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교회 주일설교/2021년11월7일.
세상과 구별되나 세상의 존경을 받는 삶.
설교본문:느혜미야10:28-30/최성은 담임목사
말씀본문 (느헤미야 10:28-30)
28.그 남은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및 이방 사람과
절교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 모든 자와 그들의 아내와 그들의 자녀들 곧 지식과 총명이 있는 자들은
29.다 그들의 형제 귀족들을 따라 저주로 맹세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여
30.우리의 딸들을 이 땅 백성에게 주지 아니하고 우리의 아들들을 위하여 그들의 딸들을 데려오지 아니하며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죄를 다시 지을 수 도 있고 넘어질 수 있는 존재인것을 두려워해서 하나님
앞에는 어떤 맹세도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이야기 하실 수 도 있다.
사실 이런 태도는 또다시 우리자신을 죄의 노예로 만들려는 사탄의 속임수이다.
성경은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라고 우리에게 알려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사건은 사랑의 사건이지 우리가 율법의 공로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면 구원 이후에 이번 블레싱 집회를 하면서 어떤때 보다도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작년보다도 더 많은 500명이 넘는 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셨고 결단을 하시고 선언도
하시고 맹세도 하셨다.
구원이라는 것이 나의 공로나 의로 얻는것이 아닌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을 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제 그 감격으로 살아가는것을 결단하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 이후의 삶이라는 것은 나같은 존재를 받아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최고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 순서가 바뀌면 안되는 것이다.
이 순서가 바뀌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시는 분들이 많다.
즉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을 깨달아서
하나님이 말씀 하신 바를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 삶을 살려고 시작하는것인데
이것이 바뀌어서는 안된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140년동안 무너져 있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수문앞 광장에 모여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리며 회개를 하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로하셨다.
다른거 다 제쳐두고 나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그것이 너의 일생에 가장 강력한
능력과 힘이 될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들은 다시 하나님 말씀을 보고 그 절기가 초막절인것을 기억하였다. 그래서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고 먹이시고 입히신 그 광야의 절기를 기념하면서 그들은 모든 가정들이
모여서 초막절을 지키며 다시한번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그리고 나서 먹고 마시고 준비하지 못한 가난한 이웃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다시한번 힘을
얻어 본격적인 회개를 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기쁨가운데 은혜가운데 회개를 하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발적이고 진실된 마음이었고 그리고 다시한번 죄를 뉘우치는데 9장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은혜가운데 인도하셨는지 이들이 말씀가운데 다시한번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단순히 죄를 자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들의
선조들이 어떻게 불순종하였는지 말씀을 통해 보게된다. 그리고 그들은 중대한 결단을 하게된다.
9:36 하나님께서 그런 축복을 주셨는데 오히려 그들이 죄를 범하고 이방인들의 종이되었다는
고백을 하고 회개를 하게된다.
회개하고 내가 결단하였다면 내가 어떻게 행동을 할것인지를 문서를 작성하기 시작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를 문서로 작성하였다.
38절. 언약을 세우고 언약을 써서 인봉을 함.
수문앞 광장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가 멸망하고 자신들이 뿔뿔히 흩어지고 포로로 잡혀가고
고난을 당한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부족함이 아니라 그 모든것들이 자신들의 죄 때문인
것들을 철저하게 깨달았고 다시는 자신들이 민족사에 가족사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견고한
언약을 세우고 모든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기로 작정하였다.
여기 기록된 견고하게 라는 단어의 히브리어 의미는 참으로 반드시 신실하게 지키겠습니다란 맹세의
뜻이다. 그 맹세는 사람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짓고 내일도 죄를 지을것을 아신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부족한 인간이
전능하신 완벽하신 하나님 앞에서 이런것들을 맹세를 할 수 있는가?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아주 신비한 면이다.
자신이 은혜받은것을 글로 남기는것이 좋다 그래서 우리가 10만 감사운동을 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기가 베푼것은 자꾸 기억하고 싶은 습성이 있는데 자기가 은혜받은것은 자꾸 잃어
버릴려고 하는 습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꾸 잊어버리고 내가 과거에 어떤 존재였는지도 자꾸 잊어버린다.
느혜미야 9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배신하고
은혜를 망각한 것인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단순한 맹세를 하는것이 아니라 이제 어떻게 내가 우리가정이 우리 민족이
이렇게 살겠다라는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만들었다.그리고 지도자들이 맹세를하고 거기에 싸인을
하는것이다. 그리고 본문 10:1절에 느혜미야 이름부터 선포하는데 그들의 각오가 비장했다.
저주로 맹세하기를:만약 우리가 이것을 어기면 저주를 받아도 좋다는 뜻임.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과거의 삶에 진절머리가 나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더이상 이런 삶을 살기 싫다라는 것 모든것을 겪어보고 하나님 앞에 나온 백성들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기쁨을 맛볼 수 있길 원하였다.
단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의 자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맹세하고 결단하고 나가고 싶은
그들의 마음이다. 은혜를 받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후에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것이 중요하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1.세상 문화와구별되어진 삶.2.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3.예배하는 삶.
3번에 걸쳐서 이 말씀을 나눌 것이다.오늘은 첫번째로
1.세상과 구별되나 세상의 존경을 받는 삶.
느혜미야10:30 세상문화와 구별된 삶 그들의 적용점은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지하는것.
거룩의 첫번째 특징은:죄와는 구별되는 것.
우리가 세상 한복판에 살고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살아
나가야 하는것 이것이 우리 삶의 역설이고 이것이 우리의 어려운 점일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었냐면 세상을 사랑한 것이다.
가나안 정복후 신명기 7장에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것이다.
눈으로 보기에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승리는 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렸다.
하지말라는 것을 행함 땅은 정복하였지만 영적으로는 진것이다.
당시 문화는 그 자체가 종교였고 문화 자체가 종교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단순한 결혼이
아니라 결혼을 하면 그들이 갖고 있는 문화를 받아들면서 바알신과 아세라신도 받아들였다.
하나님도 믿고 바알신도 믿고 자신들이 취하고 싶은 유익들만 취하는 일종의 혼합종교로
변질되고 있었다.
살아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진실되게 믿는사람과 당시 성적으로 도덕적으로 가장 타락한
문화를 갖고 있는 바알신을 섬기는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한마음으로 사는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출애굽기 34:15~16.하나님이 그들에게 예언해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한다 우리가 듣고 싶은 음성만 들으려고 하니 문제이지
하나님은 우리 행복과 축복을 위해 이 부분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이방신을 경배하고 섬기는것이다. 헛된것을 우상숭배 하는것.
이 우상숭배를 현재적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우상숭배:하나님위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이다.
우상숭배는 어떤것들도 될 수 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무엇이 바로 우상숭배이다.
성경에 위대한 신앙인으로 묘사되는 요셉이 왜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자락을 붙잡고
유혹할때 왜 줄행랑을 치며 도망갔는지 생각해보라. 이 장면은 괭장히 중요한 장면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실력이 있고 거룩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사탄은 대적하되
유혹은 맞서 싸우라고 이야기 한적이 없다. 우리가 싸울것은 사탄이지 죄의 유혹은 도망쳐야 한다.
바로 요셉이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다.왜냐면 죄의 유혹은 항상 달콤하게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가 굉장히 무섭게 다가온다든지 죄가 주는 쾌락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죄를 쉽게 이길 수 있다.
그러나 죄는 항상 달콤한 모습으로 변장해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자업자득이다.그들이 그렇게 행했기 때문에 결과로
얻은것일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빨간 신호등이 들어오기 전에 여러번 경고를 하신다.
불순종이라는것은 그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의 정욕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죽을 줄 모르고 나방처럼 불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오늘 말씀이 단순히 믿는 자와 믿지 않는자와의 결혼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가나안의 가치관은 내가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것이다.내가 인생의 주인이기 때문에 내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쾌락과 정욕과 텀욕을 취하라는 것이다.
영적으로 서로 다른 가치관이 가정을 통해서 만나면 부부생활은 그야말로 불화가 끊이지 않는다.
행복한 날보다 불행한 날이 더 많은 생지옥이 될 수 있는것 그것이 결혼이다.
요즘 세상의 결혼식을 보면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결혼을 준비하는 것을 보면 신앙이 보이는것이다.
때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나 세상사람이나 별로 다를것을 없는 결혼을 가끔 보면 목회자로서 마음이 아프다.
결혼을 앞두고 결혼에 대한 책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그렇게 해도 힘든게 결혼생활인데 패물이나
아파트나 세상 먹고 사는것은 열심히 준비하지만 영적으로 맞춰보지 않는다.
결혼은 두사람의 진정한 사랑이 있어야 가능한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인간을 향해서 보여주신 그 온전한
희생과 사랑 그 신의 축복이 있어야만 시작할 수 있는것이다.
모든것이 준비되고 이 두가지가 준비되어지지 않는다면 결혼은 생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
다른것이 부족해도 이 두가지가 준비되어 있다면 세상의 고난을 이겨 나갈 수 있는것이 결혼이다.
두사람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이 거룩을 만들어 내는것이 결혼이고 이것을 부모가 준배해주야야 하는 것이다.
두번째로 거룩의 또한가지의 뜻은 렘레스 결점이나 흠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신 것임.
거룩이란 히브리어 단어 무엇 무엇과 구별되어진다라는것. 오늘 이 말씀을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거룩이라는것이 내가 너무 깨끗하여 다른 사람이 나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거룩이라는 뜻이 아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에 오해를 하고 있는 듯하다.
예수님을 생각해 보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와 차원이 근본적으로 다른 분이다 그분의 신분은
하나님이시다. 가장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런데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땅가운데
오셔서 누구가운데 거하시고 누구와 교제하셨는가! 바로 가난한 자들,억눌린자들,상처받은 자들,육신의
고통이 있는자들 귀신들린자들이다.
바리새인과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께 별명을 붙여 드렸는데 메이야가 아니였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죄인들의 친구였다. 예수님의 행동거지가 죄인들과 얼마나 가까이 했으면 그런 별명을 얻으셨겠는가?
바로 그것이다. 세상가운데 가장 치열하게 이땅가운데 오셔서 사셨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는 거룩함이
예수님께 있었다.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멀리한것이 아니라 가장 거룩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인들은 예수님을 좋아하였다.
다가가길 원하였다 신분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좋아했지만
자신이 의인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보았던 하나님의 거룩함을 회복하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다. 국가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삶가운데
한가지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들의 국가와 민족을 이룰수가 없고 다시한번 그들이 재건할 수 없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이 무엇이었냐 하면 하나님을 닮는 거룩함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 이유가 무엇이었나 이 세상 한복판에 있었지만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로써 빛을 잃어버리기 시작하고 오히려 세상보다도 더 타락하고
세상보다도 더 못한 가치관을 가지고 가나안 땅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그걸 현대적으로 적용을 하면 바로 교회안에서의 타락이다. 세상가운데 고통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가갈 생각을 하지 않고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하지 못하고 어느덧 바리새인적인 전통에 물들어서
내곁에 작은자로 오신 그 예수님을 몰라보고 핍박하는것 것이다.
지난번 원로 목사님 말씀처럼 돌탕 돌아온 탕자가 아닌 집탕 집안의 탕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은 그들이 존경하고 기댈 대상을 찾고 있다. 이것이 세상의 역설이다. 세상이 하나님이 종들을 하나님의
사람들을 미워한다고 하였다. 너희가 내게 속한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것이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이 방향을 잃어버리고 무엇인가 방향성을 찾는 이정표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세상은 예수님같이 거룩하셔서 세상과 구분되지만 세상에 살아가는 친구가 필요한 것이다.
무슨 이야기냐면 이런것이다 내가 세상 열심히 살다가 갑자기 암에 걸렸는데 그런데 그리스도인 친구가
생각나는것이다. 그 친구는 이럴때 어떻게 이 고난을 이겨내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들때가 있다.
평상시엔 친하지 않았지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때가 있다.
갑자가 직장에서 예고도 없이 해고를 당했을때 내가 믿는 그 친구는 이럴때 어떻게 이겨나가지 그가 믿는
하나님이라는 분은 어떻게 이야길할까?
정말 사랑하는 배우자와 사별하고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나가나 우리는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이땅에서 사별을 해야 한다. 내가 먼저 죽든 배우자가 죽든 우리는 인생가운데 그런것들을 경험을 하게 된다
신이 없다면 답이 없는 문제들을 안고 살악가는 사람들이 많다.
세상사람들은 기독교를 주시한다. 그들도 우리와 똑 같은 어려움을 겪을때 그들은 고난가운데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는가 하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이 바로 능력임을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신다.
살 소망이 있는 울부짖음은 다르다. 세상은 살아있는 공동체를 보기를 원한다.
치열한 한복판의 현장에 살고 있지만 같은 고민과 같은 고통과 같은 질병과 같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지만
어떻게 그들은 저렇게 기쁨과 소망가운데 다시 일어나서 살 수 있을까? 도대체 저들 마음가운데는 무엇이 있을까
어떻게 저런 아픔속에서도 가족보다 더 진한 사랑으로 품어줄 수 있고 어떻게 같이 웃어주고 울어줄 수 있을까?
도대체 저들의 사랑과 연합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무엇을 믿기에 저토록 바닥에서도 다시한번 희망과 소망을 노래하고 일어날 수 있을까?
나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세상에서 허우적 거려도 무엇인가 내가 바라볼 수 있고 나를 바로잡아줄 수 있고 나를
끝까지 사랑해줄 수 있고 밤 늦게라도 찾아가 기댈 수 있는 등대같은 친구를 원하는 것이다 세상의 역설이다.
우리는 세상 한복판에서 살고 있지만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면서도 세상이 기댈 수 있는
축복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가 당신때문에 예수님 믿어보려고 합니다 라른 이 말을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평생에 한번 이상은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성경도 모르고 교회도 모르지만 당신이 믿는 하나님 이라면 당신이라면 내가 한번쯤 믿어보려고 한다.
라는 고백들을 우리가 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축복하고 구원하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그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하나님은 동일하게 세상을 축복하고 구원하라고 교회를 세우셨고 거기에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우리 모두 세상과 구별되지만 우리 주변에 이웃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기댈 수 있는 그런
사람들로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기도
여러분 이제 어떻게 살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부족하지만 예수님 처럼 살길 작정하여야 할 때입니다.
지난번에 예수님 영접하신 분들도 오래도록 신앙생활 하신분들도 그렇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면 어떻게 살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처럼 살기를 날마다 작정해야 합니다.
압니다 매일 실수 하고 죄를 범하고 살아가는 거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잖아요. 여전히 사랑하시 잖아요 그건 두려워 하지 마세요.
현재 하나님의 관계속에서 결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걸 보시고 하나님께서 내일이 미래를 바꿔주시는 겁니다.
사탄은 그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고 봐라 너는 죄짓고 또 그런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지 그건 사탄의 음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하루 사랑해 오늘 하루 용서해 그리고 결단하고 주님앞에 나가는것 그것을 통해서
미래를 이끌어 나가십니다.
어떻게 살것인가! 예수님 닮아가는 모습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여전히 가나안땅에 있는 모습으로 살것인가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나의 인생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때론 안개속에서 주님을 바라봅니다 아무도 없을것만 같은 그곳에서 그러나 작은 나의 결단과
작은 믿음을 보시고 손 내밀어 주셔서 나를 붙드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세상적으로 볼때 좁은길 같지만 주님 손 붙잡고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안에서 걸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 모든 성도들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거룩하게 구별되며 세상의 존경을 받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아-멘.
안개속에서 주님을 보네 누구도 없을 것 같던 그 곳에서
손 내미셔서 나를 붙드네 길 잃고 쓰러져 가던 그 곳에서
주 말씀 하시네 내 손 잡으라고 내가 곧 길이요 진리 생명이니
나 그길을 보네 주 예비하신 곳 다른 길로 돌아서지 않으리
예수의 길 그 좁은 길 나는 걷네 주 손잡고
그 무엇도 두렵지 않네 주님 주신 약속 내게 있으니
세상의 길 그 험한 길 승리하네 성령으로
그 무엇도 바라지 않네 저 하늘에 내 소망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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