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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라남도

담양 소쇄원

by 밝은 미소 2019. 10. 11.

 

 

소쇄원 광풍각(光風閣)

 

소쇄원(瀟灑園) 은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원림園林으로 우리나라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풍기는 아름다움이 있다.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성한 것으로 스승인

조광조(趙光祖)유배를 당하여 죽게 되자

출세에 뜻을 버리고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소쇄원이라 한 것은 양산보의 호 인 소쇄옹(瀟灑翁)에서

 비롯 되었으며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오곡문(五曲門)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 물은

폭포가 되어 연못에 떨어지고,계곡 가까이에는

제월당(濟月堂: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집 과 광풍각(光風閣:비온 뒤에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란 뜻의 사랑방 들어서 있다.

 

소쇄원에는 영조311755 당시 모습을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 남아 있어 원형을추정할 수 있다.

이곳은 많은 학자들이 모여들어 학문을

 토론하고, 창작활동을 벌인 선비정신의 산실이기도 하다.

지금의 소쇄원은 양산보의 5대손 양택지에 의해 보수된 모습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소쇄원 들어가는 입구 쭉쭉뻗은 대나무 숲이 아름답다

 

 

광풍각(光風閣)

 

 

 

 

 

정자에서 앉아서 쉬는것은 좋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딩구는 모습은

삼가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이었다.

 

 

 

 

 

 

 

 

 

 

오곡문 담밑 구멍으로 흘러 들어오는 계곡물은 바로 이곳을 지나

바로 아래 암반을 거쳐 폭포를 이루며 흘러내리고 있다.

흙담벼락에 달린 오곡문을 나가서 바라보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담밑으로난

두개의 구멍인데 보면 볼 수 록 낭만적인 멋스러움이 스며있다.

 

 

 

 

 

 

 

 

오곡문구역은 오곡문 옆의 담밑 구멍으로 흘러 들어오는 계류와 그 주변의 넓은  암반이 있는 공간을 말한다.

계류의 물이 들어오는 수문 구실을 하는 담 아래의 구멍은 돌을 괴어 만든 높이1.5m, 

너비1.8m와 1.5m의 크기를 가지는 두 개의 구멍으로 되어 있는데,

 그 낭만적인 멋은 계류공간의 생김새와 잘 어울린다.

이와 비숫한 기법은 1100년대(숙종연간)의 이실충(李實忠)이 만든 경기도 부천의 척서정(滌暑亭)에 서 볼 수 있다.

 

오곡문의 '오곡'이란 주변의 암반 위에 계류가 之자모양으로 다섯 번을 돌아 흘러 내려간다는 뜻에서 얻어진 이름이다.

이 부근의 암반은  반반하고 넓어서 많은 사람들이 물가에 앉아서 즐기기에 넉넉한데, (소쇄원도)에는

한편에서는 바둑을 두고,다른 한편에서는 가야금을 타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제월당(濟月堂)

제월당구역은 오곡문에서 남서방향으로 놓여 있는 직선도로의 위쪽

부분을 말하는데,주인을 위한 사적(私的)공간이다.

제월당 앞의 마당은 보통의 농가처럼 비워져 있으며,오곡문과의

사이에 만들어진 매대(梅臺)에는 여러 가지 꽃과 나무들을 심어 놓았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위에서 내려다본 문

 

 

 

 

 

 

 

 

아래에서 올려다본 문

 

 

광풍각(光風閣)

 

광풍각구역은 제월당구역의 아래쪽에 있는 광풍각을 중심으로 하는 사랑방 기능의 공간이다.

광풍각 옆의 암반에는 석가산(石假山)이 있었는데, 이러한 조경방법은

고려시대의 정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광풍각의 뒤쪽에 있는 동산을 복사동산이라 하여 도잠(陶潛)의 무릉도원을 재현하려고 하였다.

 

제월당의 '제월'과 광풍각의 '광풍'은 송나라의 황정견(黃庭堅)이 유학자 주돈이(周敦肄)의

사람됨을 평하여 "흉회쇄락여광풍제월(胸懷灑落如光風霽月)" 이라고 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소쇄원의  조경식물로는 소나무, 단풍나무,버드나무,참등나무,대나무,매화나무,살구나무,

벽오동나무,배롱나무,회화나무,치자나무,사계화나무,국화.파초.연꽃.철쭉.동백.측백나무 등을 심었다.

 

이들 가운데 소나무와 매화나무 대나무는 국화와 함께 사절우(四節友)라 하여 선비들이 즐겨 심었던

것이며. 측백나무는 주나라 때 왕자의 기념식수로, 회나무는 고관들의 기념식수로 쓰이던

나무들로,그 풍습에 따라 자손이 성공하기를 비는 뜻으로 심었다.

현재는 당시에 심은 나무들 가운데 소나무, 측백나무,배롱나무 몇 그루가 남아 있을 뿐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광풍각(光風閣)

 

 

물이 좀 더 많이 흐르는 모습이었으면

 아름다운 모습이었을텐데

물이 너무 적게 흘러 아쉬운 모습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이라서 물 흐름이 제대로 표현이 안되었다

 

 

 

 

 

핸드폰이 아닌 카메라로 찍었으면 폭포의

 流水가 좀더 아름답게 표현

되었을텐데 핸드폰으로 찍어 많이 아쉬운 모습이다

 

 

 

 

 

 

 

 

 

 

 

   소쇄원의 특징: 소쇄원은 계류를 중심으로 하여 좌우의 언덕에 복사나무 배롱나무

                            등을 심어 철따라 꽃을 피우게 하였으며, 광풍각 앞을 흘러내리는

                            계류와 자연폭포,그리고 물레방아에서 쏟아지는 인공폭포 등

                            자연과 인공이 오묘하게 조화되어 속세를 벗어난 신선의 경지를

                            방불하게 하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어, 시인 묵객 문사들의

                            방문이 그치지 않았던곳이었으며, 그들이 남긴 詩들이 현재까지 전해 오고 있다.

 

    의의와 평가:  소쇄원은 보길도의 부용동원림과 더불어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시대의 대표적 별서(別墅.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 정원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에서 발췌

 

 

광풍각(光風閣)

 

 

 

 

 

 

 

 

 

 

 

 

 

 

광풍각(光風閣)

 

 

 

                     역사적 변천

 

소쇄원(瀟灑園)은 양산보가 은사 조광조(趙光組)가 남곤(南袞)등의 훈구파에게서 몰려 전라남도

화순 능주로 유배되자,세상의 뜻을 버리고 낙향하여 향리인 지석마을에 숨어살면서 계곡을

중심으로조영한 원림(林)이다, 양산보(梁山甫)의 은둔생활(隱遁生活)기간 중인 1520년부터

1557년 사이에  조성된 것이다.

소쇄원의 "소쇄"는 본래 공덕장(孔德璋)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나오는 말로써 깨끗하고

시원함을 의미하고 있으며,양산보는 이러한 명칭을 붙인 정원의 주인이라는 뜻에서 자신의

호 를 소쇄옹(瀟灑翁)이라 하였다.

소쇄원의 조성사상을 보면 주자9朱子)가 중국(中國) 숭안현(崇安縣)계곡의 경승지인

무이구곡(武荑九曲)에무이정사(武荑精舍)를 짓고 현실(現實)을 도피하여 운둔하는 행동양식이 깔려 있다.

당시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80년쯤 전에 충수하여 현재 2동이 남아 있다.

 

한편, 소쇄원에는 김인후9金麟厚)가 1548년(명종3)에 지은 오언절구(五言絶句)의 48명(詠)

시(詩)가 남아 있다.그리고 고경명(高命)이 1574년 4월 20일 부터 24일까지

광주목사(光州牧使) 임훈(林薰)과 함께 광주 무등산(無等山)을 유락(遊樂)하면서 4월23일

소쇄원에 들려서 보았던 계원(溪園)의 사실적 묘사가 '유서석록(遊瑞石錄)에 남아있다.

 

또 소쇄원의 배치를 목판9木板)으로 새긴 <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 있다.

이 목판은 가로가 35cm,세로가 25cm로 양각으로 판각되었는데1755년

4월 하순(숭정기원후 삼을해년청화 하완간(崇禎記元後 三之亥年淸和 下源刊)에

제작했다는 판각기가 새겨있어 소쇄원의 원형(源刑)을 상고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목판에는 위쪽에 김인후의 소쇄원 48제영(瀟灑園 48題詠)이 새겨있고 오른쪽

외곽에는<창암촌 고암동 소쇄원 제월당 광풍각 오곡문 애양단 옹정봉 황금정 유

우암선생필(창蒼巖村 鼓巖洞 瀟灑園 濟月堂 光風閣 五曲門 愛陽壇 待鳳臺 瓮井峰

黃金亭 有 尤菴先生筆)이라 새겨있다.우암(尤菴)은 송시열(宋時烈)(1607~1689)의 호이다.

이 소쇄원도(瀟灑園圖)에는 건물의 명칭 식물의 명칭 지당(池塘) 계류의 조담(槽潭)이나

바위 다리 물레방아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그리고 입구 담벽에는 원래 김인후의

소쇄원 48영(詠) 수제(手題)가 편액으로 걸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에서 발췌

 

 

 한바퀴 돌아보고 나오다 보니 들어갈때

정자에서 누워서 딩굴던

분들이 다 가버려서 깔끔한 정자의 모습이다

 

 

 

 

 

 

 

 

 

 

 

 

 

물에서 놀고 있는 오리집이다

 

 

 

난 아무래도 담양의 소쇄원과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다.

2년 전 소쇄원에 갔을 때는 공사를 하느라 문을 닫아서

발길을 돌려야 했는데 이번에는 소쇄원을 가기전 담양

솔로시티 삼지내마을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다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소쇄원에 가서는 카메라를 사용을 못해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와야 했다.

소쇄원을 보고 보성녹차 밭으로 가려고 하였던 계획을

바꿔 허리도 무리가 오는 것 같아 그냥 올라와버렸으니...

 

소쇄원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정원중 가장 아름답다고 하더니

정말 한곳도 놓치고 싶지 않을만큼 아름다움이다.

그런데 카메라가 고장이 나서 사용을 못하고

안찍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담아서 너무 아쉬움이 남는다.  

 

 

2019년 9월26일 담양 소쇄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