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분별하라 (3)뉴노멀시대의 목장교회
2020년 9월6일 설교본문 빌레몬서 1: 1-7 빌레몬 가정처럼/설교자:최성은 담임목사
말씀본문 (빌레몬서 1:1-7)
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4.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5.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교회의 목장교회 Cell그룹은 예수님의 12제자의 모임의 vision의 모형이 되는것이다.
사도행전 예루살렘교회가 우리의 원형이 되는것 성경적인 것이다.
우리는 빌레몬 공동체에서 어떤것을 배워야 하며 특히 코로나라는 한복판속에서 이 말씀을 통하여서
어떻게 목장교회를 이루어 나가야 하는가 특별히 하나님 말씀 가운데 우리가 혹시 잃어버린
본질은 어떤것이 있는가 살펴보길 원한다.
뉴노멀(New Normal) 시대 빌레몬 목장교회에서 배워야 하는것은
1.말씀의 은혜를 나누는 목장교회가 되자.
빌레몬서는 사랑하는 빌레몬에게 썼던 바울 서신.
초대 전승에 의하면 빌레몬은 골로세 출신의 이방인이었던 빌레몬은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을
할때 두란노서원을 통해 제자훈련을 할때 골로세에서 넘어와서 말씀을 듣고 복음을듣고
주님을 영접한것으로 추정이된다.
빌레몬은 노예를 둘 정도로 부유한 신분이었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큰 집을 소유했을거라 추정하고
빌레몬은 이방인이었고 물질적으로 괜찮은 그는 예수님을 믿고 교인이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사역하기를
원하고 그가 받은 은혜를 충만하게 증거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동역자가 된다.
사도바울의 서신 빌레몬서1:3-4을 살펴보면
그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교인 성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가서 예수님을 믿고 받은 은혜의 말씀을
좀더 효과적으로 증거하기 위해 가정을 open하고 가정교회를 개척하고 자기 아내와 자기 아들과 더불어서
이 훌륭한 사역들을 감당하시 시작한다.
가정을 open하기 쉽지 않은데 가정을 오픈하고 자기 삶을 드리면서 이 목장교회 가정교회 안에서
많은 은혜들을 나누는데 그곳에 기쁨과 은혜가 충만했다.
그래서 바울이 기도할때마다 빌레몬의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과 빌레몬의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기도를 할정도였다.
6.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믿음의 교제는 말씀의 은혜를 나누는 것을 뜻함. 우리의 모든 모임과 믿음의 대상은 하나님 말씀이다
어떤 모임도 말씀에 바탕이 없이는 시간이 지나다 보면 처음은 재미있지만 나중에는 허공에
떠도는 메아리같다
인간의 언어는 아무리 화려하고 감동적인 연설이라도 영혼을 구원할 수 는 없다.
인간의 말이 감동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영혼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뜻은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근본적인 한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간의 감언이설은 하나의 허공의 메아리치는것과 같다.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받은것을 나누는 이 믿음의 교제는 결국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좋은것을 함께 나눌 수 있다.
주일 말씀을 통해 받은 말씀을 계속 습관화 시켜야 한다 받은 은혜를 잊지 말고 함께 받은 그 말씀을 목장공동체
소그룹안에서 나눠야 한다.
목장교회는 말씀의 은혜를 나누어야 사람의 정으로 맺은 인연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진 믿음이 교제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도 동아리 같은 좋은 모임들이 많다 그러나 이 코로나 이 상황에서 두려운 사람들에게
삶의 중심이 필요하다
두려움이 있다면 무엇인가 붙들길 원한다 내일이 염려된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이 되어야 하는것이다.
시대가 힘들 수 록 우리는 목장교회에서 먼저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어야 한다.
그 우선순위가 바뀌지 않아야 사람들은 변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2. 삶의 은혜를 나누는 목장교회가 되자.
말씀의 은혜를 나누다 보면 중요한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즉 삶이 묻어나오지 않을 수 가 없다.
초대 교회 공동체는 가정에서 모이는 가족같은 공동체였다 요즘 포스트모던 속에 많이 하는 말
궁중속의 외로움 사람들에게 많이 둘러쌓여 있고 친분관계도 좋은데 막상 집에 들어가면 외로움이 있는것,
그런데 가정교회에서는 사실은 긍정적인 미에서 자신을 숨길 곳이 없어야 한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외롭다 그리고 외로운 사람은 상처가 많다 이것이 반복적으로 주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쉽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가 힘든것이다 늘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일을 하지만 내 자신의 궁극적인
마음 깊은곳에 있는 것을 열어놓을 수 있는 공동체
그런데 목장공동체는 이런 우리의 마음을 여는것이 가능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예전에 방영한 전원일기 따스한 정 이웃의 아픔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목장도 그런
모습이 되어져야 한다.
말씀을 나누다 보면 말씀의 그 능력이 압도 되어서 나의 삶을 고백하게 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지구촌교회가 추구하는것은 고백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나의 깊은 상처와 아픔과 죄를 나눠지는 공동체 그것이 아니면 왜 교회가 필요하겠는가 왜 교회가 특화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만나면 Ice breaking을 한다 성도님 안녕하세요 잘 다녀오셨어요 요즘 힘드시죠 그런이야기는 세상에서도 다 한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성도님 그렇게 아프셨군요 얼마나 고생하셨어요 라며 함께 기도하고 권면하고 그리스도 말씀으로
삶을 나누는공동체
빌레몬 가족은 이방인이었지만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삶이 바뀌는 경험들을 한 사람들이다 삶의 목적이 바뀌는
경험, 삶의 가치관이 바뀌는 경험을 통하여서 자신의 삶을 open하고 가정을 연것 그리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삶의 은혜들을
자연스럽게 나누는 것이다. 그런의미에서 6절을 다시 본다
6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믿음의 교제 교제의 헬라어가 바로 "코이노니아" 이다 코이노니아는 친교 교제로 알고 있지만 그 이상 나눔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코이노니아: 교제 이상의 나눔 ,단순히 가깝고 단순히 교제하는것이 아니라 나눈다 라는 이야기다.
교제 이상의 "나눔" 그들은 배운 말씀을 나누고,삶을 나누고,움삭도 함께 나누는 친밀한 교제를 가졌다.
성도들은 빌레몬 목장의 섬김을 통해서 믿음의 교제를 나누고 삶의 평안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말씀이 바탕이 된 삶을 나누고 그 아픔이 쏟아졌을 때 그것을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고 격려해주니까 그래서 삶의 소망이
새롭게 나타나는 거다.
그 목장교회에 가면 그 사람들을 만나면 내 좌절감이 없어지고 다시 새로운 소망이 생겨나게 되고 그런 소식들이
멀리 있는 사도바울에게 기쁨과 위로를 얻게 전달되어졌다.
7절.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이것이 제자훈련을 하는 사람들의 기쁨이다.
목장교회는 자신의 삶에 말씀으로 임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어야 하는것이다 그 은혜를 나누는 가운데 삶에 있어서
힘들었던 이야기도 같이 할 수 있는 공동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셨다.
우리의 고통을 나누어 가지신 것이다 다 가져가셨지만 나누신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나누고 계신것이다.
그리스도인 특히 목장 공통체에서는 우리 형제의 아픔과 그 고통을 예수님이 하신것처럼 우리도 짊어지고 같이 나누는것이다
코로나 (pandemic)으로 모든 사람이 힘들지만 그 아픔과 고통을 말씀안에서 나눌 때 우리 삶의 깊은곳까지 치료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역사가 다시한번 우리 목장교회에 일어나길 축원합니다.
3. 복음증거의 은혜를 나누는 목장모임이 되자.
목장교회는 삶의 은혜를 나누기만 해서는 안된다. 말씀의 은혜 삶의 은혜 목장교회의 소그룹 모임을 보면 3거지
레벨이 있는거 같다
1.말씀의 은혜를 나누는것 좋은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삶의 은혜를 같이 나누어야 한다.
그 말씀이 나의 삶가은데 어떻게 작용했다는것을 그 실패와 승리를 함께 나누어야 한다.
여기서 목장교회가 끝나면 안된다 목장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리스도를 전해서 영혼을 완전히 변화시키는것이다.
우리의 최종적인 목적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는 목장교회 목적은 교회목적과 똑같다.
바로 복음증거와 선교이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정한 사랑이다 아무리 우리가 한영혼을 돌보고 잘하여도 그 영혼이
지옥에 가도록 방치하면 그 영혼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한것이 아닐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씨를 뿌리고 그것을 열매맺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영혼에 대한 우리 열정과
사랑의 깊이를 보기를 원하신다.
이제 8절부터 바울이 편지를 쓴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한다.
8절.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절.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자 되어
10절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0절이 오늘 본론이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 우리가 생각하는거 보다는 조금 자유가 있는 가택연금되어 있는데 노예인 오네시모라는 자를 만났다.
바울이 늘 하듯이 그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예수님을 증거하고 오네시모가 예수님을 영접했다.
단순히 그리스도인이 된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내가 영적으로 낳은 아들이다 라고 말하는것을 봐서는 괭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오네시모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는데 빌레몬집에서 도망친 노예였는데 우연히 사도바울이 있는 감옥에서
만났다고도 하고 또 오네시모가도 도망했다가 과거의 빌레몬과 바울이 관계를 알고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다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찌되었건 오네시모는 노예고 노망친 노예이다 그렇다면 빌레몬 공동체가 하나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사도가 이야기 하듯이 오네시모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니까 도망친 빌레몬의 노예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들이라는것이다.
11절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니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네가 돌려 보내노니 그난 내 심복이라 심복이란 말은 내 심장이다라는 말이다.
바울이 오네시모를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 당시 예수님을 믿어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모든것이 해결되었는가 우리가 전도할때 예수님을 영접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라고 말하면 안된다.
그렇게 해결되어져 가는 과정으로 가는거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해결되어지는 것은 어떤것이 있는가 하면 이 세상에서는
어떤 것으로도 해결받을 수 없는 않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나의 죽음 이후에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부자가 된다 건강해 진다 공부잘하게 된다. 그런 부분들도 있지만 그 모든것이 밑바탕이
되는건 아니다 그럴 수 도 있고 안그럴 수 도있다 오히려 예수믿으므로 손해를 볼 수 도 있고정직하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어려운 사람을 사람들을 도와야하고 용서해야 하고 이런 삶들이 우리의 도전으로 다가오고 우리는 점점더
하나님의 말씀때문에 아!~ 예수님을 믿는것이 이런것이구나 우리의 삶의 각 모든 영역에서 있어서 가치관,물질, 시간,자녀양육,
미래에 대하여 배우자선택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궁극적으로 아!~내가 왜 예수님을 믿는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것이
어떤것이구나 라는것을 깨달아 가게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어도 대단한 어려운 문제가 빌레몬의 공동체에 찾아왔다.
당시 1세기 지중에 연안에 있는 나라들의 노예제도는 사회근간을 이루는 제도였다 노예제도를 통해서 경제가 돌아가고
권력이 형성되어지고 사회 계층이 만들어 졌다.
노예제도가 없어진다는것은 사회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조선시대도 오래갔던 것이다.
두가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오네시모는 노예였고 도앙친 노예였다,
그런데 그가 과거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는데 지금은 예수님을 믿었다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단순히 예수님을 믿었다라는
것이 아니라 바울은 오네시모를 심복 나의 아들같은 존재라고 칭찬한다 그런데 바울이 오네시모를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고 그의 빚을 탕감해줄것을 간곡하게 부탁을한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런 도전이 있을것이다 16절 말씀 이것이 성령님의 음성으로 여러분들에게 들려지길 원한다.
16절.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네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자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바울이 빌레몬에게 도전한다 빌레몬에게 점점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종이 아니라 사랑받는 형제로 대하라고 이야기하고
더 나가서 빌레몬 목자에게 바울을 대하듯 대하라고 이야기한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영적인 선생님이다 그런데 자신의 종 도망친 종 오네시모를 선생님 대하듯 대하라는 이야기다.
17절.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바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바울은 빌레몬을 설득하기 위해서 영적인 결정타를 한방 날린다.
18절.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네 앞으로 계산하라.
예수 믿기전 썼던 것이다 내 앞으로 달아놔. 바울이 이렇게 까지 이야기 하는것을 보면 오네시모는 도망치는 과정에서
노예니까 재산이 없어 주인인 빌레몬의 돈을 상당수 훔쳐서 달아난 것으로 보인다 살기위해서.
그런데 바울은 그런것이 있으면 자신이 값겠다라고 선언을 하는것이다 어디까지 바울이라는 그리스도인이 가는지 보라.
바울이 날린 이 영적인 결정타는 십자가의 원리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값을 값아주시기 위해서 모든 물과 피를 다
쏟아주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사람들의 죄를 용서하라는 것이다 용서받았듯이 용서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절대적인 핵심적인 가르침이었다 과연 예수님을 믿는다라는것이 무엇일까
몰라서 질문하고 몰라서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에 10년이상 다니신 분들은 기본 진리에 대해서는 다 알고 계시다.
문제는 정말로 내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고 있는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라는것이 무엇인가.
정말 예배를 드린다는것이 무엇인가 교회를 이룬다라는 것이 무엇인가 성도의 책임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깊이 다시한번
고민하는것이다.
19절을 보라 바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거의 협박이다 너 나에게 빚진것 있지 무슨 빚인가 영적인 빚이다.
이방인이었고 예수님을 몰랐는데 내가 너에게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해서 너는 교회를 세우고 목자가 되고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어.영적인 사랑의 빚을 지었는데 내가 그 이야기 안하겠다 라는 이야기다. 굉장한 역설이다 이런 이야기다.
내가 오네시모의 빚을 값을테니 너도 나에게 진 빚을 값어라 빌레몬 그것은 바로 너희 종 오네시모를 용서하는것이다.
라는 이야기이다.
이것이 당시 로마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주인을 등지고 법을 어기고 물건을 가지고 도망친 노예를 용서하고 가족처럼
여기고 자신의 스승처럼 여기라는 이 바울의 이야기는 당시 로마제국을 다 뒤엎고도 남음이 있는 그런 이야기이다.
혁명이다 예수님을 믿는것은 혁명이다 삶이 바뀌는 것이나까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이 편지를 읽어보면 실은 바울이 이미 빌레몬 공동체가 이런일을 할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마치 하나님이 부족한
우리들을 향하여서 하나님이 자신감을 우리에게 이야기 하는것처럼 내가 너를 믿어라고 이야기 하시는 것처럼.
20절.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21절.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빌레몬이 더 용서하고 더 잘해 주고 그렇게 할것을 자기가 확신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갖는 자신감이다.
빌레몬 가정에서 모이는 이 이야기는 신약시대에 정말 중요한 모범이 된다.
이방인에서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씀의 은혜를 받아서 목자가 되고 가르치고 삶의 은혜를 가정에서 나누는 빌레몬
그리고 도망친 노예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들여서 한 형제로 그리스도 안에서 동역자로 맞이하는 빌레몬목자
참으로 역설적인 이야기이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기를 1절에 예수를 위해서 갇힌자 된 나 바울이라고 이야기한다 오네시모는 세상의 신분으로
노예가 된자 바울은 예수님을 위해서 옥에 갇힌자 그런데 예수님을 위해서 스스로 옥에 갇힌자가 골로새 지방의
유지인 빌레몬을 예수님 믿게 하고 더불어 그의 도망친 노예인 오네시모를 종에서 자유케 한다.
이것은 예수안에서 갇힌자 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여러분이 이 특권을 알고 이 특권이 여러분 심령가운데
있다면 이 특권을 누리셔야 합니다 여러분 이런 특권과 능력을 누리시길 원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예수님의 보혈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이 특권을 이 능력을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배 가운데 선포되는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 그것을 통하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영적으로 보이는
죄의 덫에 갇혀 죽어가는 영혼을 사랑으로 은혜로 구원한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일이다.
그래서 교회는 모이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된것이고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삶의 기쁨이요 사명입니다.
초대교회 전통에 의하면 주인인 빌레몬이 나중에 골로새 교회의 전체를 담당하는 감독이 되었고 네로 황제 순교때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순교를 택했다고 하고 그리고 그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는 그의 동역자가 되어 나중에 에베소
교회 전체를 다스리는 감독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인가.
우리 지구촌 목장공동체는 vision의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무슨 vision 바로 에수님이 꿈꾸던 하나님 나라의
vision을 꿈꾸어야 합니다.
죽어가는 영혼울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과 하나님이 꿈꾸셨던 성령님도 함께
꿈꾸셨던 그날을 위하여 가는 목장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안에 있는 어떤 모임도 복음을 전하는 것에 초첨을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암세포로 변질될 수 있음
세상에서도 친교들을 끈끈하게 잘 한다 왜 교회여야 하는가 무엇 때문에 난 그리스도인이라고 이야기 할 수 하는가.
빌레몬 마을처럼 비록 이방인이었지만 가정을 열고 자신이 받은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 삶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그것을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임이 된다면 거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이처럼 수고하고 이제까지 오신 모든 목장교회 공동체에게 목자님과 마을장님들에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5절.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의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우리가 이 말씀을 사용하고 이 말씀에 순종할 때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 삶의 곳곳에 특별히 우리의 심령가운데
함께 있다고 하심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특별히 코로나 시대에 3가지를 삶에 직접적으로 실천해 보기로 하자
1.가상 공간을 목장교회로 만들자(Zoo, 카카오톡,밴드,문자 활용)
2.소외된 사람들을 목장교회로 인도하라.(사회적 약자와 취약 계층돕기)
3.사랑과 용서가 넘치는 목장교회로 만들자.(빌레몬,오네시모 공동체.)
예수님을 몰랐을 때 우리 모두는 다 죄의 노예 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모두가 오네시모였던것을 늘 기억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떠나지 않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힌자라 이야기 하지만 그는 상대적으로 자유하고 부유했던 빌레몬에게 말씀을 담대하게
가르치고 제자삼고 그리고 물건을 가지고 도망쳤던 노예였던 오네시모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법칙은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하고 용서라라 신앙생활은 복잡한 것이 아니다.
용서할 수 있는 사람 용서하는것은 세상도 다한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 빌레몬처럼 오네시모처럼 살라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셨다
그것이 목장교회에서 우리 지구촌교회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얘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주신 성령님의 음성이 있는데 그것이 16절 말씀입니다.
16절.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네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이건 내가 예수님 만날 때 나에게 하신 말씀이시다.
놀라운 복음을 소유한 우리가 누구를 용서하지 못하겠는가 그런 목장공동체 그런교회
세상에 선포하고 우리가 행할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세상의 한복판의 모든 교회들에게 넘쳐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온성과 같은 교회
시온성과 같은 교회 그의 영광 한 없다
허락하신 말씀대로 주가 친히 세웠다
반석위에 세운교회 흔들자가 누구랴
모든 원수 에워싸도 아무근심 없도다.
생명샘이 흘러나와 모든 성도 마시니
언제든지 솟아 나와 부족함이 없도다.
이런 물이 흘러가니 목마를자 누구랴
주의은혜 풍족하여 넘치고도 넘친다.
주의은혜 내가 받아 시온백성 되는 때
세상사람 비방해도 주를 찬송 하리라.
세상 헛된 모든영광 아침 안개 같으나
주의자녀 받을 복은 영원 무궁 하도다.
'마음을 살찌우는 글들 > 믿음 의 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에 물 타지 말라 (0) | 2020.09.23 |
---|---|
우리의 일그러진 자화상 (0) | 2020.09.17 |
(1)시대를 분별하라 뉴노멀 시대의 선교 (0) | 2020.08.23 |
슬퍼하는 이 땅 (0) | 2020.08.06 |
묵상 (0) | 2020.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