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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살찌우는 글들/믿음 의 글들

2022년 신년 특별새벽기도회(1)

by 밝은 미소 2022. 1. 16.

2022년 신년 특별새벽기도회.

2022 1/3일~8일까지

 

2022년/3일

(내 인생의 주관자 하나님을 붙들라!)

1.인생의 갈림길에서 /최성은담임목사님

  (창세기25:1~34.)

창세기1~11장 하나님의 창조사건, 인류의 죄와 타락,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보여주심.

12장부터 인물중심.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선택의 갈림길에서 찾아오신 하나님을 거부하거나

외면하고 다른 인생길로 간 결과가 어떤지도 보여주심.

하나님께서 그들의 인생가운데 어떻게 간섭하시고 그들은 또 어떻게 거부하고

순종하는지를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생의 갈림길 놓인 사람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나는 인생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붙드는가?

내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붙드는가 아니면 여전히 내 판단과 내 생각과

내 고집과 내 본능인가?

 

1.아브라함:순종으로 시작해 허물을 보였지만 믿음으로 마무리한 인생.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믿음 이었다.

아브라함도 그렇게 변화되어진 인생이었다면 나도 하나님께 붙들림바 되어

변화 되어지는 인생이 되어질 수 있다는 소망을 주는 이야기이다.

그가 인생가운데 붙드신 하나님 안에서 어떻게 변화되어지는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브라함의 이야기임. 그 이야기의 절정이 25년만에 얻은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그 장면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25년만에 100세에 얻은 이삭을 얻고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린 아브라함의 믿음.

햇족속에서 산 밭에 사라를 묻고 그 후 48년을 더 살고 아브라함도 그곳에 묻힘.

그리고 아브라함은 죽기전 자신의 재산을 이삭과 배다른 형제들이 싸우지 않게

분배해 주는것 이것은 자식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영적의 믿음을 나타내는 장소가 되어짐.

창15: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늘~ 주님을 붙잡는 인생이었다.

 

2.이스마엘: 울부짖음과 은혜 그러나 세상적으로 마감한 사람.

하나님은 창세기의 족장들의 이야기는 믿음이 사람들이지만 그들의 삶가운데

보여준 실수와 허물을 부끄러운 인간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시고 그

실수와 하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주워담으시고 싸메시고 이끌어 가시는지를 보여주심.

이스마엘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믿음이 없었을때 얻은 아들이었다.

하나님은 하갈과 이스마엘에게 은혜를 베풀었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지 않음.

하나님은 이스마엘에도 큰 민족을 이루어주겠다고 약속하시고 그렇게 인도하심.

그러나 이스마엘은 약한 때를 생각하지 못하고 싸움꾼으로 인생을 산다.

그리고 하갈은 이스마엘이믿음의 여인을 아내로 맞게 하지 못하고 자기와 같은

이방연인을 아내로 맞게 함. 하나님은 아스마엘과 하갈을 긍휼히 여겨 은헤를

베풀었지만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지 않음.

인생의 갈림길에서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것인가!

 

3.이삭: 순종으로 우직하게 살아간 사람.

25:11.하나님은 아브라함에 축복한것을 아삭에게도 계속 부어주심.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대를 계속 이어가길 원하시고 그 믿음을 이삭으로 이어가심

어떻게 하면 자녀들에게 믿음을 물려줄 것인가 특별히 자녀들이 믿음의 가정을 이루어

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고 mind를 만들어 주는것이 중요함을 성경이 보여줌.

하갈은 이것을 이스마엘에게 보여주지 못하였지만 아브라함은 보여주는 모습.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1000km 넘는 곳에가서 믿음의 며느리를 얻게 하여줌.

이삭은 40세까지 결혼하지 않음.

창24:67이삭이 리브가에게 장가듬 순종의 결과 이삭은 선택의 순간마다 순종하는 삶이었음.

그리고 순종의 결과로 어머니 사라가 죽은 후 위로를 얻음.

 

4.야곱과 에서: 비열하거나 멍청하거나.

이삭과 리브가는 늦게 만나 사랑을 했지만 자녀를 얻지 못함.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영적인 계보

아브라함-이삭-야곱을 보면 자녀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음.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은 훈련을 주심

아브라함은 25년만에 자녀를 얻고 이삭도 간절히 기도한 후 20년만에 자녀를 얻음.

창25:21.리브가가 쌍태를 임신함

힘들때 리브가는 문제를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은 말씀하심

25:23. 큰자가 작은자를 섬기겠다고 하심.

25:25.에서 장자 건강한자 야곱:쫒는자 속이는자. 리브가가 이들을 낳았을때

이삭이 60세 였음. 하나님의 예언대로 이들의 출생이 예사롭지 않음.

이삭은 에서를 좋아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좋아함.부모의 편애는 자식을 망치게 한다. 

장자권을 팔라고 하는 야곱.야곱의 행동도 야비하다.

창25:32.내가 죽게 되었으니 장자의 명분을 쉽게 여기는 에서.

33절.맹세시킴(야곱 죽 한그릇으로 장자를 삼)

34절.에서는 죽 한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다

35절.장자의 직분을 가볍게 여김.장자권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자기의 길을 갔다.

히12:16.망령된자(세속적인.불신앙적인.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처럼 행동함)

에서의 장자권은 가벼운것이 아님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그 다음대를 잇는 엄청난 믿음의 장자권이다. 그런 믿음의 장자권은 엄청난

축복의 장자권이다 그런 장자권을 에서는 소홀히 여김. 장자권을 소홀히 여기는 것은 그것을

주시고 허락하신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에서의 행동을 비판하는 것임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선택할 자유의 의지를 주심. 하나님의 주권속에 때로 하나님이

막으시는 것도 있고 허용하시는 것도 있음.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께 속한것임.

그 것은 하나님의 몫으로 남겨두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은 선택의 순간이

왔을때 하나님의 관계속에서 사용하는 믿음이다.선택의 순간속에서 믿음이다 .

중요한 것은 에서가 육신적인 배고픔이 찾아왔을때 자신의 장자권을 만홀히 여긴 것이다.

비록 야곱이 그런 유혹을 했지만 평상시 에서가 자신의 장자권이 얼마나 중요한것인가를

생각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은 아브라함과-이삭과-야곱의 하나님인 것을 강조하심.야곱은 장자가 아니었다.

하나님은 장자를 편애하시는 분이 아님.야곱이 영적인 계보를 잇는것은 야곱의 첫째아들

르우벤이 아닌 11번쩨 아들 요셉이다.하나님은 사람을 편애하시는 분이 아님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

생물학적인 장자가 영적인 장자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하갈과 이스마엘의 그 울부짖음도 들어주셨다 하갈 이방여인이었다.

이렇게 많은 인생가운데 우리가 배워야 할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심의 주권속에 무엇인가 보시길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와

사람의 관계속에서 믿음을 보신다. 그것은 행위와 다른 것이다.

아브라함의 행위 때문에 하나님이 부르신건가 아니다 우리의 행위를 보시고 하나님이

부르셨는가?

하나님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우리가 무엇을 붙드는지 눈여겨 보신다. 하나님을 붙들라.

야곱은 얄밉고 비열한 모습이었지만 그 장자권의 귀함을 알았다.우리는 이것을 놓치면 안된다.

야곱은 2인자의 삶을 살았고 비열했지만 그의 인생에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고 이삭의 하나님이고 야곱의 하나님이 되실 수 있었는지 우리는 보게 될것이다.

로마서4:16의 말씀 때문에 우리가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이 될 수 있었고 이 말씀때문에 우리도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이다.

나의 인생의 갈림길에서 나는 계속헤서 무엇을 선택할건가?

나는 올해 어떻게 어떤일을 선택하며 살것인가?

수많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나는 나는 무슨 근거로 결정하는가? 나는 과연 하나님을 만났는가?

나는영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맞는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가?

무엇보다도 나는 나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인생인가?

 

2022년 1/4일

(내 인생의 주관자 하나님을 붙들라!

2.온유한 삶이란? 창26장/최성은담임목사.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이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나오는 족장들의 이야기 가운데서 가장

평안한 삶을 살았고 온유한 성품 하면 떠오르는 것은 것은 이삭이다.

온유한 삶이란?

1.전능자에게 순종하는 삶이다(1-11절)

순종은 내 존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나보다 더 잘아는 그분에게

나의 인생을 의탁하여 최선의 삶을 살아나가는 것이다.

나를 만드신 창조주 전능자에게 내 인생의 키를 맡기고 함께 항해 하는것

중요한 덕목이다. 온유함은 그럴때 생기는 것이다. 그럴때 마음에 평안함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갔던것 처럼 자신도

애굽으로 가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가지 말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심.

그러면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을 이어서 이삭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심.

순종의 영성은 대물림이다.부모의 삶을 자녀들이 지켜보고 있고 배우고 있다.

아브라함의 영성은 이삭에게 대물림되고 있는데 순종을 말씀하시면서 중요한 것을

말씀하심 이삭아 네 아버지 아브라함은 이렇게 살았어 라고 말씀하신다.

창26:2 아브라함에 주셨던 모든것을 너에게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심.

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아브라함이 순종한것을 기억하시고 이삭에게 너희 아버지 아브라함은 이렇게

살았다라고 말씀하여 주심. 자녀가 받는 이런 일은 자녀에게 엄청난 축복이다.

순종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부모의 거짓말도 대물림을 할 수 있다.

순종을 한것처럼 거짓말도 대물림이 된다

아브라함처럼 이삭도 리브가를 자신의 누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순종은 내 삶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것이다 그 순간을 하나님은 중요하게 보심.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심. 그래서 순종하는 삶은 온유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것을 경험해야 한다.

 

2.크신 하나님을 믿고 양보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12-22절)

이삭은 자신의 나약함과 실수 하심에도 인도하시고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하였다.

엄청난 거부가 된다 그렇지만 그를 시기한 그랄땅 사람들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판 모든 우물을 메움. 그러나 이삭은 그냥 변두리로 가서 그곳에서 다시 아버지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파서 재사용을 함. 그곳에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그들에게

양보하고 에섹-다툼의 우믈이라 이름짓고 양보하고 그곳을 떠남.

이삭은 양떼들과 가솔들을 데리고 다른데로 옮기지만 그곳에서 역시 사람들의 시기를

받고 싯나-적대의 우물이란 이름을 짓고 그곳을 떠남. 그리고 마침내 다툼이 끝남.

창 26:22.르호봇-넓은 우물.인생의 문을 여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고 닫으시는 분도 하나님 이심.

크신 하나님을 붙들고 양보하는 인생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언젠가는 그 인생의 문을 넓히신다.

온유함은 평안함을 불러오는 강력한 무기이다.

 

3.감사의 제단을 쌓는 삶이다.(23-25절)

이삭은 흉년의 때에 거부가 되었다. 요셉도 흉년의 때에 거부가 되었다.그랄땅

블레셋사람들이 득실대는 곳에서 그것은 하나님께 순종한 결과였다.오늘

우리가 축복을 경험하였다고 하여 삶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이 아님.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삶속에서 문제가 생김 그래서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매 순간마다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삭은 주변에서 질투와 시기심으로 계속 싸움을 걸어오는것 때문에 마음에

두려움이 와서 지쳤다.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하다보면 우리는 지치고 피하고

싶을때가 있다.두려운 마음이 들고 상처가 생긴다. 그래서 이삭은 올라간것이

브엘세바로 올라간다.

창26:24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심.

순종하여 떠나지만 힘들고 지칠때가 있다 그러나 그럴때 반드시 하나님께서 도우심.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들려주셨던 음성을 동일하게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이삭.

하나님의 큰 격려의 음성을 들은 이삭이 한것은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것이다.

26:25.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감사의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는 이삭.브엘세바: 7개의 샘/맹세의 우물

온유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중단하지 않음

우리 자녀들이 힘들고 어려울때 부모님이 기도했던 그 기도의 장소로 나갈 수

있는 삶이 되길 기도해야한다.

26:25.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4.이웃을 축복하는 삶(26-33절)

아나(종)-아나브: 대답하다(온유함) 온유함:종이 주인에게 자신을 낮추고 순종한다.

온유함:자신의 힘을 잘 조절하는 사람.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것을 앎.

이삭은 악을 악으로 값지 않음 그랄왕 아비멜렉이 찾아옴.

28절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심을 보았으니 계약을 맺으려고 옴

(이삭의 존재가 두려워던 아비멜렉)

이삭은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품(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의 삶)

순종의 길을 따른 사람 사랑으로 산 삶만 하나님께 기억됨.

브엘세바:하나님을 만난 예배의 장소. 축복의 장소.)

길을 가다가 불안하고 낙심될때 그때 나와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께 나가라.

 

적용점.

1.집착했던것 3가지 내려놓고, 포기하라, 기도하라.

2.나에게 꼭 필요한 소원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라.

부족하고 한계가 있는 것 하나님께 맡기라.

하나님께 맡기고 온유함 평안함을 누리는 삶이되라

 

 

2022년 1/5

3.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창27:1-46절

이삭과 리브가가 20년만에 힘들게 얻은 자식은 하나나 아닌 둘인 쌍태 아들들이었다.

첫째 몸이 붉고 털이 많아서 에서 그리고 발뒤꿈치를 잡고 나온 둘째는 야곱이었다.

에서는 들에서 주로 생활해서 사냥을 좋아했고 야곱은 장막에 거하면서

양을 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머니를 돕고 어머니와 가깝게 생활을 하였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사냥을 해다 주는 고기를 좋하하였고 어머니 리브가는

가사일을 돕고 야곱을 더 좋아하였다.

그런에 이런 편애가 가족에게 어떠한 심각한재앙을 가져올지는 당시에는 아무도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인간은 편한대로 생각하고 움직이는데 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를 안다면 인간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제한된 지식과 지혜와 감각과

결정때문에 우리는 그런 편애와 잘못된 선택을 하곤 한다.

어느날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는 죽한 그릇에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장자권을 팔고

그것을 형에게 사는 비열한 야곱의 모습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축복권을 죽한그릇보다

못하게 여지는 에서의 행동참으로 멍청하다.

이 장자권 팔기는 간단한것이 아닌 역사에 희자가 되고  오늘날 우리가 성경으로 보고 있다.

 

창26:34-35 에서는 가나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아내를 맞이하였다.

그래서 이삭과 리브가를 근심하게 만든다.

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있는 여인을 택하지 않고 가나안 여인 중에서 자기

마음에 좋은대로 여인을 택함. 이 말씀은 에서의 평상시의 삶이 부모에게 순종을

한다거나 아버지 이삭의 신앙을 온전히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 하여준다.

이삭은 눈이 어둡고 쇠하여지져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것을 아버지에게 받은 장자권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것을 알기에 신앙의 대를 잇는 장자의 축복을 아들에게 물려주려

마음먹고 에서를 불러 사냥을 해와 고기를 먹고 축복하여 주겠다고 말하는데

이말을 어머니 리브가가 듣고 야곱에게 알리고 장자권의 축복을 네가 받으라 말함

왜 어머니 리브가는 이런 행동을 하였을까 왜 이삭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상의도

하지 않고 야곱을 제외시키고 축복하려 하였을까? 이런 제안을 들은 야곱은 왜

안된다고 거절하지 않았을까 이미 야곱은 형의 장자권을 노리고 죽한 그릇에 장자권을

거래한 전과가 있는 야곱이다.

엄마의 말대로 야곱은 시키는대로 하여 장자의 축복을 가로챈다.

왜 이토록 리브가는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권을 넘겨 주려 하였는가?

임신중 태에서 싸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을 기억하고 있을까 큰자는 작은자를

섬기리라.라는 말씀을

그런데 야곱의 장자의 축복을 살펴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의 축복이란 단어가 빠져 있음.

이것은 계속 성경에서 등장하는 단어인데 그렇지만 장자의 축복의 기도를 받은 야곱의

인생은 이삭의 축복대로 평탄하지가 않음. 속이고 받은 축북이 제대로 될리가 없다.

야곱이 축복을 받고 떠난 자리에 에서가 고기를 만들어 가지고 와서 축복해 달라고 함.

창세기 27:33 이삭이 심히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르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에서의 분함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정히 에서의 반응을 생각해보면 에서는

장자권에 대해서 겨우 팥죽한그릇에 바꿀정도로 장자의 권한과 축복을 만홀이 여긴

사람이다.평상시에 에서가 장자됨 첫째의 권위 그것이 하나님으로 부터 온다라는 것을

아버지 이삭처럼 그런 축복을 하나님으로 부터 받아서 나도 다른사람들을 축복해주고

나도 할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열방을 축복해야지 하는 그런 마음으로 축복을 받으려 하였는가?

아니면 세상에서 이방인들이 이야기 하는것처럼 그런 물질적인 축복 기복적인 축복

그런것을 생각하면서 아버지 이삭에게 나간것인가? 우리는 후자에 있음을 알 수 있다.

히브리서 12:16 또 음란한 사람이 한 그릇의 음식 때문에 맏아들의 특권을 팔아버린 에서와

같은 불신앙의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영웅들을 이야기 하면서 12장에서 징계의 이야기를 하다가 예를

들면서 그 예로 에서의 이야기를 비유를 들어서 이야기한다.

히브리서12:17 여러분이 알다시피 에서는 그 후에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면서 구하였으나 거절당하였으며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습니다.

에서는 이 상황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고 그 모든 원인을 자신을 속인 야곱에게만

쏟아 붓는다. 

인생에 있어서 자신이 느끼는 억울함을 모두가 다 자신 이외에 상황과 주변

사람들에게서만 찾으려고 하면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불평할때 보면 늘~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고 단 한가지라도 나에게서 찾지 않는다.

우리가 불평할때 보면 늘~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고 단 한가지라도 나에게서 찾지 않는다.

그래서 늘~불평을 하는것이다. 나는 잘못이 없고 나는 완벽한 자고 선한자고 나는 늘

도덕적이고 나는 늘~경건하고 자신에게는 전연 잘못이 없는 것처럼 에서는 불평하고 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에서에게도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것이다. 그러나 에서는 계속

외부에서 문제를 찾고 있으니 불평이 발전해서 증오심 복수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야곱을 죽이기로 결심한다.

 

사태가 심각해 지는 모습을 보고 리브가는 야곱을 피난 시키기로 작정을 한다.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보낸 후 에서가 풀리면 부르겠다고 이야기 하지만 결국 야곱은

이 사건 이후에 어머니를 다시는 보지 못함. 잠시 피난간다는 그 길이 장장 20년의

세월이 된다. 아내와 아들 야곱에게 속은 이삭은 어떠하였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속은 이삭 그리고 평생 복수심으로 살아갈 에서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겠는가?

그리고 외삼촌 라반에게 속고 또 속고 살아갈 야곱의 삶은 어떤 모습인가 도망자의

삶을 살아가고 이 사건으로 인해 집안의 모든 평화를 깨어버렸다.

누가 이 사건의 책임이 있는가? 어느 한사람이 아닌 모두가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는 에서와 야곱을 갈라놓았다. 첫번째는 부모의 책임이었고

야곱은 형의 장자권만 탐내고 늘~기회만 노렸고 에서는 그 장자권이 중요한지를

망각하고, 리브가는 남편을 속이고, 이삭은 자신의 속마음을 아내와 이야기 하지

않고 믿음의 가문이 하루아침에 콩가루가  되어진 모습이다.

 

인간이 사탄에게 마음을 내어주면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탄은

이 작업을 아주 오랫동안 거쳐서 했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가족들은 사탄에게 빌미를 제공을 한것이고 그러면 누가 이 사건을

풀어가야 할것인가? 이런 경우 사건을 풀어가는 사람은 자신도 억을한 면이 있지만

자신의 잘못을 가장 먼저 깨닫는 사람이 이 사간을 풀어간다.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화해의 중재자로 사용을 하신다.

우리는 후에 어떻게 이 사건이 진행될 것인지를 이제 볼것이다.

지금 무엇보다 이 가문에 집안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주목하고 계신다. 이제 이 사건의 핵심으로 앞으로 창세기의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야곱의 이야기로 들어간다.

야곱에게 있어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장자권에 있어서 그 축복이 왜그렇게 중요했을까?

많은 형제들도 아닌데 야곱은 왜 그렇게 첫째의 장자권을 노린 것일까?

어떤 마음에서 일까 실제로 야곱은 이삭에게서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한다.

리브가나 야곱 역시 이삭의 재산을 노린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아버지에게 형에게 미움을 받고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야곱이 이 정도도

상상을 못했을까? 어머니 리브가가 이정도의 일을 상상을 못하고 일을 버렸을까

그건 아니다. 야곱이 탐을 낸것은 단 한가지 였다. 축복받는 것었다. 두번째축복이 아닌

첫번째 축복이었던 것이다.

야곱의 신드롬을 내가 야곱이라고 생각하고 좀더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그 정도의 재앙들이 임할 줄은 몰랐지만 야곱은 어떻게 해서든지 아버지 이삭으로

부터 가장 큰 축복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그것이 인정 사랑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삭은

에서를 편애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로 부터 받고 싶은 인정 그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이다. 오늘 이세상에는 야곱같은 사람들이 널려져 있다 우리가 야곱은 아니였나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야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것이다. 항상 2인자인데

지고싶지 않은사람, 뒤쳐지지 않는사람이 되고싶은 사람, 사랑받고 싶은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회복되고 싶은 마음, 전능자가 계시면 그 축복을 전능자로 부터 받고싶은 마음

그분이 나를 만드신 분이라면 정말 그분을 만나고 붙들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는가 아니다 하나님은 아마도 고쳐서 쓰실것이다.

야곱의 이야기는 우리와 닮아 있다.

이사야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지렁이는 아무런 방어 능력이 없다 모습도

징그럽고 혐오스럽다. 지렁이는 신체 자체가 아무것도 없고 가장 연약하고 햇빛에

치명적이고 어둠을 좋아한다.

하나님은 야곱이 마치 지렁이와 같다고 말씀하심 아주 연약한 존재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어둠가운데 거하고 가장 이 세상에 미물과 같은 존재로 보이는 지렁이 그런데

지렁이의 역설이 있다.

농부들은 땅에 지렁이가 있으면 땅이 살아있고 건강한 증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연약한

지렁이가 땅속 10-30cm 땅을 파고 들어가고 흙을 먹고 토해내는 그 작업을 통해서 땅이 다시

살아나고 산성화를 막고 다시 건강하게 살아난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밝혀낸 사실이다.

 

내가 아무리 지렁이와 같은 존재로 느낄지라도 지렁이가 땅에 토지에 꼭 필요한 생물이듯이

나는 이 땅에서 하나님께 꼭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지으시고 경작하시는

농부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너 지렁이 같은 야곱이라고 부르신것은 우리 인생이 그렇게 죄많고 연약하고

모순덩어리 인것 같지만 에서같은 첫째가 아니라 차라리 너 지렁이 같은 인생을 들어서

이스라엘로 만들겠다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의지가 담긴 표현이다.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 너 버러지 같은 야곱아! 그래서

이사야 41:1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것이라 네 구속자는 아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나를 지렁이 같다고 버려지 같다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속마음은 이것이다.

이것을 말하기전 이사야41:8-9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끝에서 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 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아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하나님께서 지렁이를 종이라고 하심 내가 택한 그릇이라 하심.

이사야 41:10두려워 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내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가 내일부터 계속 야곱의 삶을 살펴볼 것이지만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실수에도 야곱과

동시에 에서의 삶가운데도 기회를 주시고 그들의 인생을 이끌어 나가시는 것을 본다.

아브라함의 인생을 봐도 계속 실수하고 허물을 보이고 하나님께서 주워 담으시고 싸매고

치료하고 때론 야단도 치시고 격려하고 이끌어 가신다.

이삭의 인생도 그렇고 야곱은 좀 심한 인생이다 늘~뒤쫒는 인생 아버지 이삭에게 인정을

못받는 인생인거 같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야곱을 주시하고 계신다. 그리고 누가

이스라엘이 될것인지 우리는 곧 배우게 된다.

에서와 야곱의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간섭하시는지를 곧 볼게 될것이다. 

하나님께서 두번째 주시는 기회에서 자신을 발견해 가는것은 인간의 몫이다.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되는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로봇처럼 조정을 받는것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어떻게 믿음으로

받아들이냐 하는것이 중요한 것이다.

지렁이 같은 야곱이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이스라엘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능숙한 사냥꾼이고 건강한 에서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 한 에서는 칼과 자신의 힘을

의지하는 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여러분의 장자권 자녀됨을 무시하고  만홀히 여기는 자가

아니라면 내가 에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내가 지렁이와 같은 버러지 같은 야곱이라

생각하신다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붙들어야 할것이다 그리고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셔야 한다.

지렁이 같은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너를 사랑함이니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기도.

그렇습니다. 왜 야곱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자세하게 해주시는지 에서의 이야기를 왜 우리에게

본보기로 주시는지 우리는 잘 알것 같습니다. 버러지 같은 지렁이 같은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오늘이야 말로 그 버러지 야곱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것을 주님앞에 간구하는 시간입니다.

아브라함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성품좋은 이삭을 들어 이스라엘을

만드신것이 아니라 비열한 인간 야곱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어떻게 다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 지렁이 같은 버러지 같은 우리 인생을 땅끝에서 부터

찾으시고 붙들며 너는 나의 종이라고 내가 너를 택했다고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혹시 오늘 그 하나님을 붙들지 못하신 분들이 있다면 오늘 그 심령가운데 이 말씀을 붙들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