시작하면서 이것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창 12:7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구약 시대에 제단을 쌓다라는 말은 예배를 드렸다는 것임.

자기에게 주신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예배드림.

하나님께서 갈대 우르에만 나타나신것이 아닌 가나안땅 세겜땅에도 나타나심 하나님과의 사귐이 시작되어짐.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것은 예전의 기복신앙이 있었기 때문임

그 기복신앙에서 이제 예배의 대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올바른 하나님을 발견한 것임.

아브라함도 마찬가지 우상을 섬기고 태양을 숭배했던 습관들이 이제는 창조주 이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그분이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것을 깨닫기 시작함.

아직 이루어진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드디어 하나님과 본격적으로 사귐을 시작하는 장면이다.

그리고 그 예배의 삶이 한순간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이루어 진다.

창 12:8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 이름을 부르더니.

밷엘(하나님의 집) 그곳에서도 예배하고 교제하는 삶이 되어짐.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하는 모습 이것이야 말로 코로나 한복판에 있는우리가 회복해야 하는모습이다.

하나님께서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죄악의 자리에서 선을 행하는 장소로 떠나길 원하신다.

죄악의 자리에서 선을 행하는 장소로 편안함에서 평안함으로 불평에서 떠나 감사함으로 가라.

이기심에서 떠나 사명감으로 자기 만족에서 떠나 섬김의 자리로 증오의 마음에서 떠나 용서의 마음으로.

두려움에서 떠나 확신의 자리로 허무에서 떠나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비젼의 자리로 하나님은 우리를 초청하신다.

 

독일의 본헤퍼 목사님 안전지대를 버리고 자신의 조국 독일을 위해 전쟁의 미치광이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한것에 가담하고 그 작전이 발각되어 감옥에 갇혀 사형을 눈앞에 두고있는 어느날 옥중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엄청난 은혜를 깨닫게 되고 그때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다는것을 직감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자신이 탈옥해서 건강하게 돌아오길 기다리는 노모와 아내에게 자신의 신앙고백을

편지로 써서 보내게 되는데 그렇게 해서 지어진 곡이 선한 능력으로 라는 곡이다.

선한 능력으로

1.그 선한 힘에 고요히 감싸여 그 놀라운 평화를 누리며

  나 그대들과 함께 걸어가네 나 그대들과 한 해를 여네.

2.지나간 허물 어둠의 날들이 무겁게 영혼 짓 눌러도

  오 주여 우릴 외면치 마시고 약속의 구원을 이루소서.

3.주께서 밝히신 작은 촛불이 어둠을 헤치고 타오르네

  그 빛에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온 누리에 비추게 하소서

4.이 고요함이 깊이 번져갈 때에 저 가슴 벅찬 노래 들리네

  다시 하나가 되게 이끄소서 당신의 빛이 빛나는 이 밤

후렴.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세로워

 

어떻게 이렇게 절망의 차가운 감옥의 한복판에서 사형을 앞두고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가!

한달후에 전쟁이 종료가 되었다 그는 칼바르트가 칭찬한 신학자였다.

그런데 본헤퍼 목사님은 어떻게 이러한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

때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고 정말 혼돈스럽고 흑암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의 힘이 성령의 역사가

그 흑암가운데서 운행하시고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죄가운데서 신음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품으시고 자신의 목숨을 내어 던지신 그 복음의 이야기 생명의 주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이야기가 창세기에도 고스란히 묻어나와 있다는 창세기에도 기록되어 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었다.

믿음의 세계가 창세기에서 부터 우리의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창세기부터 보여주신다.

이런 허접한 인간도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고 민족의 시조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붙들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가실 수 있다면 왜 내가 그렇게 되지 못하겠는가

하나님께서 흑암같은 세상속에서도 우리를 빚어가고 계신중이시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여러분을 택하셨다 하나님도 우리를 이 코로나 가운데 정금같이 다듬고 계심.

그래서 믿음을 사용해야 하고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여러분 모두가 믿음의 세계를 펼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실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가시는 그러한 시간 한해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질 수 있는 첫 주일 입니다.

환경은 너무 어렵고 우리의 삶가운데 최악일 수 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더욱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는것을 믿어야 하며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필요합니다.

본헤퍼 목사님의 고백처럼 그 선하심이 우리를 감싸시니 믿음으로 일어날 일을 기대하네.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하나님 환경이 어떻게 되었든 우리가 믿음의 세계를 다시 펼치기를 소망합니다.

죄악의 안전지대를 떠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려움과 이기심과 자기 만족과 이러한 안전지대를 떠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의 빛으로 인도하시는 그 믿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를 감싸고 계기매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주님을 예배하고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길 창조주 되시며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