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좋아하신 겹백일홍
오늘 같은 여름 날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기울고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들에나가 일하시던 엄마가 머리에 이고 오신 미꾸리안에는
갖가지 야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이런 여름날이면 콩밭 열무에 밭둑에서 자라 누렇게 익어가는
노각을 한 미꾸리 이고 오시는 엄마
그곳에는 가끔씩 노오란 참외와 개구리참외가 들어있었다.
난 그래서 지금도 여름이면 파란오이보담은 누렇게 익어가는 노각을 사서 즐겨 무쳐먹곤한다.
어릴적 먹던 노각
요즘에야 논과 밭에 나가 일해도 농촌에서도 집집마다 경운기와
자가용이 있어 논둑 밭둑에 대놓고
모든 짐을 싣고 오고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50~60년대에는 남자들은
지게에 싸리나무로 만든 바수거리라고 하는 것을
얹어서 그곳에 모든 짐을 지고 다니고
여자들은 머리에 짚으로 엮어서 만든
미꾸리라 부르는 둥근 바구니처럼 생긴 것에 물건들을 넣어 머리에 이고 다녔었다.
유난히 까만 머리에 머리 결이 좋으셨던 우리엄마는 말끔하게 빗어 넘긴
쪽진 머리에 그 무거운 물건들을 머리에 이고 집까지 오셨으니
그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고개가 아프셨을까?
유난히도 깔끔하고 부지런하셨던 엄마는 그렇게 일하시는 틈 틈에도
마당 가에 꽃밭을 만들어 여름 날 이면 봉숭아와 분꽃 백일홍이 소담하게 마당을 장식하곤 하였었다.
백일 동안 피어있다는 백일홍을 유난히 좋아하셨던 우리엄마
여름 날 백일홍이 곱게 핀 것을 보면 그 꽃 속에서 엄마의 모습을 찾을 수 가 있다.
지금쯤 친정 집 마당의 꽃밭엔 갖가지 백일홍 꽃과
분꽃 그리고 마당가로 빙빙 둘러 겹 봉숭아가 피어 있을 것이다.
겹겹이 피는 꽃송이가 하도 커 주먹만하다고 하여 우리가 이름 붙여준 주먹봉숭아가 말이다.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던 주먹봉숭아
이런 여름날 환한 달밤에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멍석 옆엔 화로에 모깃불을 지펴놓고
그 위에 풀을 얹어놓으면 유난히 연기가 많이 나던 모깃불
멍석에 형제 자매들이 빙 둘러 앉아서 열손가락에 봉숭아 물을 들이던 생각이 새롭다.
언제나 인자하시고 자상하신 아버지는 장날이면 백반을 사오셔서 백반을 넣고
찧은 봉숭아 꽃을 아주까리(피마자) 잎으로 곱게 싸매주셨고
아침에 일어나서 누구 손톱에 봉숭아 물이 제일 예쁘게 들었는지 서로서로
손을 대보던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
유난히 잠을 험히 자던 내가 손가락에 묶은 아주까리 잎이 빠져서 밉게 물이 들었던 기억이난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 밤 환한 달빛아래 유난히 희게 비추던 초가지붕의 박과
박꽃이며 모닥불을 지펴놓고 그곳에 옥수수와 감자를 구워서 먹던 여름달밤
뒷산에서 소쩍 소쩍쩍~~
소쩍새가 슬피 울어대는 그 어린 시절의 여름 밤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스친다.
어제저녁엔 손자녀석인 재훈이와 마주하고 자면서 어린 시절 여름 밤
고향집 마당에 도란도란 앉아서 이야기 꽃을 피우던 꿈을 꾸었다.
결혼하여 친정 집을 떠나 어린 시절을 보낸 세월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아온 시간들인데 왜 지금도 꿈을 꾸면
꼭 그 어린 시절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보냈던 고향마을을 배경으로 꿈을 꾸는 걸까?
지금도 고향집 마당엔 갖가지 백일홍이 곱게 피어서
긴~ 시간 동안
우리엄마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있을 백일홍 꽃들…
우리 집 앞 화단에 곱게 피어 있는 갖가지 백일홍 꽃들 중에
새하얀 겹 백일홍꽃을 보면 유난히 까만 머리에
곱게 쪽을 지시고 모시 적삼을 즐겨 입으시뎐 친정엄마의 그리운 모습이 그 백일홍 꽃 속에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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