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정이품송正二品松 (수령 600-800)년
우리나라의 명승지나 노거수(老巨樹)에는 유명한 인물 혹은 역사적
사실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가 남아있는데 이중 나무와 관련하여
대표적인 것이 정이품송과 세조임금 이야기이다.
세조는 재위 10년 음력 2월 요양을 목적으로 온양,청원을 거쳐
보은 속리산을 방문한다.
말티재를 넘어 속리산으로 가던 중 길목에 있는 소나무에 임금이
타는 가마인 연(輦)이 걸릴 거 같아 '연걸린다'고 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져 있던 가지가 스스로 올라갔고,돌아가는 길에는 근처에서
갑자기 비가 와서 일행은 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였다고 한다.
세조는"올때는 신기하게 나를 무사히 지나도록 하더니 이제
갈때는 비를 막아주니 참으로 기특하다" 하면서 이 소나무에
정이품(正二品) 의 품계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이후부터 이 소나무를 (연거랑이 소나무)),연송,정이품송이라고 불렀으며,
인근 마을은 군사들이 머물렀다하여 진(陳)터'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속리산 법주사
법주사를 중심으로 속리산 천왕봉과 관음봉을 연결하는 일대18,590,000m2
15,623,475평을 말한다.
속리산은 해발1,057m의 천왕봉을 비롯해 9개의 봉우리가 있어 원래는
구봉산이라 불렀으나, 신라 때부터 속리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속리산 일원은 대한 8경중의 하나로 제2금강 또는 소금강으로 불리는데
4계절 변화에 따른 경치와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고,대소사찰이
곳곳에 있어 많은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속리산의 대표 사찰인 법주사는 553년에 천축(天竺: 지금의 인도)
으로부터 불경을 가져오던 의신(義信)이 곳의 산세험준함을 보고
속세를 떠나 불법의 진리를 펼 곳이라 생각하고 큰 절을 세워
법주사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혜공왕 12년(776년)에 진표율사가 대규모로 중창하였으며, 고려시대를
거치며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으나 정유재란으로 전소되었다.
조선 인조 2년(1624년)에 사명대사 및 벽암대사에 의해 다시 중건되고
보수 증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국내 유일의 목탑인 팔상전(捌相殿국보제55호)를 비롯하여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 국보 제5호),석련지(석石蓮池,국보제 54호)
사천왕석등(四天王石燈,보물제 15호), 대웅보전(大雄殿 보물제915호)
마애여래의상(磨崖如來椅像,보물제216호)등 국보3점, 보물12점,
천연기념물1점,도지정문화재25점이 소장되어 있다.
속리산 법주사일원은 1966년 사적 및 명승 제4호로 지정되었고,2009년
속리산은 명승으로 ,법주사 주변지역은 사적으로 변경지정 되었으며
산중에는 북천암,탑골암 등 11개소의 전통사찰이 산재하고 있다.
일원에는 사적 제235호인 삼년산성(三年山城)과 정이품송(正二品松,(천연기념물 제103호)
백송(白松)천연기념물 제104호) 망개나무(천연기념물 제207호)등 천연기념물이 분포하고 있다.
법주사 대웅보전(大雄寶殿)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에 의신조사가 처음 건립하여
혜공왕12년(776)년 진표율사가 고쳐지었으나
임진왜란시 불타 버린후 인조 2년(1624)년에 벽암대사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면적이402,80m2,높이가 약 19m에 이르는 대규모 건물로서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불전의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이 건물과 같은 수법의 금산사
미륵전이 있다.
내부에는 높이 5,5m 허리둘레 3,9m에 이르는 국내 소조불 좌상으로 가장
크다고 알려진 보물 1360호 보은 법주사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금동미륵대불
신라 혜공왕 12년에 진표율사가 7년간의 노력으로
금동미륵배불을 조성해서 모셨으며 조선조 9년
대원군이 경복궁을축조함에 소요되는 자금마련을
구실로 당백전 화폐를 구조하기 위해 몰수해 갔다고 한다.
이후 시멘트미륵부처로 조성하다 청동미륵부처로
바뀌어 2000년에는 금동미륵대불로 복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속리산 법주사 국보 제55호 팔상전(捌相殿)
법주사 내에 있는 국보3점 중 하나인 국내
유일의 목탑인 국보제55호 팔상전(捌相殿)이다.
처마끝에 매달린 풍경 바람이 불때마다 흔들리면서
청아한 소리를 내는 풍경소리는 종교를 떠나서
바람이 불때마다 흔들리며
내는 청아한 풍경소리는 마음을 잔잔하게 해준다.
보물제 15호 사천왕석등(四天王石燈)
보은 법주사 사천왕 석등은 사천왕이 조각되어 있는 석등으로
팔상전 서쪽에 있다.
사천왕은 불교에서 수미산의 사방을 지키는 수호신을 뜻한다.
석등의 높이가3.9m이며,받침등돌과 불을 밝히는 화사석,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돌은 밑받침돌과 위 받침돌이 대칭을 두었다.
화사석은 여덟면으로 되어 있는데, 한쪽 네면에는 창을 내고
다른 쪽 네면에는 사천왕상을 두었다.
지붕들은 여덟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간 형태이며
꼭대기에는 보주를 두던 받침이 남아 있다.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양식으로 조각된 것으로 보아
신라 혜공왕 때 진표 율사가 법주사를 고쳐 지었을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주:탑이나 석등따위의 맨 꼭대기에 얹는 구슬 모양의 장식.
국보 제5호인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
신라 석등 중 띄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조성 연대는 성덕왕 19년(720)년
으로 추정되고 있다.
높이가 3.3cm로 널따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사자 조각이 올려져 있다.
사자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랫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석등의 구조는 8각의 지대석에서 하대 연화석과 쌍사자, 연화상대석을
따로 조각하여 쌓아 올리지 않고 하나의 돌에
조각하였으며 다른 석등들에 비해 화사석과 옥개석이 큰 것이 특징이다.
사진을 찍는데 갑자기 바람이 부니 옆의
은행나무잎이 우수수~ 낙엽되어
바람에 쏟아져 내리고 있는 모습이 잡혔네.
2020년 11월 2일 속리산 법주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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