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어른들을 모신 산소
이곳은 시댁어른들이 묻힌 곳 증조부부터 부모님까지 시어른들을 모신 산소이다
천안과 조치원 중간쯤에 있는 이곳은 남편이 어린시절을 보낸곳이고
부모님이 살아오신 고향
이곳에는 원래 할머니와 부모님 산소만 이곳에 있었는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연기 행정수도가 들어간곳이
종산이고 그곳에 부안임씨가 650년을 살아온 곳으로
시어른들 묘가 모두 그곳에 있었는데
행정수도가 들어오면서 산소를 모두 옮겨야 하는 일이생겨서
다시 종산을 옮기는 과정에서 우리는 시어른들을
이곳으로 이장을 하고 이곳에 모두 모셨다.
이곳에 조상님들을 모두 모시고 남편은 일이하나 더 생겼다.
물론 우리가 살고있는 이곳 분당에서 그리 멀지않은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곳이지만 남편은 이곳을
한달이면 2~3번을 오르내리면서 산소를 가꾸고 나무 심은것을 돌보고 있다
이곳은 물론 우리가 묻힐곳이기도하다.
남편은 국립묘지로 갈 수 있는데도 이곳을 고집하고 있다.
국립묘지로 가려면 화장을 해야 해서 싫다나.ㅋㅋ~~
나는 국립묘지로 가라고 하지만 남편은 싫다한다.
우리나라는 자연이 아름답지만
아름답고 수려한 양지쪽은 모두 묘들이 자리하고 있고
도로를 달리다 보면 정말 이러다간 묘들이 모든 산들을 차지할 날이 멀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그 넓은 땅의 산들이 묘지를 쓰지 않아서 너무 좋다.
중국은 장례문화가 화장문화라서 그렇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장례문화가 많이 바뀌고 있어 화장을
많이 한다고 하지만 아직도 매장이 많아서 좁은 땅덩어리에 묘들이 차지하는 면적이 너무 많다.
장례문화는 국가적으로 생각을 많이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한다.
좁은 땅에서 묘지들이 차지하는 면적이 너무 많고
자연이 아름다운 곳에는 영락없이 묘들이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그냥 잔디만 심어서 가꾸고 있지만
다니다 보면 사람들은 부의 상징처럼 산소도 화려하고 크다.
산소쓰는 면적이 정해져 있다지만 그것을 어기고 화려하고 크게 그렇게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는것같다.
지금이야 남편이 있어 한달에 몇번이고 산소를 찾아
잔디를 가꾸고 돌보고 있지만 우리 아들만 해도
바빠서 벌초를 해도 학교다닐적엔 다녔지만
직장을 다니고 있는 지금은 한번도 참석을 못하고 대신 아버지에게 돈을 내놓는다.
시동생들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5명인데 장남인 남편만 산소에 정성을 기울이지
다른 시동생들은 그렇게 자주 찾지를 못하고 있는실정이다.
우리대에는 재훈이할아버지처럼 조상으 묘를 찾아 정성을 기울이고 가꾸겠지만
자꾸만 젊은이들 대로 내려가면서 그렇게 정성을 기울이고 가꿀 수 있으려는지...
하루빨리 우리도 장례문화가 매장에서 화장문화로 바뀔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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