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교회 주일 블레싱 주일예배/2021년 10월 31일
집탕도 돌아와야 합니다.
설교본문:누가복음15:25-32 /지구촌교회 이동원 원로목사
말씀본문 (누가복음 15:25-32)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누가복음 15장은 성경에서 유명한 챕터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을 다시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예수님이 3가지 비유로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3가지 비유.
1.어떤 목자가 잃은양 하나를 찾음.
2.어떤 여인이 소중히 여기던 잃은 은전 하나를 찾음.
3.어떤 아버지가 집 나간 둘째 아들을 기다리고 찾음. 둘째 아들이 드디어 돌아와서(돌아온 탕자)
그런데 이 3비유로 끝나지 않고 4번째 비유가 있음 이 비유를 들어
맏아들의 비유/집안의 탕자의 비유.
집나갔던 둘째 아들이 돌아와 아버지가 잔치를 열었는데 그 잔치를 기뻐하지 못한
이가 있었는데 큰아들이었다.
성경학자들은 이 큰아들을 집안의 탕자라 말함.
탕자/prodigal son/ 허랑방탕/asotos- 목적없는 낭비.
이 단어가 나온 이유는 작은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먼나라에 가서 재산을 다
낭비하여 허랑방탕하였다는 말에서 비유 그래서 탕자라는 말이생김.
재산만 낭비한것이 아니라 시간도 꿈도 다 낭비한 작은아들 모든것을 낭비하고 남의집의
종살이로 전락함 그래서 탕자가 된것임.
그러나 둘째아들만 탕자냐 집안에 있었지만 맏아들도 탕자이다. 그가 왜 탕자가 되었을까?
예수님은 왜 맏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셨는가?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누가복음15:1-3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제일 좋아하였던 사람들은 죄인들 창녀들 그 당시
소외되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주님의 말씀은 구원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었다.
그들에게 비유로 예수님이 말씀하심은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들은 왜 집안의 탕자가 되었는가?
1.아버지의 마음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둘째아들이 돌아올때 광경을 성경이 묘사할때 이런 표현을 쓰는데 아직 상거가 먼데 아직 거리가
멀다고 둘째 아들과 아버지의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돌아오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떠난 둘째 아들만 거리가 멀었는가 그러나 맏아들도 아버지와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집 떠나간 자기 동생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아파하던 아버지의
슬픈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런데 동생이 돌아와서 기뻐서 잔치를 연 아버지의 기뻐하는
마음도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서 집떠나지 않고 일한 자기에게는 염소한마리도 잡아주지 않는다고 하는 맏아들.
30절.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찐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죽은줄 알았던 동생이 돌아와서 잔치를 열였는데 그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한
불평이다. 그러니 둘째 아들과 마찬가지로 큰아들도 아버지와 마음의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신앙의 목표:영성가들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이다.라고 정의 하였다.
신앙생활의 목표: intimacy with god/하나님과의 친밀함. 이것이 신앙생활의 목표이다.
하나님과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다 그것이 바로 복이다.
17세기 불란서 파리에 살던 한 성도가 하나님과 너무 가까워 지고 싶어서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수도원에 들어가자 마자 그에게 주어진 임무가 수도원 주방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불평이 쌓인다 내가 수도원에 들어와서 24시간 하나님과 교제하며 기도해도
하나님과 가까워질까 말까인데 이렇게 하루종일 주방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앞에 가까이
나갈 수 가 있나 라고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의 음성이 마음속에 들려온다 아들아! 나는 너를
사랑해서 내가 그 일을 맡겼어. 아니 하나님께서 이 일을 나를 사랑해서 맡긴거라구요?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태도가 바뀌어졌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 나를 사랑해서 맡기신일 이라고. 그러면서 그는 갑자기 부엌에서 청소하는일
그릇 닦는 일이 힘들지 않았고 즐거워지기 시작하였고 즐겁게 일하고 그릇을 닦으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대화하기 시작하였고 그 주방에 가득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고 나중에 자기
경험을 써서 책으로 만들어 냈는데 그때 17세기에 쓰여진 책을 지금도 우리가 열심히 즐겨
읽고는데 그 형제의 이름이 별명인 로렌스형제가 쓴 유명한 책이 바로 "하나님 임재연습"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연습하며 하나님과 가까이 한다라는 책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군가를 사랑해 보셨는가 그렇게 사랑하게 되면 만나고 싶고 보고싶고 가까이 하고
싶고 끝없이 대화하고 싶고 헤어지기 싫고 대화 하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이것이 사랑의 열병이다.
하나님과 사랑에 빠져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면 하나님과 가까이 하고 싶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싶고 기도를 자꾸 하고싶고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기면 가슴이 벅차오르고 너무 기쁘고
찬송가에 이런 찬송가 가사가 있는데 구주를 생각만 해도 좋거든 그 얼굴 뵈올때아야 얼마나 좋으랴.
그런 마음이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모습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나오고 있지만 하나님의 임재 그런데도 아무 느낌이 없고 하나님과
가까이 해야한다 그래도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감동이 되지 못하면 그러면 여러분은 어쩌면 교회에
나와 있지만 하나님의 집에서 아직도 탕자일지 모른다. 바로 집안의 탕자 왜 집안의 탕자가 되었는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버지와 가까워 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2.형제의식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여기 본문에서 맏아들이 불평하는 모습은 집을 떠나 먼나라에 가서 고생하고 있는 그가 자기의
동생이라는거 나의 형제라는 것을 망각한 것이다. 30절을 보라 그가 사용하는 호칭을 주목해 보라
30절.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이 아들/ 당신의 아들 your son. 내 동생이라 하지 않고 당신의 아들 먼나라에 가서 재산을 모두
탕진해 버린 못된 당신의 아들이라 표현 하는데 아버지는 이런 아들에게 어떤 호칭을 하용하시는가?
32절.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그러니까 맏아들은 동생이라는 형제의식을 잃어버리고 산것이다.
아버지는 죽었다가 살아난 내 아들 잃었다가 얻은 내 아들이 아니라 바로 네 동생이라 말하심.
죽었다가 살았으며 잃었다가 찾은 네 동생이다.
그냥 집안의 재산을 탕진해 버린 사람같지 않은 사람이라고 형은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도 그는 네 형제야.
네 동생이야 라고 하신다.
오늘 날 성경학자들은 우리가 세계에 사람들을 선교하려면 안믿는 타종교사람들을 우리가 너무
이방인 취급만해서는 안된다.이방인은 이방인 이지만 그러나 그들이 복음을 들으면 예수를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그렇게 부르는 순간 그들은 내 형제다.
똑같은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선교학자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방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의식으로 이방인들을 바라봐야 한다고 성경학자들은
이런것을 가능성의 형제의식 (potential brotherhood)이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자꾸만 다른사람들과 벽을 쌓고 다가서지 못한다.
그리스도인들끼리 모여 살게 되고 그리고 우리는 전혀 세상에 빛이되지 못한다.
이것이 교만한 바리새인 의식이다. 나만 우리만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이고 저들은 다 마귀의
백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디모데전서 4:2절의 말씀을 상기하자.
디모데전서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런데 우리가 한때 같은 집에서 아버지를 섬기다가 잠시 집을 나가긴 했지만 그 나간 사람을
내 형제 취급을 안하는 것이 바른태도인가 바른생각 바른판단인가! 오늘날의 교회가 밝은 빛으로
채워지지 못하고 어두운 이유 교회 공동체가 무겁고 답답한 이유 우리 교인들중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형제의식을 상실하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주변에 형제의식을 갖었다면 어떻게
형제들을 바라봐야 하는가? 집나간 형제들 돌아와야 한다 돌탕 돌아온 탕자 그러나 집탕도 돌아와야 한다.
(집안에 있는 탕자도 회개하고 집안에 있는 탕자도 변화되어야 한다)
그들은 왜 집탕이 되었는가
3.자기 의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20절.에서 아버지에 대한 항변 속에서 우리는 자기 의가 지배하는 맏아들의 모습을 볼 수 가 있다.
15:29절.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아버지의 명을 어긴일이 없고 정당하게 살았는데 저 동생이 잘 못 살았고 동생이 잘못이라는
잘못한게 없었다고 말하는 큰아들이 모습.
누가복음 15장의 3가지 비유로 끝나지 않고 첨부된 4번째 맏아들의 비유가 당시에 어떤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셨는가 바로 바리새인들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바리새인들은 무실론자가 아니고 대표적인 종교지도자 들이었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들에 대해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눅18:9-10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여기서 바리새인의 정의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사람들을 멸시하는 자들 이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다.(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성찰하지 못함)
바리새인의 기도 누가복음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불의,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달라요 저렇게 부도덕하게 사는 사람들과 다르다는 의식 그를 지배하고 있던 의식 바로 자기 의에 의식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일수록 공통점이 있다.(자기를 돌아보는 성찰이 없다 회개를 하지 않는다 이게 집탕의 특징이다)
자기 회개가 없이 늘~ 형제들만을 비판하고 정죄한다. 그런데 인간이 자랑하는 자기 의가 얼마나 될까?
자! 선지자의 증언을 들어보자
이사야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의는 더러운 옷 같다. 원문에는 더러운 걸레라고 하였다.
더러운 걸레에 지나지 않는 인간의 정의 그것이 사람들이 자랑하는 정의이다.
우리가 이 주관적 정의를 극복하려면 우리의 의 위에 있어야 할것이 있다 사랑이다.
사랑의 기름이 부어져야 한다.사랑의 은혜가 부어져야 한다
우리의 의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지배를 받아야 함.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한것임(사랑과 의가 만난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피할 수 가 없다 그런데도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내가 죽아야 할 그곳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보내시고 예수님이 우리대신 십자가에
죽으시고 피를 흘리시고 우리는 그 피로 씻음을 받고 용서를 받고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새로운 인생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사랑을 망각하고 정의 만을 주장할때 우리는 집안의 탕자가 되는것이다.
당신은 돌탕인가(돌아온 탕자인가 아님 집탕인가(집안에 있는 탕자 교회안에 있지만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탕자인가?)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한것임(사랑과 의가 만난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어느 미국목사님의 간증 이동원목사님이 평생 깊은 가슴에 울림을 주셨다는 간증이야기
어느 한 목사님이 친구 두분을 모시고 아침 식사를 하려고 식당에 갔는데 써빙을 하는
종업원이 아주 불친절하여 말도 거칠게 하고 주문한 음식의 접시도 팽기치듯 갖다놓는
모습에 이건 그냥 지나갈 수 없다. 매니저를 불러서 따져서라도 이 무레함을 고치는것이
정의다. 라는 생각이 들어 메니저를 부르려고 하다 마음속에 기도는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어
하나님 이런 여자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그런데 아무소리가 들리지 않아 계속기도 하면서
무슨 사정이 있는가라고 물으니 하나님께서 저 여자에게 사정이 있다하는 음성이 마음속으로
들려 사정이 있으면 그 사정이 무엇인지 들어봐야지 하는 마음에 참고 식사를 끝내고
나오면서 아주 이렇게 엉망인 식사를 마치고 나가면서 아주 오래전 이야기라 팁이 3불이면
되지 않겠나 싶어 3불을 꺼내 놓으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3불 너무 적다라고 하시는거 같아
엉망인 써비스를 받고 3불이면 되지 않나 하며 5달러 7달러 해도 아무말이 없어 그러면
10달러요 라고 하니 하나님께서 예스라는 음성이 들리는거 같은 마음이 들어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10달러를 놓고 나오는데 그 여자분이 쫒아 나오면서 손님을 부르면서
이거 팁이 아니죠? 라고 물어서 팁이 맞다고 하니 왜이렇게 많이 놓았냐고 물어서 내가
자매님을 보니 무슨 힘든일이 있어 보여서 조금 격려가 되라고 더 놓았다고 이야기 하니까
그 자매가 갑자기 얼어붙은듯 제자리에 서 있더니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손님 손님!~너무 죄성합니다 제 써비스가 무레했죠.
사실 어제 저녁에 제 남편이 저를 버리고 집을 따났답니다.
아!~그런일이 있으셨군요.저는 목사인데 제가 자매님을 위해 기도를 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하니까 기도를 해달라고 해서 앉히고 어깨에 손을 얹고 하나님 이 자매님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세상 모든 사람이 버려도 결코 버리지 않는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고 그 하나님 사랑안에
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니 흐느끼는 그녀에게 기도를 마무리 하고 자매님 예수님 아세요?
모른다고 그래서 그 분을 알고 싶지 않느냐고 물으니 알고 싶다고 하여 십자가에서 자매님을
위해 돌아가신 예수님 우리가 다 죄인이고 아무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데 우리 대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가 받을 심판을 대신 받으시고 피를 흘리셨는데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으면 부활하신 예수님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이 자매님을 용서하실 뿐만아니라
마음속에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주셔서 그 사랑가운데 새롭게 살 수 있어요. 그렇게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싶지 않으셔요? 하니 모시고 싶다고 하여 그 자매님이 예수님을 마음가운데
영접하는 영접기도를 드리고 받아들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좋아서 얘기하는 목사님의 그
광경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여러분 생각해보시라 이 무레한 써비스를 하고 있는 이 자매를 야단치고 그래서 정의롭게
교정하는것 그것이 더 좋은 선택일까요?
아니면 그를 사랑해서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것 이것이 더 필요한 선택일까요?
오늘 여러분 가운데 아버지 하나님의 집을 떠나 교회와 상관없이 멀리 살고 있던 분들이
있었다면 돌아 오세요. 오늘 돌아오세요.기쁘게 맞아주시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세요.
그러나 집안에 있으면서 하나님과 멀어졌던 분들 멀리 살던 분들 더이상 하나님의 임재가 감동과
감격이 아닌사람이 있다면 이런 집안의 탕자들도 오늘 돌아오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어버지 하나님 오늘 결신의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을 축복하시고 돌아오던 탕자이든
집안에 있던 탕자이든 더 이상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돌아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는 새 생활을
시작되는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천부여 의지 옵소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외면 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러 주시니
곧 회개 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2. 전 부터 계신 주께서 영 죽을 죄인을
보혈로 구해 주시니 그 사랑 한없네
내 죄를 씻기 위햐여 피흘려 주시니
곧 회개하는 맘으로 주 앞에 옵니다.
3 나 예수 의지 함으로 큰 권능 받아서
주님께 구한 모든 것 늘 얻겠습니다
내 죄를 씻기 위하여 피 흘려 주시니
곧 회개 하는 맘으로 주앞에 옵니다.
'마음을 살찌우는 글들 > 믿음 의 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2년 신년 특별새벽기도회(1) (0) | 2022.01.16 |
---|---|
세상과 구별되나 세상의 존경을 받는 삶 (0) | 2021.11.12 |
열매가 있습니까? (0) | 2021.09.27 |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 하신 일 (0) | 2021.09.05 |
목장교회의 영적성숙 영적성숙의 4단계 (0) | 2021.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