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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경기도

호로고루성의 해바라기

by 밝은 미소 2021. 9. 18.

9월 6일 날 연천 호로고루성의 해바라기를 보러 갔는데

날이 안 좋아 아쉬워서 지난 9월 13일 다시 찾은 날

늦어서 해바라기가 이미 다 지고 없었다.

다행히 다른곳은 해바라기 꽃이 다 지고 있었는데 이곳만

늦게 씨를 뿌렸는지 막 피고 있는 꽃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호로고루성에 올라서 바라본 풍경인데

해바라기가 노랗게 피어 있었음

좋은 풍경이 되었을텐데 이미

해바라기가 다 져서 아쉬운 풍경이 되었다.

 

 

해바라기 꽃 사이를 다니다 보니 이렇게 활짝 핀 해바라기 꽃에 그림과

사랑이라는 글씨들을 새겨서 흔적을 남기고 간 꽃들이 너무 많아

예쁘게 핀 꽃에 이렇게 꼭 흔적을 남겨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한두 송이에 그려 놓았으면 괜찮은데 잠깐 동안 다니면서 

내 눈에 띈 이런 흔적을 남긴 꽃들이 수십 송이가 보이는 것을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의 꽃을 꼭 이렇게 흔적을 남겨야 했는가 싶다.

사람들이 다니는 곳에서 이렇게 예쁜 꽃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는지...

 

 

 

개설

사적 제467호. 임진강 북안에 있는 연천 호로고루는 현무암 대지 위에 구축되어 있는 삼각형

모양의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이다. 2001년 이후 4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하여 견고하게

쌓은 성벽과 목책(木柵), 대형집수시설 및 각종 건물지가 조사되었으며, 연화문 와당과

치미를 포함한 많은 양의 기와, 토기, 철기유물 등이 출토되어 성곽의 구조와 함께 고구려

축성기술과 고구려의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였다. 호로고루는

6세기 중엽 이후 약 200여 년간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하천(國境河川) 역할을 했던 임진강

유역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에 있고, 상대적으로 위계가 높은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고구려 국경 방어사령부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입지 및 연혁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호로고루가 있는 고랑포 일대의 임진강을 호로하(瓠蘆河),

또는 표하(瓢河)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호로고루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670년 (현종11)에

편찬된 『동국여지지』인데 ‘호로고루는 부의 동쪽 32리 호로탄 위에 있다. 그 동쪽은

적성현과의 경계이며 두 개의 루(壘)가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데 석벽으로 인하여

견고하다. 전하기를 삼국시대 둔술처(屯戌處)라 한다’고 하였다. 임진강과 한탄강은

현무암대지를 침식하며 흘러 강의 양쪽에 높이 10m가 넘는 수직 단애(斷崖)를 형성하고 있다.

이 수직단애는 자연장애물이자 천혜의 요새를 구축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해 주어 임진강과

한탄강은 6세기 중엽 이후 200여 년 동안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하천 역할을 하여 왔다.

임진강 북안에는 주요 길목마다 고구려성이 구축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호로고루는

조수간만의 영향을 받는 감조구간(減潮區間)이 상류에 위치하여 배를 타지 않고 임진강을

도강할 수 있는 최초의 여울목에 접하여 있어 가장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에 해당한다. 이러한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호로하 부근에서 벌어진 고구려와

신라, 신라와 당나라의 전투기록이 여러 차례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도 이 지역은 호로탄(瓠蘆灘)이라 하여 장단을 통해 개성으로 들어가는 주요 길목이었으며,

호로고루에는 조선시대 중기까지 장단군의 치소(治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호로고루는 1991년문화재 연구소가 실시한 군사보호구역내의 문화유적 지표조사를 통하여

고구려유적임이 알려지게 되었고, 2001년부터 토지주택박물관에 의한 4차에 걸친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특징

호로고루는 연천 당포성과 연천 은대리성과 함께 임진강·한탄강의 단애 위에 쌓은 삼각형 모양의

강안평지성이라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삼각형을 이루는 지형의 한쪽에만 지상성벽을 쌓아 성을

구축하였으며, 성내에는 각종 건물과 집수시설을 만들었다. 집수시설은 방형으로 굴착하여 석축을

쌓아서 마감하였는데 이후에는 부엽공법으로 방수처리를 하고 건물을 구축하는 특수한 구조가

확인된다. 성내에서 출토되는 기와는 국내의 고구려 유적 중 가장 다양하고 많은 양이 출토되었으며,

치미와 연화문 와당이 출토되어 호로고루의 위계(位階)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았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호로고루는 독특한 고구려 축성기술을 밝혀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상성벽인 동벽을 구축함에 있어 성벽의 기저부와 중간부분은 판축(版築)을 하고, 성벽 내외부는

석축으로 마감하였는데 체성벽 내부에서 기둥홈이 있는 내벽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목주(木柱)를 활용하여 성벽 내부의 석축을 쌓은 후 체성벽을 덧붙여 쌓았으며, 체성벽 바깥쪽에는

보축성벽을 쌓은 후 보강토를 쌓은 복잡한 공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토성과 석성의 장점을 결합한

축성공법은 중국 집안의 국내성(國內城)과 평양의 대성산성(大城山城) 및 남한의 고구려보루에서도

확인되는 고구려의 특징적인 축성공법이다. 기둥홈은 평양의 대성산성과 연천 당포성에서도

확인되었는데 호로고루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축성공법과 관련된 구조라는 것이 명확하게 밝혀지게 되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9월 6일 날은 그래도 이렇게 해바라기가

노랗게 피어 있었는데 13일 날 간 날은

늦어서 해바라기가  다 지고 있었다.

 

 

성에서 바라본 풍경들이다

 

 

 

 

 

 

 

 

 

 

 

 

 

 

 

 

 

 

 

성위를 걷는 사람들의 모습

 

 

 

 

 

 

 

 

 

 

 

 

 

 

 

 

 

 

 

 

 

 

 

지난 9월 6일날 찾은 날은 성위에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는데

이날은 좀 일찍 떠났더니 사진 찍는 진사분들만 몇 명이

아래서 사진을 담고 있어서 성에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다.

 

 

 

 

 

 

 

 

 

 

목화꽃이 입술을 벌리고 피어나고 있다.

 

 

 

 

 

 

 

 

 

 

 

 

 

 

 

지난 9월 6일 날 연천의 호로고루성에 해바라기를 보러 갔는데

날이 너무 안 좋아서 사진들이 아쉬워서 일주일이 지난 후

9월 13일 날 다시 찾아갔는데 일주일이 지나서 그런지

해바라기는 이미 다 지고 있었고 아침 시간이라서 날씨는

화창하였지만 하늘에 구름이 생기기 전이라서 다시 찾은

날도 역시 아쉬운 날이었다.

 

오전 일찍 먼저 호로고루성을 들려서 오후에 철원에 갔는데

오후에는 파란 하늘에 구름이 많이 생겨서 또 아쉬움 가득...

호로고루성에 해바라기를 담으러 갔다기 보다는 당포성에 

피어있던 오랫만에 본 목화꽃을 다시 담고 넓은 밭에

펼쳐져 피어있던 메밀꽃을 담으러 다시 찾은 연천의 여행길이었다.

 

 

 

 

 

 

 

2021년 9월 13일 연천 호로고루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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