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강해
호세아 4:1-5 (주일예배) 이동원 원로목사 2020년 7월26일
말씀 본문(호세아 4:1~5
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3.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4.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
5. 너는 낮에 넘어지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넘어지리라 내가 네 어머니를 멸하리라
호세아 4장은 이스라엘 자손들아 들으라로 시작되어집니다 이것은 일종의 검사의 논고라 아니할 수 앖습니다.
우리는 지난 호세아 2장과 3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여전히 사랑하시며 이해하시며
설득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2장과 3장에서는 마치 이스라엘의 변호사처럼 등장하십니다.
그러나 이제 4장에서는 message의 톤이 갑자기 바뀌기 시작하시면서 더이상 그분은 변호사가 아니라 검사의
모습으로 등장하십니다 사실 이런 이율배반적 하나남의 자아상 이율배반적 하나님의 속성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또 동시에 공의로운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용납하시며 재기의 기회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이런 하나님의 사랑의속성 혹은 자비의 속성이 우리의 죄를 가볍게 여기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용서를 선언하시면서도 헌편 우리가 범한 죄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그분은 경고하고자 하십니다.
여기 본문에서 그분은 검사의 자리로 돌아가셔서 논고를 시작하십니다.
우리는 이 논고 앞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슬퍼하며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슬퍼할 수 밖에 없는
이땅의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늘과 땅 사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천지인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살고있는 인간은
하늘을 바라보며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 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하나님의 처소로 표현되는가 하면 이땅은 인간의
거처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잘 못 살아갈때 그때 인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을 기쁨의 땅이 아니라 슬픔의 땅 어둠의 땅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이제 논고 하고자 하십니다 4장이 시작되는 1절의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호세아4:1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여기 논쟁으로 번역 되어진 말씀은 히브리어로 rib 영어로는 charge 논쟁(rib)= charge(쟁변,논고
그래서 쟁변,혹은 논쟁 으로도 번역되어질 수 있는 말입니다.
이 논고는 하나님의 슬픔이 반영된 검사 하나님의 안타까움의 논고입니다.
본문3절에 그러므로 이 땅은슬퍼하며 라고 시작되어지고 있는데 무엇때문에 이 땅은 슬픔의 땅이 되었을까요?
1.우리의 영적 타락 때문입니다.
본문 1절에 지적된 인간의 죄목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적 타락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여기 3가지 지적된 단어가 있는데 세가지 사라지고 있는 (진실,인애,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지금 사라지고
있다라고 말씀하고 계심
여기 진실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에서 진실(emet)그런데 이 emet를 신약적인 단어로 표현한다면 이것이 바로
아멘(amem)입니다
그런데 이(emet)라는히브리어 단어는 히브리어 알파벳 첫번째 알레프로로 시작하여 알레메이트 이렇게
시작되어지는데 첫번째 단어와 중간의mem이라는 단어 그리고 마지막 끝단어 타를 합하여 emet 가되는 것입니다.
이는 괭장히 흥미로운 사실을 시사합니다.
진실(emet)=amem그러니까 진실이란 무엇인가 처음과 중간과 끝이 한결같은 일관성이 바로 진실이라고 하는것입니다.
그런데 이땅에서는 진실이라는 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약속을 지키는 신실함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던 호세아 2: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그 진실함이(emet)이다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다시 말하면 너는 나에게 불성실 했지만 나는 너에게 변함이 없는 부부관계를
유지하겠다 이것을 통해서 너는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알게 될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시 말하면 저와 여러분이 섬기는
하나님 그 하나님이 진실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이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과 저도 진실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진실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게 탄식하고 계세요.
그 다음으로 지적된 단어가 바로 인애 입니다.
인애라는 단어가 히브리말로 인애(hesed)= agape 라는 중요한 단어인데 여러분이 꼭 기억해야 할 단어입니다
이것을 신약으로 표현하면 agape 입니다 hesed 이것은 조건이 없는 조건을 초월한 사랑 초월적인 사랑 조건이
없이 배푸시는 엄청난 자비 그 자비로 저와 여러분이 용서함을 받고 오늘 이땅에 살고 있는것입니다
그런데 탄식할만한 것은 우리가 이런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 hesed 를 힘입고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이웃들을
향해서 그 인애를 베푸는것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비유가운데 어떤 종이 일만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았는데 어머아머 한 빚인데 그런데 이 빚을 탕감받은 사람이 빚을 탕감받자 마자 자기에게 백데나리온 빚진
채무자를 찾아가서 목을잡고 내게 진빚을 빨리 값으라고 목을 조르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엄청난 용서을 받고도 이웃들의 작은 허물도 용서하지 못하고 이웃들을 공격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
보십니까? 인애를 상실한 모습 이것이 영적으로 타락한 우리의 실존입니다.
한가지 더 사라지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영국과 카나다에서 활동하고 있던 세계적인 복음주의 학자 제임스패커가 지난주에 별세하셨는데
그분이 쓴 대표적인 저작 책이 뭐냐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이라는 불명의 명저를 저술하셨는데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요점은 우리가 하나님에 관하여는 조금 알지만 진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 것(knowimg adout God)
하나님을 아는 것 ((knowimg God) 다시 말하면 하나님에 관하여 아는것과 하나님을 아는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분이 나 이동원 목사를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분이 인도하는 예배도 참석하고 설교도 들은 일이 있고
그런데 여러분이 날 알아요 날 진짜 알아요 나라는 인간의 실체를 잘 알아요? 날 안다고 하는것은 좀 살아봐야
알고 시간과 세월을 통해서 진짜 알 수 있는것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성경공부 조금 하면 하나님에 관하여 조금 알 수 있다( knowimg adout God) 하나님에 관하여 조금 알 수 있어요
그것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내가 기도를 통해서 경험한 내 평생의 신앙생활 통해서 실제 경험한 하나님
날마나 삶의 여정에서 경험한 하나님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 진짜 아시나요? 바로 그런 말이예요.
그런데 진정한 의미의 영적지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사람들이 상실하고 있다는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시대 영적타락의 양상이라는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땅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는 모습
이것이 슬픈 이땅의 모습 이 땅의 형편이라는 것입니다.
이땅이 슬퍼하는 원인이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2. 우리 사회의 부패 때문입니다.
호세아4:2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
여기 영적 타락에 이어서 사회적 부패에 대한 실랄한 고발이 펼쳐져 있습니다.
십계명 아시지요? 우리가 암송도 하고 읽기도 한 십계명을 크게 두두분으로 나눌 수 있어요
십계명을 두부분으로 나누면 1~4부분까지가 한부분이고 5~10계명까지 둘째 부분입니다.
아떻게 다른가 1~4계명까지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의무 5~10계명까지는 인간과 인간사이에서
지켜져야할 계명들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 대사회적 계명이라 말 할 수 있습니다.
1~4계명까지가 대 신적 계명 5~10계명까지가 대 인적 계명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계명을 깨뜨리면 사실 5~10계명까지도 다 흩트러 지고 엉망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살고 있는 인생들의 모습 인생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죄악들의 모습 이것이 바로 오늘 여기 이 구절에 지적되고 있는것입니다. 거짓됨, 포악함,살인,그리고 성적인
부패들이 증가되고 있다는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역사를 읽어봐도 노아의 홍수 바로 직전이 바로 그런 상태였죠.
창세기 6:11~12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그 결과로 초래된 심판 그것이 바로 노아의 홍수심판이었다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가서 창세기 19장에 또한번의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상이 부패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임했던 또하나의 심판 그것이 유황불
심판이죠 똑같은 죄악이 이 땅의 지속적인 심판 시대를 걸러 뛰면서 심판으로 임한것입니다.
우리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면 종종 미성년자 관람불가 이련 영화들이 있는데 뭘 기준으로 미성년자 관람을 금지하고
기준하고 있는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선정성이라든지 폭력성 성행위의 유형 묘사정도 마약에 대한태도
그리고 반사회적행위 모방 가능성 정도를 고려해서 영화 등급이 메겨진다고 하죠 그래서 이건 보지말라 미성년자 금지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우리에게 무얼 시사해 주고 있는가 우리도 뭐가 나쁜지 다 알고 있는데 우리
스스로의 부패의 정도를 알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알면서도 허용하고 있는 사회적 부패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을 슬픔의 땅 저주의 땅 어둠의 땅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이 슬픔의 땅이 되어버린 또 하나의 원인은
3.자연을 잘못 관리한 때문입니다.
오늘날 나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땅이 슬픈 노래를 슬픈 탄식을 쏟아내고 있는 땅이 된 이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맡기신 아름다운 자연 그런데 이땅을 우리의 욕심으로 탐욕으로 잘 못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의 3절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어요.
3절.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인간의 범죄 그것의 결과는 인간에게서 끝나는게 아니라 그 결과가 생물계,자연계,오염과. 황패를 초래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짐승도,새들도,바다의 물고기도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저 유명한 로마서 8장에서 이것을 피조물의 탄식 혹은 자연의 탄식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아멘이십니까 동의 하세요? 이 피조물의 탄식소리가 들리십니까 우리가 피조물과 함께 탄식도 하고 고통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일본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 지도자 가운데 한국에도 영향을 끼친 분인데 무교회주의 신학자이고 사상가인 내촌감삼이란분
우찌무라간조 한국에도 이분의 영향을 받은 분이 많은데 돌아가신 함석현목사님 유달영교수 김교신선생님이 다 이분의 제자들인데
이분이 쓴 로마서연구 로마서강해 이 책가운데 로마서 8장에서 피조물의 탄식을 명문으로 설명해 놓았습니다
사람은 천연의 미를 말한다 자연이라 말 하지만 미는 겨우 표면으로 그친다 일보 그 이면에 들어가면 천연은 미가 아니라
추호이다 조화가 아니라 혼란이다 평화가 아니라 전쟁이다 여름의 야산에 백화가 피기를 다투는 양상은 아름답지만 송충의
기생으로 얼마나 패괘가 연출되고 있는가를 안다면 시인의 마음은 공포에 떨며 찬미의 노래는 끊겨버리리라 뱀은 개구리를
잡아 삼키고 개구리는 벌레를 잡아먹고 벌레는 서로를 죽이려 한다 그 뱀을 노리는 독수리가 있지 아니한가 뱀은 또 그
둥지에 침입하여 알을 삼키려하고 둥지속의 달란을 깨뜨린다.
꽃피는 벚꽃은 아름답지만 그 이파리를 갉아먹는 벌레는 보기에도 소름끼치고 소를 먹는 청귀뚜라미 벼를 말라죽이는 미균들
실로 땅에 귀를 대고 들으면 천연의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아프다 나는 고통스럽다 천연은 사람과 함께 저주받고
그와 함께 속박되어 함께 해방을 부르짖고 있다. 명문이죠 아주 명문이예요 실감 나십니까? 여러분
그런데 이런 자연의 타락 이것은 창세기1:28절을 잘못 알고 잘 못 해석하고 잘못 반응한데서 기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말씀 창1:28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명을 다스리라.
여기서 이제 정복이란 단어가 문제 다 정복하라니까 자연은 정복되어야 한다 인간이 막 정복을 했다 크리스찬도
예외없이 (kabash)이라는 히브리어의 이단어는 무절제한 파괴를 정당화 시킬 수 있는 그런 의미를 가진 단어가 사실은 아닙니다
더 중요한것은 이구절에서 마지막 단어이다 다스리라 가 중요한 말이다 요즘말로 하면 잘 manager 하라 잘 관리하라.
정복한다는 말은 잘 가꾸어서 개발하고 잘 manager 다시 말하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청지기적 책임을 강조한 말인것이다.
우리가 만약 우리에게 맡겨주신 자연을 잘못 관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최근 저는 이런 사태를 우리가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어권에서 부터 시작하여 전세계로 회자되어 읽혀지는
글가운데 여러분도 카톡으로 이런 글을 받았을지 몰라요.
코로나가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 원레 영어로 시작하였는데 한국에도 들어와 돌아다니고 있는데 읽어본 분이 별로 없는거 같네요
코로나가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
지구가 속삭였지만 당신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지구가 소리를 내어 이야기 했지만 당신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지구가 소리쳐 외쳤을때 당신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났습니다 내가 누구요 코로나요 나는 당신들을 벌주기
위해 태어난것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들을 깨우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지구는 도와 달라고 외쳤습니다.
대규모 홍수로 외쳐도 당신들은 듣지 않았고 큰 산불들로 외쳐도 당신들은 듣지 않았고 강력한 폭풍과 돌풍에도
당신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해양오염으로 바다 생물이 죽어가도 당신들은 여전히 지구의 외침을 듣지 않았습니다
빙하가 녹아 내리는 심각한 경고에도 혹독한 가뭄에도 지구가 얼마나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는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은 끊이지 않았고 욕심도 멈추지 않았으며 무수한 증오에도 매일 수많은 생명들이 죽어가도 그저 나와는
상관없이 나는 나 자신의 삶을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당신들에게는 지구가 보여주는 수많은 재앙의 징후에 관심을 갖기 보다도 최신 아이폰을 갖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세계가 돌아가는 궤도를 멈추게 했습니다.
내가 마침내 당신들을 듣게 만들었습니다 당신들로 잠시동안 이지만 대피하게 만들었고 더이상 물질적인 것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당신들은 지구가 어떤 상태인지 느끼게 되었습니다.
생존에 대한 진지한 염려를 이제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느끼고 계신가요?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는 것처럼 당신들에게
고열을 일으키고 지구의 대기오염으로 가득찬것처럼 호흡곤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세계를 멈추게 만들어 당신들로
지구의 아픔을 외면한채 집에 문을 닫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중국과 인도의 하늘이 깨끗해지고 공기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단지 공장들이 잠깐 오염물질들을 베출하지 않은것으로도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 베니스에 물이
깨끗해지고 돌고래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곤돌라가 잠시 멈춘것 만으로도 당신들은 비로서 당신들의 삶에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새겨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들을 벌주기 위해 온것이 아니라 당신들을 깨우기
위해서 온것입니다 제발 지구의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요 당신 자신의 영혼의 소리를 들으십시요.
싸움을 멈추고 이웃사랑을 시작해보십시요 지구와 생물들을 보살펴주십시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발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하십시요. 코로나 바이러스 드림.
감동이죠 진리가 아닙니까 이제 생각할때입니다 이제 돌아볼 시간입니다 이제 회개할 시간입니다.
이제 새로워질 시간입니다 하나님앞에 우리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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