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문풍지
나 어린 시절 울 엄마는 여름 날 예쁜 빛 고운 백일홍과 가을날
살살 바람에 나부끼는 고운 빛깔의 살살이꽃 (코스모스) 꽃과
잎을 따고 예쁘게 물든 단풍잎을 주워 예쁘게 말려놨다가
가을이 저물어 무서리가 하얗게 내릴 이때 쯤이면 집안의
모든 문들을 떼어내 마당에 내놓고 털이개로 먼지를 털고
문을 비스듬히 세워놓고 지난해 발라서 색이 바랜 누런
창호지에 물을 살짝 뿌려놨다가 창호지를 모두 떼어내고
새하얀 창호지를 문살에 바른 후 비자루로 쓱쓱 빗어 내리고
마른 수건으로 꼭꼭 누른 후 문고리가 있는 손잡이 부분에 곱게
말려둔 여러 가지 꽃들을 모양이 예쁘게 올려놓고 그 위에 창호지를
덧바르고 그늘에 말리면 고운 꽃과 단풍들이 이듬해 가을 다시 문살에 창호지를
바를 때까지 방안의 불빛을 받아 은은하게 비추는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게 하셨었다.
지금도 고향집 사랑채엔 창호지로 바른 문이 있다.
그러나 두분이서 사시니 그 사랑채는
사용을 안하고 나이 많아 늙으신 엄마는
더이상 그 고운 꽃잎들을 붙여놓지
않으시지만 내가 어릴 적만 하여도
초가지붕에 방방마다 창호지를 발라
겨울이면 찬바람을 막아주며 악기처럼
바람에 우우우~~ 떨며 소리를내던
문풍지 소리가 울리던 창호지 문이었다.
나무 문살에 창호지를 바르고 옆에
바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붙였던 문풍지...
시어머님께서 사용하시던 다듬잇돌
아이들 어릴적엔 나도 이것들을 사용했었다
그 문풍지는 엄동-설한(嚴冬-雪寒) 윙윙 불어대던 찬
바람을 막아주던 추억의 소리이다.
그 창호지 문엔 엄마가 다듬잇돌에 하얀 옥양목에
빳빳하게 풀을 먹여 방망이로 두드리던 맑고 그윽한
소리가 스며있고 추운 겨울 밤 사랑방에 군불을 때고
이글대던 불을 담아 화로에 담은 화롯불이 긴~긴
겨울밤에 군것질을 할 수 있게 밤이면 고구마가
익어가고 그리고 내가 학교에서 돌아올 즈음 화롯불에
보글보글 끓던 된장찌개 내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추억 속의 아름다움 이었다.
깊은 산골 마을에 어스름 어둠이 내리고 등잔불이
켜지기 시작하면 한지의 창호지 문에서 비치는
불빛을 받아 엄마가 곱게 붙여놓았던 갖가지
꽃잎들과 단풍잎들이 은은한 빛을 발하며 비추는
불빛이 참으로 아늑하고 포근했었다. 그래서 난 지금도
창호지문을 보면 어릴 적 젊은 시절 엄마의 모습을 그 속에서 찾곤한다.
그뿐인가! 손잡이가 달린 곳에 예쁜 갖가지 꽃잎들이 비추고 그
아래 작은 유리를 네모로 자른 후 작은 창을 내어 추운
겨울날 문을 열어 보지 않고도 창문 밖을 살필 수 있게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지혜롭고 운치가 있었던 작은 창문이었다.
지금은 고향집엘가도 보기 힘들어지고 있어도 사용을 하지 않는
그 아름다운 창호지 문과 우우우~~악기처럼 소리를 내던 문풍지...
지금은 82세 늙으시고 야위어 부는 바람에도 날아갈것 같은 엄마는
이 가을 몸이 안좋아서 병원문을 드나드는 엄마 어쩌면 이젠
서서히 영원한 이별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날로 자꾸만
작아지시는 엄마생각에 가슴에 휭하니 찬바람이 이는 가을날이다.
이런 깊어가는 가을 무서리가 내릴쯤이면 새하얀 창호지 문살에
담겨 있던 젊은시절 곱고곱던 울 엄마의 모습이 더욱 더 간절히 그리워 진다.
'살아가는 이야기 > 나의 이야기(추억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름답던 고향이 이렇게 변해버렸네 (0) | 2012.07.21 |
---|---|
동화처럼 살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0) | 2011.12.25 |
아련한 검정 고무신의 추억 (0) | 2011.03.14 |
추억은 아름다워라 (오스트리아 볼프강에서) (0) | 2011.02.07 |
그때를 아십니까 (0) | 2010.0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