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수도 : 오슬로 면적38만6.958km2 인구: 450만명
인종: 노르딕족.알파인족 공용어:노르웨이어
노르웨이 의 역사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바이킹의 나라 로 잘 알려진노르웨이는 기원전 1만년전 부족공동체에서
시작해 8세기 이후에는 강력한 해상 세력을 바탕으로 점차 세력을 확장했다.
이후에는 강력한 해상 세력을 바탕으로 점차 새력을 확장했다.
890년에 즉위한 하랄 미발 왕은 노루웨이를 통일함과 동시에 지금의 아일랜드 지역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10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계속되는 왕위 계승 다툼으로 수차례 걸친 분열과
재통일이라는 역서적 시련기를 맞는다.
누르웨이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이점을 십분 활용해 해상활동을 재개하며11세기에는
이딸리아 남부까지 세력을 넓혀 노르만 제국을 건설한다.
이어12~13세기에는 아이슬란드 세틀랜드까지 세력을 확장하기도 하였으나 계속되는
왕권분열과 쇠퇴. 한자동맹으로 인한 해상 경제 봉쇠 등 대내외적 요인으로
인해 국가 존망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1397년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의 3국연합(칼마르동맹)이 성립됨에
따라 실적적으로 덴마크가 북유럽의 주도권을 장악했고 그 여파로 노르웨이는 19세기초까지
덴마크의 지배를 받게된다.
나폴래옹 전쟁때는 댄마크가 나폴래옹 편에 가담했기 때문에 그의 몰락과 더불어
1814년 다시금 스웨덴의 통치하에 놓인다.
그러나 스웨덴은 노르웨이의 독립과 새 헌법을 인정했고 외교.방위 이외의 자치권을 허용한다.
덕분에 1880년대에는 세계 3위의 상선 보유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19세기에는 전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민주주이와 민족주의의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드디어 1905년 국민투표를 실시 입헌 군주국으로 완전한 독립국가를 수립하기에 이른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의 침략을 받기도 했으나 독을의 패망과 더불어 독립국으로 출범.
조선.석유.수산업 등을 집중 육성해 지금은 북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프롱네르 조각공원(비겔란 조각공원)
조각가 비겔란에게 323만m2의 부지를 주어 꾸민 조각공원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겔란 자신은 공원 완성을 1년 앞두고 숨을 거두었다.
하이라이트는 17m 높이의 화강암 기둥(모노리탄 Monolitten) 이다.
121명의 남녀가 뒤얽혀 정상을 차지하려고 애쓰는 둣한
모습의 인간 군상인데 비겔란이 디자인하고 석공들이 돌을 쪼아 14년만에 완성시킨 대작이다.
기둥을 둘러싸고 있는 철문이 아름답다.
사면이조각으로 둘러쌓여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 형상화하여 조각한것이라 한다.
비겔란이 혼신을 받쳐 만든 조각공원 가운데 우뚝솟은 것이
그 유명한 (모노리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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