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1/6 목.
내 인생의 주관자 하나님을 붙들라!
4.광야에서 꿈을 꾸다
창세기 28장/최성은 담임목사
모든 인간들에게는 누구나가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다 있다.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거기에 노예가 되고
초첨을 맞추고 살아가다 보면 나에게 너무 고역이 되고
고통이되는 삶이 된다.
세상에는 기대치라는 것이 있다 부모에게 거는 기대 자식들에게
거는 기대 친구에게거는 기대등...
이 기대치는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사람을 파멸시키기도 한다.
구약성경 고대사회에서도 기대치는 존재해 왔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삭의 아들 야곱이란 인물은 우리의 아픔과 고민을
가장 잘 대변해 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야곱은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축복받길 원했다.
그러나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얻은 축복은 야곱에게 너무
혹독하다. 형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 마음먹고 그런 야곱을 엄마 리브가는
밧담아람 지역 외삼촌 집으로 피난을 가게 된다.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했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채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한가지는 안좋은 사건으로
떠나는 야곱에게 이삭과 리브가는 그곳으로 가는 목적을 이야기 한다.
신앙의 가문을 이어갈 신부감을 그곳에 가서 찾으라 이야기함.
창세기28:1-2.아들이 먼길을 떠나는 길에 이삭은 야곱을 다시 축복한다.
3절.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여러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야곱에게 주고 아브라함에 주신 땅을 너에게 주시길 원하노라.
27장에서 야곱에게 축복한것과 다름.
에서에게 축복하려 했던 그 축복이 아닌 야곱에게 축복하는 것을 보면
영적으로 야곱의 장자를 인정한것 같음.
아버지 이삭은 족장으로 아버지로서 큰아들에게 한 축복이었다.
28:6 에서가 본즉 야곱은 부모의 영을 따르고 에서는 계속 본즉 본즉 자기
좋을대로 행동하는 모습 아버지 이삭이 좋아하지 않는 이스마엘 가문에서
가서 아내를 얻으려함.센스가 전연없는 에서 센스는 영적인 지혜이다.
에서는 기도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행동함
성경은 에서가 기도하였다는 말이 없다. 에서가 본즉 에서가 하나님을
믿었다라는 말이 없음. 에서는 장자권을 죽한그릇에 팔 정도로 귀하게
여기지 않은 반면 야곱이 축복을 간구한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인정받는 진정한 축복을 원하였음.
그래서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 야곱을 들어 고쳐 쓰시기로 작정하신것임.
하나님은 야곱을 하란으로 가는 광야로 내어모심. 그것은 20년간 그를
훈련의 시간이됨. 야곱은 광야에서 돌을 준비해 잠자리를 만듬 그날밤
야곱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꿈을 꾼다.야곱이 본즉.
에서는 육신의 것들을 보고 야곱은 영적인것을 봄.
야곱이 누워있는 그 땅을 주고 야곱이 축복의 통로가 될것을 약속 하시는
하나님. 13-14절. 아브라함에게 축복한것을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하심.
아브라함-이삭-야곱으로 이어가겠다 약속하심.
15절.내가 네게 허락한 모든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고 어버지
이삭의 땅 고향으로 돌아오리라 약속하심.
창세기.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야곱의 인생 고백임 인정받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하나님인줄
알았는데 광야에서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남.
28: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내가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너의 하나님이다 라고 말씀하심.
28:29.야곱에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배게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1절 하나님께서 나타나 약속을 해주는데도 그렇게 해주실때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그런 지렁이 같은 야곱을 축복하시고 vision을 주신 하나님이 그를
다듬으시고 그길을 인도하시고 야곱을 인도해 가실것임.
꿈은 내가 꾸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꾸게 하시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향해 꿈 꾸시는 대로 되는 것이다.
나는 그 꿈을 꾸게 하시는 하나님을 붙들면 되는것이다.
나는 어떤 울부짖음이 있는가 어떤 애통함이 있는가?
야곱의 이야기가 나의 스토리가 되길 광야의 시간 최악의 자리에서
부르짖는 자에게 기도의 자리 예배의 자리 축복의 자리가 되길 축복합니다.
2022년 1/7 금.
내 인생의 주관자 하나님을 붙들라.
5.광야에서 사랑을 배우다.
창세기 29장/최성은담임목사
광야는 소망을 찾는 장소가 아니라 버려진 장소가 광야이다. 그런데 야곱은
그 광야에서 하나님을 가장 깊이 만났다. 야곱이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광야의 야곱을 찾아와 주심 광야의 시간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필요한 시간이다.
단순히 찾아오신것만 아니라 야곱이 그렇게 원했던 축복을 해주신다.
야곱은 지금 자신이 저지른 일에 혹독한 댓가를 치루고 있다.
나의 생각에 내가 갖고 있는 정의에 비추어 보면 야비한 야곱을 하나님은
야단을 치셔야 함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야곱을 꾸짖기 보다는 나타나셔서 그를 위로하시고 축복하신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결과로 경험하는 그 야곱에 대한 반응은 우리가
생각하는 반응이 아님. 우리는 때로 이해하지 못함 하나님의 선택권
야곱을 꾸짖지 않으시는 하나님 그런데 우리가 야곱이라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다. 하나님이 나같은 인간에게 베푸신 십자가의 은혜가 이해가 되는가?
자녀들은 정체성의 혼란가운데 있고 정체성의 혼란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하나는 다른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있다.
우리는 우리의 속마음을 우리만 안다.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다 들여다
보고 계신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것을 결정하고 거치고 그러니까
나쁜생각 죄를 짓는 생각 모든것을 하나님은 보고 계심.
나를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야곱보다 더 한 나에게 은혜를
베프시는 하나님 그 은혜가 이해가 가지 않기에 공의가 아닌 바로 크신
은혜라는 것이다. 우리는 잣대라는 것을 다른사람에게는 공의로 대고
나에게는 은혜로 들이대고 싶어한다.
그러나 성숙한 신앙이라는 것은 내가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고 싶은
만큼 나도 다른사람들에게 그것을 적용해야 그곳이 공평이요 정의이다.
야곱은 자신에가 찾아오셔서 말을 거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모른다.
그러나 이젠 점차 그 사랑을 배워가게 될것이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축복을 하셨는데 그 축복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야곱을 만들어 가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선택했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딸이라 라고 선포하시고 나를 그런 그릇으로
만들어 가시고 순종하고 따르는 자녀들을 축복하시고 인도하시심.
그것이 바로 야곱의 이야기이다.
발뒤꿈치를 잡는자 그것이 발전하여 약탈자 야곱을 품으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것 인지를 야곱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여주심. 드디어 야곱은 그의 목적지인 하란에 도착하게 됨
브엘세바에서 하란까지는 직선거리고 720km의 거리인데 초행길인
야곱에게는 거의 1000km의 거리가 되었을것임 그길은 야곱에게는
무척 험하고 외롭고 고통의 길이었을 것이지만 그 광야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만나주시면서 축복하시고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주셨던 약속의 말씀이 큰 위로가 되었을것임. 야곱이 한 우물가에서
목자들을 만나고 라반을 묻고 그의 딸이 양떼를 몰고 온다라는
이야길 들음. 야곱이 목자들과 양떼에게 물을 먹이는것을 논쟁하는
사이에 라헬이 오고 있음.야곱은 라헬을 보는순간 그 지역의 모든
전통을 버리고 큰 돌을 옮겨 라헬의 양들에게 물을 먹임.
라헬을 보는 순간 야곱은 완전히 반함. 고대시대에 우물은 생명과
복을 뜻함.그리고 입을 맞춤.그리고 라헬은 아버지에게 가서
야곱의 이야기를 한다. 라반도 야곱을 기쁘게 받아주고 야곱은
외삼촌 집에서 한달을 지낸다.그런 야곱에게 라반은 품값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 제안을 하고 야곱은 라헬을 사랑하여 7년을 봉사를
할테니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요구하고 라반도 이 거래를 좋게 여겨
받아들임.창세기29:20.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7년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
(야곱은 라헬을 위해 불같은 사랑을 하였음)
야곱은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열심히 했던 사람이다.
잔치를 하고 첫날밤을 보낸 야곱은 아침에 일어나 라헬이 아닌
언니 레아인것을 알고 격하게 화가남.
꾀돌이 야곱이 라반에게 속는 모습.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를
속인것처럼.야곱은 이 사건을 통해 아버지 이삭과 형에서의
심정이 어떠하였을 것이란은 것을 조금이나마 이해했을 것이다.
화가 난 야곱에게 언니보다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는법이 없다.
라고 하면서 레아도 줄테니7년을 더 섬기라 요구하는 라반.
야곱은 라헬을 얻고 7년을 더 섬김.
왜 하나님은 긴 장을 통해 야곱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는가?
우리도 인생가운데 이런 속이고 속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속고 속이고 뺏고 빼앗기고.아주 중요한 교훈은 야곱은 이런
환경가운데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쳐서 사랑 할 여인을 만났다는것
야곱은 하란 광야에서 사랑이 어떤것인지를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면 야곱의 미래는
평생을 실패자,낙오자,사기꾼,으로 살아갔을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사기꾼의 미래를 바꾸시고 사랑을 통해서
야곱이 깨닫게 하시는것임.야곱은 자신이 무조건적으로 라헬을
사랑한것처럼 광야에서 나타나셔서 꾸짖지 아니하시고 무조건
적으로 자신을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과장을 자세히 보면 주도권 싸움이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면 가장행복할까? 아니면 창조주 하나님
앞에 내 인생을 맡기느냐 그러면 그것이 가장 행복한 삶인가!
이것을 깨닫는 것이 신앙이다.
여기서 끊임없이 주도권싸움을 한다.처음에는 하나님앞에 맡기고
산다고 고백하고 나가지만 성화하는 과정 가운데 얼마나 하나님과
주도권 싸움을 하는가 얼마나 내가 내 뜻대로 살아가려 발버둥 치는가!
그리고 그 성화의 과정가운데 조금씩 하나님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깊숙히 실패가운데 광야 생활가운데 깨달아 간다 바로 하나님 사랑이
이런 것이었구나라고. 그때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그 아들을주셨구나!
우리는 성화하는 과정가운데 내가 죽는 연습을 하고 내 주도권을 점점
내려놓게 되는것이다.
야곱의 변화:야곱은 지금 사람을 속이는데 자신의 인생을 올인하는
것이 아니라,누군가를 사랑하는데 자신의 인생을 불태우고 있다.
야곱이 첫난밤을 레아와 지내고 일어나서 속은것을 알고 망연자실
하였을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아프냐?
나도 아프다. 나의 진정한 사랑을 몰라주니 나도 아프고 네가
그렇게 아파하는 만큼 아버지이삭도 아플거고 네가 그렇게 아파하는
만큼 네가 속인 에서도 아팠을거야.
창세기29:20.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7년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년을 며칠같이 여겼더라.
야곱이 변하고 있다. 사람도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 헌신하고 봉사하는데
목적을 가지시고 나를 만드신 하나님은 그 아들을 내 목숨값으로
던져주신 그 하나님은 우리에 대해서 천년을 하루처럼 참으며 인내하심
7년이 아니라 천년을 하루처럼 인내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들은 사랑으로 하는 일만 하나님 앞에
기억되게 되어있다. 사랑으로 하는일만 나머지는 다 불태워 없어질것이다.
사랑이 회복되어야 사명도 회복되어질 것이다.광야에 있다면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시고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2년 1/8일
내 인생의 주관자 하나님을 붙들라!
6.열두 지파의 서막.
창세기 30장/최성은 담임목사.
창세기 29: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도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야곱은 불같은 사랑을 하였다 야곱은 이방땅 하란땅에서 사랑을 배워가고 있다.
장인에게 속은 야곱은 라반의 제안을 받아들여 라헬을 얻기 위해 7년을 더
라반을 섬김. 야곱이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였더라라고 성경은 설명함.
고대 사회에서는 1부 다쳐가 성행이 되어 있었다.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가 마음이 아파할때 먼저 찾아가 주신이는
하나님이심. 마치 사라에게 핍박을 받았던 몸종 하갈과 이스마엘의 그
아픔을 보셨듯이 하나님께서 레아의 아픔을 보심. 하나님은 늘~약자의
아픔을 보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불같은 야곱과 라헬의 사랑의 관계속에서 사랑받지 못해 아파하는
레아의 아픔을 보시고 레아의 태를 먼저 열어주시는 하나님.하나님은
언제나 약자편에서 살피시는 하나님이심.
하니님은 이스라엘의 족장들 아브라함-이삭-야곱-에게 하늘이 별과같은
많은 자녀를 주시겠다고약속을 하셨지만 그들은 쉽게 자식을 얻지 못함
(하나님은 주실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어갈 수 있도록 훈련을 하신다.)
레아가 아들 4명을 얻고 언니 레아의 자식을 보고 시기질투를 느낀 라헬이
야곱에게 임신하지 못함을 말하자 임신하지 못하게 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한하겠느냐?
(인생의 주인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야곱 야곱이 변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레아가 아들 6명 딸1명 7명을 낳고 레아의 몸종 실바에게서 2명.
라헬이 임신하지 못함으로 자신의 몸종을 야곱에게 주어
빌하에게서 아들 2명을 낳음.
야곱이 많은 자식을 낳으면서도 기뻐하였다는 말이 성경이 없다.
(인간은 인간이 채울 수 있는 부분이 있고, 하나님이 채우시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 때에만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마음의 평안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부분을 인간사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어찌 마음에 평안을 얻겠는가?
(야곱은 레아와 라헬의 사이에서 이것을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사 사랑도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것.
7년을 사랑한 라헬에 대하 야곱도 실망하고 있는것 인간의 사랑은
완전하지 못함.우리가 그렇게 완전할 수 있다면 하나님이 왜 필요한가!
그것을 상대에게 계속 요구하기 땨문에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자녀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완전한 사랑을 최선을 대해
흉내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배우게 되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은 하나님깨 긍휼을 구해야 하는것이다.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의 긍휼로 채워져야만 완전해 질 수 있다.)
22절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그에게 아들을 주심.하나님께서
그의 소원을 들어주심.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사.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들어 가시는 것처럼 라헬도 만들어 가고 계심)
평소에 라헬의 아픔을 보지 못하셨다는 말이 아닌 라헬이 거의 포기
하는 단계에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라헬이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다 라는 이야기임. 나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
23절.요셉을 얻은 라헬.요셉을 얻을 수 없는 가운데 얻었음에도 만족을
하지 못하는 라헬 11번째 요셉이 태어남.하나님께서는 11번쩨 아들 요셉을
택하사 이스라엘의 이어가심. 결국 라헬은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다 죽음.
(레아와 라헬의 질투와 사랑을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이다.) 야곱의 아들들은
그렇게 태아났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족장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런 그들의 실수와 허물로 점처진 역사 그리고 그런 결과들
때문에 분쟁과 고통을 겪는 역사들을 적나라하게 본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참지 못해서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고 이삭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야곱의 이야기는 어떤가! 왜 하나님은 이런
인간들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셨을까?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오늘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 개인의 삶과 다르지 않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허물이 없는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하니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나약함과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의 역사를 이끌어 가고 계신다. 그것이 창세기이다.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그 약속을 묵묵히 지켜 나가시는 하나님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 신실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구속사를 구원의 역사를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야곱도 라헬도 레아도 어느 누구도 야곱의 12아들이 장래
이스라엘 족속이 얼마나 중요한역사를 감당할지 아무도 전혀 알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다. 인간들이 말하는 그런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만이 세우시는 선하시고 거룩한 계획이 있으신 것이다.
야곱의 12아들은 앞으로 히브리민족에게 영적 기둥이 되는 12지파가
될것이다.이들을 통해 광야에서 장막제사를 지낼때에에도 그 주변에는
12지파를 중심으로 진을 이루고 가나안 땅을 입성하기 위해서
요단강을 건널때에도 12지파의 수대로 12개의 돌을 취해 기념하였고
가나안땅을 정복할때에도 땅을 분배할때도 12지파대로 땅을 분배하였댜.
분열왕국시대 북이스라엘과 남이스라엘의 영적인 모든것들이 무녀졌을
때에도 엘리야가 바알선지자들과 맞설때에도 엘레야는 12지파를
상징하는 12돌을 취햐여 단을 쌓고 하나님 앞에 예배하였다.
신약성경의 예수님의 12제자는 12문 12지파를 이어받은 숫자 12지파의
영적인 계승이었다. 마지막 요한계시록 7장에도 12지파가 기록되어 있다.
희대의 사기꾼인 장인 라반에 의해 원하지 않았던 결혼하였던 야곱과
레아 야곱의 인생이 라반때문에 무너졌는가?
야곱의 인생이 라반때문에 무너졌는가!~
라핼의 인생이 레아때문에 레아의 인생이 라헬때문에 무너졌는가!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보면서 어떻게 이 12아들들이 아스라엘을
이끌어 갈것을 모른다면 계속 불평했을 것이다.
저 인생이 누구때문에 누구때문에 하나님을 못만난 분들은 그렇게
불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누구 때문에
어떤 환경 때문에 그 인간때문에 라고 이야기를 계속한다면
하나님께서 내인생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계속 부인하고 있는것이다.
그 불평때문에 인생이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생을 그렇게 설계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나가신다. 누구에게? 순종하는자들에게 그렇게
질투심과 시기 가운데 태어난 야곱의 12아들 경쟁하듯이 세상에
나온 이 12아들 그러나 그들은 앞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갈
영적지도자들 마지막 쓰여진 그 요한계시록에도 천상에서도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영적인 인간이 상상할 수 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셔서 하늘이 별들과 같이 강하게
번성하게 되고 큰나라가 되게 이루어 가실것은 이것은 하나님이
그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최초로 약속하신 것이다.
그 예언의 말씀과 축복이 바로 이 12지파를 통해 현실화 될것이다.
최초의 부르심에 순종한 아브라함 갈바를 알지 못했지만 순종하고
그 뒤를 순종한 이삭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야곱 하나님은 그들의
실수와 허물과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순종과
믿음을 사용하신다.
내 작은 믿음으로 순종할때 내 인생가운데도 어떤일이 일어나겠는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하시고 동역하시는 하나님 세상에
성공과 그림자를 뒤쫒는 인생이 아닌 주님을 쫓는
인생이 되라! 주님이 여러분의 인생을 들어 사용하실 것입니다.
기도
12지파의 이름에 담겨진 것은 다 우리의 이야기입니다.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것은 12지파 이스라엘에서 끝나지 않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더 많이 인내하시고 참으십니다. 더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태어날 수 있도록. 이 12지파의 서막이 우리 인생의
서막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레아와 라헬의 그
위로하심이 우리의 삶가운데 위로가 될 수 있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어려움이 있을때
마음속에 어려움이 있을때
마음속에 어려움이 있을때
주님 내게 먼저 오사
내 맘을 만지고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없을 때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없을 때
주님 앞에 나아올 수 없을때
주님 날 먼저 안으시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사랑하시는
내 하나님의 사랑은 나의 모든 걸 덮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 안아주시는
내 하나님을 부를 때 아버지라 부르죠.
'마음을 살찌우는 글들 > 믿음 의 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기성목사님 칼럼 (0) | 2022.02.03 |
---|---|
내 교훈은 내것이 아니요. (0) | 2022.01.31 |
2022년 신년 특별새벽기도회(1) (0) | 2022.01.16 |
세상과 구별되나 세상의 존경을 받는 삶 (0) | 2021.11.12 |
집탕도 돌아와야 합니다. (0) | 2021.1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